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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6.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2편)

                      

책임자 고시 대상자를 업무 강도가 훨씬 덜한 회계과나 증권 관리과로 배치하는 업무분장

해야했다. 그러면 자금과에 근무 중인 시험 대상자는 그나마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

가 조금이라도 생길 것이라는 작은 기대 정도

는 할 수 있었다.  

   

이곳 자금부로 새로이 남자 사원이 전입을 오면 인력을 어느 곳으로 배치할 것인가에 관해 부장과장 3인을 불러 모아 미팅을 했다. 하지만 우리 자금과 남자 직원들의 기대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시험대상자는 우리 자금 과로, 머지 비대상자는 회계과나 증권 관리과로 업무 분장이 되는 이 굳건한 프레임은 께어지지 않았.  

   

그래서 우리 자금과 남자 사원 4명은 실패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가 없었다. 허구한 날 밤늦은 시각까지 야근이 이어지다 보니 심신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을 시험공부에 할애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다른 영업점이나 여유가 있는 타 부서처럼 시험 전 1 내지 2개월 동안 업무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배려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들었다. 

    

그래, 나도 알아. 당신들 힘들다는 것을. 오후에 자금을 틀어막느라 여러 군데 은행을 뛰어다니고 들어오면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녹초가 된다는 것을 나도 잘 들었어.”     

우리 직원 중 누구는 사직서를 항상 양복 안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말도 있습니다. 부장님 저희들 좀 어떻게 해주세요. 책임자 시험공부를 할 수 있도록 영업점으로 보내주시거나전입 직원 업무 분장 시 제발 배려 좀 해주세.” 

    

방금 전 관리과장은 우리에게 쓴소리를 퍼부었. 상급 책임자인 대리나 3명의 과장들과 아무런 사전 보고나 협의 없이 감히 사원 나부랭이들이 군사 쿠데타 하듯 자금부장에게 몰려 간것을 지적했다.

      

대학시절 상법 교수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금융기관 대리야말로 명실상부한 권한을 가진 책임자라 했다. 우리 회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초임 책임자인 대리의 경우 영업점에선 지점장 대리였다. 본부에서 과장 대리로 불리는 것과 천양지차였다.

     

입사 동기나 같은 연배 직원들 대비 이 대리 승진에서 밀릴 경우 여가 가지 불이익이 잇달았다. 향후 지속적으로 승진이 누적해서 늦어지거나 심지어는 결국 낙오가 되어 조직을 떠나야 하는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실제 주위에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초임 임자인 대리에 첫 보임이 늦어지는 경우 이는 지속적인 부정적 연쇄효과를 가져왔다. 

    

이러다 보니 이 책임자 시험에서 밀리지 않고 제 때에 합격을 하는 것은 직장 생활을 향후 별 탈 없이 이어갈 수 있는 처음이자 아주 중요한 관문이었다. 승진이 한 번 누락되거나 승진일이 늦어지면 이는 두고두고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아니. 지금 이 시각에 거기 앉아서 일을 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것이야? 시험이 당장 내일모레인데...”

직전 근무지 영업점의 내 담당 대리의 안부전화를 이미 오전에 받은 터였다. 내 마음은 착잡했고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직원 대부분은 1 ~ 2개월 전부터 업무는 전폐하고 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이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거래은행을 정신없이 오가고 있다니...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한 경기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복싱 세계타이틀매치에서 우리는 사각의 링위에 아예 오르지도 못한 채 경기가 끝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공부는 주로 주말에 해야 되는 것이지요. 준수 씨 요즘 공부 잘하고 있나요?”

담당 대리는 나를 비롯하여 자신의 휘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부하 직원들에게 대놓고 염장을 질러댔다. 근무일엔 허구한 날 야근을 이어가는 신세에 주말이라고 무슨 공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를 입 밖에 내었다. 그것도 한두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어요. 나도 업무를 해가면서 주로 주말에 집중해서 진도를 나갔지요.”     

이 것, 도대체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자신은 지능지수가 뛰어나게 높은 수재나 천재라고 자랑을 늘어놓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짓거리야?’     

공부를 하라고 업무에서 빼 준다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절대 아니거든. 오히려 시간 여유가 있으면 그 시간에 딴전을 필 수가 있어.”


우리 담당 대리 좌측에 나란히 앉은 또 한 명의 대리가 뜬금 없는 이야기를 보탰다. 다른 영업점

이나 부서처럼 자신들의 휘하에서 고생하는 부하 직원들의 어려운 형편에 동감을 하고 배려를  해 주어야 했다. 나아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지못할망정 이런 어정쩡한 이야

기만 늘어 놓다니... 참으로 한심한 중생들이었다.


상급자인 책임자로 자격이 없었고 가본 소양마저 의심이 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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