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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7.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3편)

우리 자금과 남자 사원 4명 모두는 정정당당히 공개경쟁 시험을 통해 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었다. 부모 찬스 등을 이용하는 등 결코 옆문을 통해 입사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이제 남보란 듯이 어엿한 책임자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고 시험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고 나서는 이런 함량 미달의 책임자들이 주위엔 널려 있었다.


정말 사면초가였다. 이런 책임자들을 떠 받들거나 존경할 일은 더욱 없었다. 결국은 이 조직과 영영 이별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영업점이나 부서로 도망을 쳐 근무 여건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생일대의 과업인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을 이루지 못해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은 맞았다. 그래서 나는 이미 3류 인생이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 아오지 탄광으로 불라는 이곳으로 전보를 받는 순간 이제 5류 인생의 나락으로 한 번 더 떨어지고 말았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 이 중생들아,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여건만 주어진다면 당신들보다 더욱 훌륭한 성적으로 한방에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거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어 스트레스라도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일정한 레벨을 자랑하는 금융기관이란 조직이었다. 여차하면 조직의 쓴 맛을 보고 한방에 야인이 될 수도 있는 처지였다. 

    

내가 이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경로를 잠시 떠올렸다. 최종 서류전형 접수자는 무려 2,000여 명에 육박했다. 이어 서류 전형을 거쳐 필기시험과 2단계의 면접 후 신원 조회까지 통과한 최종 입사 동기는 65명으로 정이 되었다.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 경쟁률인 50,0001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섰다.  

    

, 인마, 들와 왔으면 신고를 해야 할 것 아니야? 네가 이번에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고 해서 나는 솔직히 놀랬다. , 대단하다. 이번에 이곳에 들어오기 무지하게 어려웠어.”
 

내가 입사 후 첫 발령지로 출근한 첫 주 주말에 대학 입학 동기는 회사 내 직통전화로 나를 찾은 것이었다. 친구가 근무 중인 점포에 이번 처음 배치를 받은 입사 동기로부터 내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었다. 내 대학 동기는 이미 3년 전에 이 회사에 일찍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자신이 입사하던 당시와 엄청나게 달라진 회사의 위상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아니, 도대체 자금과 남자 직원들은 아이큐가 얼마야? 이 것들 모두 돌 대가리들 아니야?”

과장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지금은 그렇고 이따 오후 업무 마감 후 맨 정신으로 이야기하시지요?”

     

어제 이번 책임자 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이변은 없었다. 무엇인가 input(투입물)이 있어야 output(산출물)을 기대할 수 있지. 권투 경기에서 사각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승부가 결정된 마당인데 당연히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과목 모두 합격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한두 과목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그쳤다. 오늘 오전이었다. 우리 4명의 취득 점수를 인사부로 확인한 후 회계과장은 우리 4명의 점수가 형편이 없다며 인격 살인에 가까운 망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에 제일 선임인 동료 직원이 비분강개하며 맞 받아친 것이었다. 참으로 책임자인 직장 상사로서 전혀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선배님, 우리 회사엔 이곳 말고도 다른 많은 부서가 있고 이곳에도 3개의 과가 있는데 왜 하필이면 자금부 자금과에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혹시 부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런 것이 있겠어요? 점심 먹고 지하 휴게실에서 탁구를 치고 있는데 저 뭣여, 본부 자금부로 발령이 났다고 해서 온 것뿐이지...” 

    

회계과에 근무 중인 입사 선배는 자신에게는 또 선배인 이번에 이곳으로 전입을 온 선임 직원을 마음껏 놀려댔다.

     

나야 뭐, 여그가 무엇하는 줄도 모르고 얼른 올라와버렸지.”

이곳이 아오지 탄광으로 널리 알려진 이유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자금과 남직원 4명은 오늘 점심 식사 후 자금과장과 면담을 했다. 근무 중 애로 사항을 듣고 개선안, 대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여전했다. 영업점으로 전보발령을 점진적으로 실행하여 책임자 시험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 줄 것과 이곳 자금부로 새로운 인력이 수혈될 경우 시험대상자가 아닌 직원을 우리 쪽으로 우선 배치해줄 것을 일관되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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