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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8.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4편)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덜한 회계과, 증권 관리과로 업무분장을 하게 되면 기존 시험대상자 직원들에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는 늘 있었다.

     

“지난달에 제가 시내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은행 잔고가 밤늦은 시각에 나오는 바람에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 배우자가 바뀌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남사원 4명만이 무슨 전생에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납득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부서에 근무 중인 직원들 대비 상대적인 박탈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과장님, 제발 배려 좀 해주세요.” 

    

내 사수는 얼굴이 상기된 채 약간 흥분된 어조로 용건을 마무리했다.  사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회계과 박선배는 자신이 이번에 자금과 쪽으로 업무분장이 될 것이라는 낌새를 챘나 봅니다. 그래서 접심 식사 이후 줄 담배를 피워대고 있네요.”

     

박 선배는 이번에 자금부 대형 금고 안에서 업무시간은 물론 마감 이후에도 독하게 책과 씨름한 결과 책임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래서 이제 조만간 책임자 승진 발령만을 기다리는 부담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럼에도 자금과로 옮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매우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허구한 날 늦은 밤 시각까지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니 곧 있을 업무 분장 명령이 반가울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곧 힘든 자금과 일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챘고 마음이 울적해졌던 것이 분명했다.

     

누구는 자금부에 발을 들여놓은 지 7년이나 되었고 다른 누구는 몸무게가 7 킬로그램이나 줄었다고?”     

부장이 자신의 방에서 팩우유 하나를 들고 나오면서 직원들을 향해 한마디 건넸다. 건너편에 자리한 회계과 차 대리는 오늘 모든 직원들에게 팩우유 하나씩을 돌렸다. 자신이 이곳 자금부에 근무한 지 오늘이 꼭 7년이 된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란 이름을 달았다.

     

차 대리는 자신의 전공에 맞는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7년 근속이란 이력은 그리 나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어쩌면 나중엔 좋은 스펙으로 내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달랐다. 이곳으로 전입 온 지 겨우 2개월 만에 체중이 7 킬로그램이나 줄었다는 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이번 발령으로 강동구 누나네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내 근무지인 여의도까지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버스나 전철 등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한방에 출퇴근이 가능한 코스가 절대 아니었다. 한 번의 버스 신세에 이어 전철에 오르고 또 한 번 갈아탄 후 전철역에 내린 다음 전철역과 여의도 금융가를 오가는 셔틀 택시나 버스, 도보 중 택일을 해야 겨우 근무지에 도착했다.  

   

주로 영업점에 영업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배분하여 이체한 후 마감 후 회수하는 것이 내 주된 업무였다. 그러다 보니 영업점 직원들보다 1시간 전후  일찍 내 자리에 도착을 해야 했다. 게다가 평일 오후 10시나 11시경, 때론 자정을 훌쩍 넘겨 은행 마감 잔고가 나오다 보나 허구한 날 야근으로 이어졌다. 출퇴근에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에다 상상 이상으로 늘어난 근무 시간 부담 때문에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7 킬로그램이나 감량이 되었으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체급별로 자신의 체중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프로 권투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다 보면 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급을 계속 내려야 하는 권투선수의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장차 생존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최 준수 씨. 이제 또 새로 4월이 돌아왔네. 또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어. 알고 있는 거지?”
 예 과장님,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또 휴가를 올리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3월 말 결산 법인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업계획이나 근태 등 직원들 인사문제도 이 회계 기간을 단위로 관리하였다. 일 년에 근무일 기준으로 7일간의 체력단련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영업점이나 부서들과 달리 우리 부서는 책임자 시험 준비에 활용하라고 업무를 면제해 주는 등 배려 내지 혜택은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우리 부서의 처지는 공지의 사실이었다. 영업점인가 본부인가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직원의 업무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직원이라면 이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자금부 자금과의 열약한 근무환경이 이른바 ’ 아오지 탄광이라는 것은 추정이 아닌 팩트였다. 

    

1365일 중 근무일로 7일이란 체력 단련 휴가는 그야말로 아주 소중한 제도였다. 업무에 지친 직원들이 재 충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아무리 힘들게 야근을 이어가 보았자 책임자 시험 준비에 활용하라고 사규상 정해진 이외의 휴가나 외출 등은 기약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월 말 그간 일 년 내내 아끼고 모아두었던 체력단련 휴가 7일을 한꺼번에 몽땅 소진했다. 하숙방 한 구석에 틀어박혀 시험 준비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오늘 과장은 회계연도가 다시 시작이 되었으니 또 7일인 휴가 신청이 가능하다면서 장난 삼아 내게 툭 던진 것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이었다. 나는 이 열약한 근무 환경에 항의라도 하듯이 지난번에 이어 그 황금 쪽 같은 휴가를 이번에도 몰아서 다 쓰기로 어려운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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