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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9.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5편)


                          

자금과 남사원의 TO4명인데 현재 이 빈자리 주인인 준수 씨는 휴가 중입니다. 어쩌면 이곳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고이 접어 잘 모시고 다니던 사직서를 아마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미련 없이 휙 던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일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요.”   

  

우리보다 훨씬 입사일이 이른 선배가 이곳으로 전입 오던 날 내 사수는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거참 우 선배는 첫 출근일로부터 아주 죽을 맛이었다.  

   

내가 입사하던 해 12.12 증시 부양조치가 발동되었다. 우연의 일치로 보는 것이 옳을 듯했다. 정확히 10년 전 같은 1212일은 신군부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하여 사실상 권력 찬탈에 성공한 날이었다. 그 후 정확히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같은 해 4월 코스피 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한 후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정부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유통 시장에서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주식을 무제한 사들이기로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발권력 동원이란 새로이 화폐를 찍어내는 것을 의미했다. 통화량이 그만큼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3대 투신사를 동원했다. 찍어낸 화폐를 저리로 3대 투신사에 대여해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경제 원리에 전혀 맞지 않는 무모한 정책이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쟁의 원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비이성적인 조치였음은 삼척동자라도 쉽게 헤아릴 수 있었다. 경제 펀더멘탈 뒷받침이 없는 유동성 투입만으로 지수를 끌어올리는 정책의 효과는 단 기간에 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 정부의 12. 12 증시 부양조치는 3대 투신사에 두고두고 큰 부담이 되었다. 지속적차입금 이자 지급에 따른 경영악화가 부실화의 가장 커다란 결정적인 주범이 되었다.

     

정부가 찍어낸 돈으로 주식을 사들여 펀드라고 부르는 수익증권을 발행해야 했어. 지금과 달리 당시는 수익증권은 그것이 책형이든 증권형이든 반드시 실물의 발행이 의무사항이었지.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수익증권을 발행을 감당해야 했으니 정말 전쟁이었지.” 

         

증권 관리과 민 대리의 무용담이었다.

     

우리 자금과 직원은 모두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어요. 그러던 중 12월에 일반 공휴일이 하루 끼어 있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소중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내 사수도 당시 전쟁 같았던 상황을 수시로 소환해 냈다.

     

다음 달부터 우리 직원들의 강도 높은 야근에 대한 보상을 받기로 했다. 금융기관이란 무엇이든 ‘대충대충’이란 것은 절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모든 지출은 회사 전체 예산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기획부와 인사부의 합의가 필요했다. 자금부 직원 모두가 연장 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는 한도를 매월 100시간으로 못 박았다.  

    

자금부 막내 여직원은 아직 만 20세에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상 야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를 어기면 사용자는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묘안을 짜냈다. 자금과 남자 직원 4명 이름으로 여직원 몫 야근시간을 고르게 나누어 추가 배정했다. 급여일에 남자 직원 4명은 이 막내 여직원에게 지폐 한 장씩을 건네기로 합의를 했다. 사람 머리는 결코 장식품이 아니었다. 실제 직원들이 자신이 초과 근무를 한만큼의 보상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첫걸음이면 나중에 희망이 보였다.  

   

정말? 얼마를 걸을까? 10,000원으로 하면 어떨까?”

예 좋습니다.”

다른 보조 도구의 도움 없이 해야 하는 거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유격조교 출신 내 사수와 표 대리가 내기를 했다. 지금 당장 사무실에서 팔 굽혀 펴기 100회를 할 수 있는가에 배팅을 했다. 승부는 너무나 싱겁게 결정되었다. 사수는 우리 사무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을 맨 손으로 짚고선 순식간에 100회를 채웠다. 전혀 군살이 없는 사수는 전역을 한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거뜬하게 해냈다. 그 유명한 빨간 모자를 최대한 앞으로 눌러쓰고 교육생들에게 정확한 시범을 보이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던 현역병 시절의 내공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 자금부 직원 모두는 우리 사수의 승리에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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