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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0.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6편)

                       

최 준수 씨 입질이 무슨 뜻인가요? 혹시 낚시터에서 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려고 덤비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담보물권의 일종인 질권을 설정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같이 혼용하고 있어요.”

책임자 시험 준비를 하던 회계과 천 선배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최준수 씨 당구에 입문도 하지 않았다고 하잖아? 큐대도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는 것 아니야?”     

회계와 관리 쪽 책임자와 직원 추정이 엇갈렸다. ‘내가 당구를 칠 줄 안다, 아니 모른다가 쟁점이 되었다.     

사실 나도 상대를 나왔지만 한 때 법학도를 꿈꾼 적이 있었어. 사회 정의를 외치고 말이야.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최 준수 씨는 고시공부에 열중하느라 당구를 아예 배우지 않은 것 같더라고.”  

   

표 대리는 이번엔 내기에 걸지 않았다. 아쉬워했다. 순간 나는 머쓱으쓱사이를 오갔다. 법대생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식음을 전폐하거나 자장면을 시켜가면서 당구장에서 상주하는 부류도 얼마든지 있었다. 어쨌든 표 대리가 나를 우호적으로 보아주었으니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옥 대리님, 이 것 참 낭패네요. 수표를 발행해야 하는데 단위가 하나 부족합니다,”

그럼 어서 새로이 장만해야 하지요.”     

12. 12 증시 부양조치로 떠안는 차입금의 이자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단자사나 증권금융을 통한 자금조달 시 실제 상거래와는 무관한 이른바 융통어음을 매일 발행해야 했다. 증권회사와 투신사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증권금융으로 차입처를 몰았다. 어음 한 장의 액면금액이 무려 5,000억을 넘어섰다. 우리 회사만의 총 누적 차입금이 2조 원에 육박했다.  

    

이거 자금부가 아니라 허구한 날 돈을 빌려오는 ‘차금부’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 사무실에 자주 들르는 5층에 자리한 @@부서장의 한탄이었다.  

        

감사합니다. 자금부장실입니다. 대신 받았습니다. 자금과 최준수입니다.”

야 네가 누군인데? 왜 전화를 당겨 받고 그래?”

죄송합니다. 부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워서 그랬습니다.”     

얼마 전 회계과 입사 선배가 부장실 전화를 대신 받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그대로 따라 하던 중이었다.

 

사원 나부랭이가 감히 어디 부장 직통 전화를 건방지게 대신 받을 수 있느냐?’는 나무램이자 호된 질책이었다. 이 정도이면 권위주의 시대 군사정권 시절 군부대의 영내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야. 오늘은 내가 풀 서비스를 하기로 했어.”

자금과장과 남사원 4명이 오리고기 코스요리로 점심식사를 마쳤다.자금과장 직책은 회계과장과

증권관리과장이란 자리와 달랐다. 제일 많은 업무가 집중되는 데다 아래 직원들의 불평불만을 청취하고 개선책이나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1차 식사 비용은 물론 후식으로 택한 커피 값도 자신이 기꺼이 부담하겠노라는 의미였음은 물론이었다. 아래 직원들을 다독이고 챙겨야 하는 직장 상사의 품위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최준수 씨, 은행 자금은 빨리 막지 않고 무어하고 계세요?”

오늘도 영업점으로부터 자금 내역을 집계하여 거래 은행마다 자금 과부족을 해결했다. 주거래 은행 계좌에 잔고를 얼마 남길 것인가도 이미 결론을 냈다. 모자라는 곳의 자금을 메꾸기 위해 남는 곳의 잔고를 인출하여 수표를 이곳에 입금하라는 일련의 과정도 마무리했다.

      

오늘도 이어가던 야근 중 저녁 식사로 짬뽕 곱빼기를 정신없이 흡입하던 순간이었다. 주 거래은행 여직원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호출을 받았다. 잔고가 부족하니 채워달라고 급박하게 요청했다. 순간 나는 화이트 셔츠 왼쪽 상단 주머니에 손에 갔다. 아뿔싸, 7.5억 원권 자기 앞 표 한 장이 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식사는 다음이었다. 은행 당좌계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매일 일상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가끔 이렇게 깜박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곳을 거쳐간 어는 선배의 이야기를 우리 동기는 소환해 냈다. 은행에 입금해야 할 수표를 주머니에 고이 모신 채 귀가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발견했다. 그 시각은 밤 1230분경이었다. 택시 신세를 지어 어음 교환소로 직접 행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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