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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1.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7편)

     

백 철우 씨는 이번에 발령이 나지 않을 거야.”
나의 첫 발령지 영업점 근무 시절이었다. 토요일 일과가 모두 마감된 오후 4시경이었다. 우리는 책임자와 남사원 몇 이서 고스톱 경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무실 2층 여유 공간에 자리했다. 회사 내에선 곧 전보 발령이 있으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남사원 중 이 점포에 가장 오랜 기간 근무 중인 백 선배가 발령 대상 영순위에 올랐다. 자신도 이번엔 어디론가 움직일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서무 대리는 백 배가 이번 인사발령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드디어 인사발령이란 뚜껑이 열렸다. 전보 발령 명단엔 백 선배 대신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찌 보면 나는 뒤통수를 한 방 강하게 얻어맞은 것이었다.  

19개월째 이곳 점포에서 근무 중이었다. ‘송충이가 언제 또다시 솔잎을 먹으러 갈지 모른다는 낙인이 오래전부터 찍혀 있던 터였

. 이에 반해 백 선배는 이곳 지역 출신에다 고등학교도 이곳에서 마쳤다. 그래서 우리 지점에서 연고 영업을 하는데 꼭 필요한 직원

으로 보았다. 지점장이 이미 본부에 잔류 요청을

해 놓은 것이었다. 

    

서무 대리를 비롯하여 모든 책임자들은 이미 이런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졸지에 내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아오지 탄광이라 불리는 자금부로 발령을 받은 것이었다. 애초 이번 발령 대상에 오른 백 선배 대신 나로 교체했다는 흔적이 읽혔다.  

    

백 선배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백선배가 이동이 되었다면 제대로 된 발령이었다. 하지만 대타로 나를 발령내기로 한 마당에 나의 전공 운운 이런 것은 따질 이유가 없었다. 우리 점장이 백 선배를 붙잡는 대신 자금부로 나를 날리는데 이미 양해를 구한 것이 분명했다. 이미 아오지 탄광으로 회사 내에선 그 악명이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나는 엄청난 좌천을 당한 것이었다.

      

평소 나는 초임 책임자인 대리는 물론 차장에

게도 고분고분하거나 비위를 맞추고 나아가 손바닥을 비비는 케릭터는 아니었다. 이러니

 이 정도 대가야 달게 받아야만 했다. 말로만

듣던 조직의 쓴 맛을 처음 맛보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이 회사에서 일어난 첫 대타 전보 발령이 내게는 두고두고 늘 부담이 되었고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직장 생활을 마감할 때

까지 이마에 달고 다니는 주홍글씨였다.      


이런 자세한 사연도 모르는 본부에 근무 중인

입사 동기는 내가 입사 후 첫 번째 본부 발령이

라며 축하 전화까지 연결하는 성의를 보여주었

.

     

에이, 한 마디로 그쪽 점포에서 신경을 덜 걸

쓴 것이지요. 법학을 전공한 직원을 이 자금부

로 보내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제가 업무에 관

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     

이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입사 동기는 내 처지를 위로하며 이곳의 분위기를 귀띔해 주었

. 입사 동기를 배려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

끼는 순간이었다.  

   

최 준수 씨, 하는 일이 어떼요? 재미가 있나요?”

제가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요.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요.”

그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인데...”     

맞은편 회계과 차 대리와 주고받은 대화였다.

돈을 받고 하더라도 내가 잘 알거나 좋아하는 일 또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재미가 있지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차 대리의 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지적은

그 이후 결코 짧지 않은 직장 생활 내내 내가 곱씹을만한 대단한 가치가 있는 화두라는 것을 세월이 흐를수록 절감했다.  생계를 위해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밥을 먹고 살아가려면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치열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지상의 명령으로 들렸다. ‘적성에 맞는 일

운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나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 대신증권 너희들이 다 해 먹어라. 오늘 수표

를 끊어 간 것이 얼마인 줄 알아? 자그마치 23.5

억 이야.”
과장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 것이 마지막입니다. 좀 봐주세요.”    

 

은행은 예금을 유치하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일정한 비율의 지급준비금의 적수를 쌓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일정한 제재를 받는다. 이에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당좌예금의 잔고

를 늘려 줄 것을 요구한다. 지급준비금의 적수를 쌓는데서 오는 손실을 무이자로 받는 예금을 대

출 재원으로 운용하여 만회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 회사 자금부 직원들에겐 증권사 직원들과 같은 푸대접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는 우리 회사가 충분한 규모의 예금 평잔을 유지해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또한 우리 회사는 상대적으로 수표 발행 규모가 작았고

대신 계좌 간 대체 입출금으로 처리했다.  

    

당시만 해도 일선에서 뛰는 증권사 직원은 나

이가 어린 초급 사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회사는 중견 사원에다 석사학위 보유자 우대

라는 치침을 걸고 신입사원을 뽑았기 때문에

일선 업무를 맡고 있는 남사원도 대부분 20대 후반을 넘어섰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고령자에 대한 예우로 보였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     

지금 유행하는 트로트 노래 오디션이 아니었다. 투자신탁이나 증권사 영업점 직원이 영업을 마

감한 후 고객에게 받은 수표 보따리를 '늦은 시각'

에 들고 은행 당좌계를 찾은데 대한 벌칙이었다. 은행 창구 직원이 해당 수표와 현금 집계가 끝날 때까지 창구에 비치된 마이크를 들고 자신의 18번을 2절까지 모두 뽑아야 했다.

     

우리 회사 영업부 출납 직원도 급여일이 되면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기 일쑤였다. 우리 자금부에서 급여를 10만 원권 

자기 앞 수표와 현금으로 부서별 자급을 하면 이

것이 고스란히 우리 회사 영업부 창구로 흘러 들어갔다. 상고 출신 여직원과 달리 중견 남자 사원들은 이 수납 수표의 집계를 하는데 익숙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은행에 도착하는 시각이 부득이 늦어졌다. 우리 회사 영업부 출납직원은 미리 선수를 쳤다. 급여일 등에 마감

이 늦어질 기미를 보이면 귤 등 과일 보따리를

우선 들이미는 물량 공세를 폈다. 이에 자신의

노래 실력을 공개해야 하는 처지를 가까스로

 면할 수 있었다.

     

귀사의 업무를 마감한 후 30여분이나 지나서

야 우리 직원들이 퇴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연일 이어지는 야근에 애로가 많습니

. 향후 거래 계좌 입출금을 보다 이른 시각에 마무리해 줄 것을 요망합니다.”     


시중은행들은 노조가 중심이 돼서 ‘정시 출퇴근 운동’ 벌였다. 지금보다 좀 늦은 시각에 출근

을 하고 이른 시각에 퇴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보상 없는 야근이나 연장 근로를 줄이겠다고 대대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우리 자금부의 주거래 은행에서 공문을 보내

왔다. 자신들 은행 직원들의 퇴근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우리 회사의 업무 마감이 늦은

것을 꼽았다. 자금과 직원들의 야근과 늦은 퇴

근이 일상화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또 한

번의 단면이었다.      

샛별 보기 운동에 버금가는 자금과 근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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