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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2.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8편)

                       

우리는 오늘도 서울신탁은행 명동지점 1층 로비 분수대 앞에서 4시 정각에 집결하기로 했다. 우리 회사가 차입금을 조달하는 기관은 증권금융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투자금융회사로 불리는 단자회사, 은행 순이었다. 단자사는 규모가 큰 메이저사부터 중소형사까지 모두 거래를 하고 있었다. 거래처의 다변화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는 발품을 많아 팔아야 했다.

      

콜머니 약정을 할 때 융통어음을 발행했다. 이 어음 실물을 주 중에 하루 이틀 날을 정해 해당 단자사에 직접 건네주어야 했다. 이 어음 실물을 직원별로 배분했다. 이를 이른바 딜리버리 업무라 이름했다. 이 딜리버리 임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모이는 단골 장소가 늘 정해져 있었다.

     

같은 자금과 전입 선배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음은 물론이었다. 단자사는 메이저 회사와 중소형사 간 사무실 외형부터가 많은 격차가 있었다. 메이저사는 입주해 있는 빌딩의 엘리베이터부터 고급스러웠다, 규모가 일단 일정 수준을 넘어섰고 고급스러운 내부 자재 덕분에 광채까지 났다.

      

이 정도에서 용건을 꺼내면 여직원이 음료수를 들고 맞이합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나는 인계를 받았다. 단자사를 찾는 고객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거래 고객은 주로 우리 같은 대형 금융기관이었고 개인 고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일반 금융기관과 달랐다. 본부 빌딩 내에 영업부가 자리하고 있을 뿐 다른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는 별개의 지점은 아예 없었다.  

   

1997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단자사의 영업 행태에 있었. 해외에서 저리로 단기 자금을 차입하여 국내

에서 장기 고금리 대출로 운용했다. 결국 이 미스매칭으로 자금 경색을 가져왔고 IMF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나중에 대부분의 단

자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내가 자금과에 근무하던 시절만 해도 이 단자사 영업은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6월 말 결산 법인인 이들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회계상 편법을 동원해 줄이거나 감추는 일까지 자행했다. 여유 있게 너른 영업장이나 객장의 공간엔 직원이나 고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 자금과 대비 업무 강도를 비교한다는 말 자체가 적절치 않았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시행된 ‘청탁 금지법

’이 도입되기 이전이었다. 이곳에 근무 중인 여직원들 모두는 영화배우나 탤런트, 패션모델

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빼어난 외모를 자랑했다. 기본적으로 훤칠한 키에 비주얼은 최상급이었

. 공개경쟁 채용 대신 연고자 중심으로 직원

을 뽑는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한 동안 이렇게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일자리가 나중엔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자본금을 늘리는 증자때마다 우리 사주를 레버리지까지 동원하여 인수했다. 이것이 나중엔 애물단지가 된 것이었다. 회사의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자 이 우리 사주는 이른바 노비문서로 전락했다. 이에 대출금의 상환을 자신의 공식적인 급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수직 낙하했다. 실제로 이 단자사 직원들이 이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퇴근 후 알바 시장에 드나드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우리 자금부 동료 직원의 증언이 아직도 생생하다.

      

회계과 천 선배는 자금부에 근무 중임에도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책임자 시험에 합격을 했다. 입사일이 다른 합격자보다 앞선 덕분에 오늘 오전 10시 정각에 대리 승진 사령장을 사장으로부터 직접 수령 후 자신의 자리로 복귀했다. 그 이후의 일이었다. 표 대리는 자신의 입사 동기인 인사부 책임자에게 이번 인사발령 전체 명단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승진자는 정식으로 문서가 도착하기 전에 개별적으로 사전 통지를 하여 수령장 수여식을 진행하는 것이 대세였다.   

  

표 대리, 아직 인사발령이 나지 않았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초임 책임자인 대리 승진자가 이미 사령장을 손에 쥐고 자신의 자리로 복귀한 것을 우리 직원 모두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마당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인사상 보안을 잘 준수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었다. 이 조직이 중앙정보부도 아니지 않은가. 

    

자금과 선임 여직원은 매일 붙박이로 야근을 이어갔다. 여직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많은 인력이 필요 이상으로 은행의 최종 잔고가 나올 때까지 대기를 한다는 것이 낭비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남자 직원 4명은 교대로 야근에 참여하는 이른바 당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당시는 1 주일 6일 근무제였다. 평일과 달리 주말인 토요일은 별도 순번제로 돌아가도록 정했다.

     

내가 이곳으로 전입을 온 지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이 당번제의 가동에 들어갔다. 나는 조만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결혼 상대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선임 선배 직원은 가끔 내게 선의를 베풀었다. 이른바 샌드위치 데이나 연휴 시작 전일 등에 자신이 기꺼이 당번을 바꾸어주겠노라고 수시로 내게 제안을 했다. 아오지 탄광이라 불리는 열약한 근무조건인 이 부서에서 같이 고생하는 남자 직원 간에 끈끈한 동료애가 이미 굳어졌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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