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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3. 2022

지옥 같은 사금부 시대(9편)

                       

최 준수 씨가 당번으로 남는 은 웬일인지 항상 잔고가 일찍 나오네요.”

주거래 은행 선임 여직원이 내게 일렀다. 내가 결코 듣기 싫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복불복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내가 무어 다른 직원들보다 특별히 업무 역량이 더 뛰어나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거래 건수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거나 자금 교환이나 결제가 수월하게 이루어진 덕분인 것이 분명했다.   

   

이제 50억짜리 한 건만 들어오면 마감을 할 수 있습니다.”


선임 여직원은 자금과 대리에게 보고를 했다. 그런데 이 한 건이란 것이 문제였다. 자정이 넘었음에도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좋은 소

식은 없었다. 우리 단골 거래처인 단자사 책임자로부터 의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

금을 결제해야 할 최종 진원지는 ‘@@종합목

재’라고 했다. 재벌 계열사임에도 부도위기

까지 몰렸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새벽1시

30분경 극적으로 입금이 되었다. 아무리

천하의 재벌 계열사라지만 일시적인 자금

경색으로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극적으로 위기를

넘기는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 보

있다. 담당 대리를 비롯하여 야근 중인 우리

동료 직원 모두는 덩달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최 준수 씨, 우리도 앞으론 남들처럼 결혼식

장에도 가고 친구 모임에도 참석하고 그렇게 하지요?” 

    

오늘도 토요일 오후 연장 근무 중이었다. 이 자금과란 곳에 근무하는 직원은 모든 경조사는 물론 기타 개인적인 모임에 참석을 하기란 원천

적으로 불가능했다.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인 인

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 여직

원 책상 위의 최신형 카세트 레코더 라디오에선 김민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영 열차 안에서란 노래가 연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의 선곡은 물론 자금과 고참 여직원의 몫이었다.  

    

참 이곳에서 계속 근무하게 되면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할 수가 없어!” 얼마 전 담당 대리가 하던 푸념도 덩달아 떠올랐다. 

    

자금과도 빠졌어?”

, 직원들 이리로 나와주세요.”


책임자 시험을 10여 일 앞둔 날 오후였다. 이 시험 준비를 돕기 위해 부서에 따라선 한 두 달 업무에서 해방되는 복 받은 부류들이 드물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아니나 그 보다 낮은 혜택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이 비공식적인 혜택이나 배려에 따른 근무 기강 해이를 바로 잡겠다는 명분으로 본부 각 부서 직원의 근태를 불시에 점검하러 나섰다. 인사부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우리 자금과 남직원 4명은 일주일 전부터 2명은 본인 자리를 지키고 나머지 2명는 우리 자금과 뒤편에 마련된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그나마 틈틈이 교대로 시험공부를 이어 가기로 했다.  

   

인사과장이 우리 자금과 남직원 4명이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를 점검하며 입 밖에 낸 멘트에 자금과장이 대꾸를 하고 나섰다. 정말 아오지 탄광이었다. 우리 자금과는 이 근태 점검을 건너뛰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참 한심한 노릇이었다. 2개월 전부터 도서관 등에서 상주하며 시험 준비를 하는 직원들의 자리부터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그랬다.

     

최 준수 씨. 운용평가부 친구들은 워낙 시간이 여유롭다 보니 예상문제 100100답 자료까

지 만들어가며 공부를 실껐 하고 있다네요...”

회계과 입사 동기의 계속되는 푸념이었다.

     

자금부 직원 중 늦은 시각까지 사무실에 잔류하

는 그룹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었다. 우리 자금

과 직원들은 비자발적 야근자’ 임에 반하여 또 다른 한 부류는 자발적 야근 그룹이었다. 후자 그룹 멤버들은 업무 마감이 되었음에도 자진하

여 사무실에 남았다. 늦은 시각에 귀가를 하는 부류는 회사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사정 때문

이었다. 

    

회계과 대리와 관리과 대리, 과장이 이 그룹 단골 멤버였다. 이에 같은 4층에 근무 중인 전산부 선임 직원도 자주 합류했다. 이들은 우리 자금과 맞은편 창가 쪽 여유 공간에 진을 치고 매일 바둑 대국을 벌이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어차피 정상적인 퇴근 시각에 맞추어 사무실을 나서더라도 시내 교통 정체로 각자 자택에 

하는 시각은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잔류하는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허구한 날 야근을 이어가는 우리 자금과 직원이 보기엔 이는 그럴듯한 핑계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좋아하

거나 즐기는 바둑 대국을 벌이기엔 이곳만 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사 내 또는 감독기관의 업무 감사 기간 중엔 이 그룹은 개점휴업 상태로 즉시 모드 전환이 언제나 가능했다. 자신들의 업무 관련 감사 일정이 없는 경우에도 혹시 자금부 차원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일거리가 자신들에게 떨어질까 두려워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버리곤 했다.

      

이러니 우리 자금과는 아오지 탄광 중에서도 가장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 구간이었던 것이었다. 오늘도 대국을 한 판 벌이려던 이 멤버들은 모종의 낌새를 챘는지 줄행랑을 쳤다. 이렇게 해서 때론 회계과 관리과의 소관 업무를 우리가 덤터기 쓰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금과 직원들 모두는 이른바 어둠의 자식들명단에 이름을 이미 당당히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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