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여기, 또 여기 이렇게 제대로 빠짐없이 적으세요. 잘 못하면 구직급여가 몽땅 날아갑니다. "
“ 이렇게 적었는데 또 어떻게 해야죠?”
“그러니까 똑바로 들으라고 했잖아요? 제대로 듣지 않고 왜 자꾸 다시 묻지요?”
나는 지난 연말에 명실상부하게 비자발적 실업자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고용안정센터를 다녀왔다. 20여 년 동안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냈으니 구직급여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나는 방금 전 상담을 했던 주무관에게 핏대를 올리며 어필을 했다.
“방금 무엇이라고 말했지요? 서류 작성요령을 다시 묻는 나에게 따진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이어 주무관은 구직급여란 것이 본래 고용보험료를 납부한 것에 대한 대가나 보험금 성격이 아니라는 어처구니 없는 안내도 지속적으로 했다. 그러면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은 민원인들도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이었다. 아직도 공무원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구직급여를 정상적으로 받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나의 경우 구직급여는 매 28일 단위로 최대 290일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직급여를 그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 상응한 활동을 해야 했다. 주무관에게 그 절차에 관한 안내 책자를 받고 설명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구직급여를 신청하는 업무 흐름이 머릿속에 얼른 들어오지 않았다.
본래 구직활동이란 자신이 재취업하고자 하는 회사를 찾아야 한다. 고용담당자와 면담을 하고 해당 사실의 관련 자료 등을 갖추어 센터에 제출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 것이 어려울 경우 센터를 찾아 재취업 관련 교육을 수강하는 방식도 있는데 이는 모두 오프라인 방식이다. 이외에 외부 직업훈련원이나 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은 교육기관에서 온 오프라인 교육을 받아 취업활동에 갈음하는 방법도 있다.
이외에 구직활동 이외의 활동이란 것이 있다. 유튜브 등에서 해당 내용의 교육을 받고 이수 내역을 첨부해도 된다. 이외에 고용노동부에서 자체 마련한 강의를 수강하면 수료 사실을 임시 저장하여 인터넷으로 센터에 전송하는 방법으로 신청도 가능하다. 컴퓨터를 다루는 재주가 별로 없음에도 나는 이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구직 외 활동으로 소정의 동영상 교육을 받더라도 언제든지 구직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8일 중 구직급여 수령 직전일 하루만 자정부터 오후 5시 정각까지 정해진 시간 내로 못을 박았다. 인터넷에 장애가 있거나 혹시 노트북이 제대로 구동되지 않을 경우엔 정해진 기한 내에 구직급여를 제대로 신청하지 못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같은 회사 출신 퇴사 동기와 같은 처지의 고향 친구와 수시로 연락을 했다. 영상통화의 방법도 동원하여 구직급여 신청에 관해 수차례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절차도 물었다. 이제 어느 정도 큰 틀이 잡혔다. 그럼에도 나는 버벅대지 않고 혼자서 물 흐르듯이 일련의 과정을 마칠 자신이 아직도 없었다. 인터넷 신청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정해진 날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기 전에 고용센터로 부리나케 달려오라는 강도 높은 주의도 받았다. 이러니 해당일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이번 회차에는 주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직급여 신청에 성공했다. 그러나 나는 28일 단위로 돌아오는 인터넷 신청일마다 매번 ‘마법’에 걸린다. 구직활동 이외의 활동으로 인정받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다음 단계인 인터넷 신청이 내게는 ‘쥐약’이었다. 절차가 손에 익지 않았다. 여러 가지 탭이 있고 중간중간 경고성 문구 숙지 란에 체크도 해야 했다. 경우의 수가 여럿이었다. 각종 탭과 버튼이 여럿 널려 있었다. 이번 고비는 잘 넘겼지만 매번 해당일이 되면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리셋’이 되었다. 지난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은 구직 급여가 날아갈 수 있듯이 몽땅 한 번에 날아갔다.
이 날짜와 기한의 제약 때문에 나는 해당일은 물론 앞 뒤 날엔 경조사 참여나 개인적인 약속, 지방 여행 등의 일정을 전혀 잡을 수가 없다. 이 문제의 D-day를 반드시 피해야 하는 팔자가 되었다. 모바일 신청 방법도 있으나 이는 나에게 훨씬 고난도의 여정이었다.
구직급여 신청일을 특정일 한정된 시간에만 할 수 있게 정한 것은 분명히 ‘행정편의주의’이다. 공무원들이 자신들 업무량을 좀 줄이거나 손쉽게 하자고 고안해 낸 것이다. 민원인들을 단순한 행정행위 객체로만 인식한 때문이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날에 제약에 없듯이 구직급여 신청이 가능한 날과 시간도 대폭 늘려야 마땅하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구직급여가 몽땅 날아갈 수 있습니다’라는 공무원의 무미건조하고 협박성 조언이 오늘도 내 귓전을 때린다. 오늘도 여러 가지 관련 자료를 뒤적이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구직급여 신청에 성공했다. 이제 마법에서 풀렸으니 미루었던 아침식사를 마쳤다. 최근 내게 아주 화급한 과제가 된 자격증 시험 대비 인터넷 강의 수강을 오늘은 하루 쉬어 가는 임시 공휴일로 정했다. 오늘은 대단한 과업을 달성한 날이다. 이제 구력이 붙어 한 걸음씩 발전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7번이나 더 마법에 걸릴 수밖에 없는 남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