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에게도 이런 행운이 올 때가 다 있다니!!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 골방 수준의 자그마
한 사무실로 출퇴근 한지가 이제 겨우 만 1개월
을 넘어섰다. 오늘 오전에는 또 한 번의 이삿짐
을 정리했다. 흩어져 있던 책과 원고, 신문 스크
랩 파일 철 등을 다시 한번 분류했다. 벌써 점심
시간이 되어 문밖을 나섰다. 무엇으로 허기를 달
랠 까 고민했다. 내 사무실은 음식문화 거리의 한가운데 있다. 인근을 한 바퀴 휘익 돌아도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출발지점이 굽어 보이
는 곳에 이르렀다.
갑자기 내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인근에 최근 오
픈하여 시설도 말끔하게 단장한 공영 주차장의
사방 벽면에 내 걸린 현수막에 시선이 꽂혔다. 정
기 주차권을 발매하고 월주차도 신청을 받는다
는 내용이었다. 월주차요금은 6만 원에 불과하고 오늘로 신청이 마감이랬다. 점심식사의 메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주차장 사무실로 단숨
에 내달렸다.
담당자는 일단 차량등록증 사본이 있어야 접수
를 해 주게 단다. 나는 애마를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 한편에 고이 모셔 두었기 때문에 필요한 서류를 금방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
저하면 모처럼 온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을 것같
앗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되도록 이른 시간 내
보완해 줄 테니 우선 등록 접수를 해달라고 부탁
을 했다. 관련 서류를 작성 후 요금을 신용카드로 결제를 마쳤다. 늦어도 오후 4시 30분까지는 등
록증 사본을 가져다 달라고 다시 한번 일렀다.
일단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였으니 카드 결제를 취소까지 하면서 접수 신청을 없었던 것으로 되
돌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인근 음식점을 들러 평소보다 값이 나가는 메뉴를 주문했다. 이 ‘월주차 계약의 약정’이란 게 나로선 오랜동안 찾고 있었던 절박한 작은 소망이었다. 자축하는 의미로 혼자서 특식을 먹
기로 작정을 했다.
내 보금자리에서 사무실까지는 약 1.8 키로 미
터 거리이다. 도보로 약 30분 내외가 소요된다. 버스로는 4구간 거리이다. 버스의 신세를 지다
라도 기다리고 일부 걷는 시간을 합하면 20분 내외가 필요하다. 걸어 다니기엔 아직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강추위나 폭설 등 때문이다. 머지않아 아지랑이 너울대는 봄이 오면 운동 삼
아 걸어서 출퇴근하려는 생각도 있다. 지금은 주로 버스 편을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비용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1월에 7만 5천 원의 차 삯
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월 주차 요금 6만 원과 견주어 보았다. 기름 값과 감가상각을 무시하면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보다 나의 애마의 신세를 지는 편이 절대적으로 우위다. 무거운 짐을 옮겨
야 할 경우나 급한 용무가 있어 장거리 주행이 필
요한 때는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얼마 전 현직에 있을 땐 이런 주차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는 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주차장에 관
해 수 차례 문의한 바 있다. 노상 주차장을 비롯
하여 공영주차장, 인근 대형 마트에 딸린 주차장
을 모두 수소문을 했다. 아쉽게도 월 주차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층 사무실의 입주자 중엔 도보 10분 내외
의 거리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에 차를 세워 두는 입주자도 있었다. 지금은 외부 차량의 무단 주차
를 단속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단속하
는 쪽으로 돌아설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안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 오피스 밸리의 원 임대인은 인근 아파트 단지와 월주차 약정 계약을 추진하
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언제 성사될지 미
지수다.
내 주위에선 이젠 퇴직을 하였고 소득 절벽이 생
겼으니 절약도 할 겸 운동을 삼아 도보를 출퇴근
을 하는 것을 권유하곤 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충고이긴 하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 생각과 나의 그것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이러다 보니 이
번 월 주차 약정이란 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별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오랜만에 호박
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셈이었다.
이즈음에서 오래전 일화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
면 자연스럽다. 내가 군 입대를 계속 뒤로 미룬 채 대학원 시절까지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
이었다. 여동생이 하루에 2개씩이나 마련해 준 도시락으로 버티며 모교 법대 전용 도서관 열람
실을 시계추처럼 드나들던 때였다. 당시 군대 문
제를 먼저 해결하고 복학하여 이 대열에 동참한 입학 동기 절친이 있었다. 이때 자그마한 인연으
로 우리 모교 중앙도서관을 같이 드나들던 일행
도 있었다. 서울 소재 모 여대를 졸업한 여고 동
기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교원임용시험을 준비
하고 있었다. 이 동기생들은 우리 동기와 얼굴을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도 공부를 마치고 서양 건축물 고딕 양식을 방불케 하는 중앙 도서관 정문을 나섰다. 은은하
고 우아하게 울려 퍼지는 늦은 밤 11시를 알리는 시계탑 종소리를 들으면 마음속이 차분해지고 지친 몸이지만 다시 한번 힘이 솟았다. 교시탑을 지나 등용문을 향하던 중이었다. 당시엔 민족의 대이동 시즌인 양대 명절에는 귀성열차표를 구
하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미션이자 이벤트였다.
나의 절친은 이와 관련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친구는 귀성열차표를 구하려 발매창구에 길게 늘어선 줄을 섰으나 표를
구하지 못해 고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인근에서 30대 후반의 젊은 사나이가 외쳤다. “정읍행 열차표가 있는데 필요가 없어졌으니 되팔겠습니다. 어디 필요 하
신 분은 없나요?”라며 연신 외쳐 대는 모습이 눈
에 들어왔다. 하늘 높이 뻗은 오른손 끝에 표를 쥐고 선 원매자를 소리치며 찾고 있었다. 이런 경
우 보통 사람이라면 “몇 장이나 가지고 있지요? 얼마에 팔 겁니까?” 등을 먼저 묻게 된다.
그런데 친구는 우선 이 사내가 꼭 쥐고 있던 열차
표를 우선 낚아채고 선 흥정을 나중에 하여 고향에 편히 다녀왔노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이에 대학 동기이자 동 절친으로 장단을 맞추거나 추
임새를 넣는다는 의미로 한 마디를 보탰다. “역
시 내 동기라서 머리도 좋고 똑똑하단 말이야”라고 하였다. 별 달리 깊은 생각 없이 한 마디를 던진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교원임용 시
험을 준비하러 모교 도서관을 이용하며 현장에
있었던 모 여대 졸업생이 나중에 나에게 실토를 했다. “사실 당시 대학 동기에게 한 추임새 때문
에 그 자리에서 배꼽을 잡고 나뒹굴 정도였는데 간신히 참아 냈어요”라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흥정은 나중에 하고 귀성열차표부터 먼저 확보
한 친구의 당시 작전이 맞았다는 내 생각에는 오
늘도 변함이 없다.
나는 오늘 월주차 약정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
러 우리 아파트 단지 주차장으로 먼저 발길을 돌
리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서류 신청과 접수를 먼
저 헸고 요금은 카드결제를 먼저 해 놓았다. 그리
고 다음 절차를 진행했다. 내 대학 동기 절친이 오
래 전에 귀성열차표를 손에 넣었던 건에서 아이
디어를 얻었다.
나는 회사와 정년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끊은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다. 짧은 세월 동
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시행착오도 있고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우선 평소 옷차림부터 달라졌다. 금융기관 직원 근무복인 양복 정장부터 벗어던졌다. 샐러리맨이 유일하
게 멋을 부릴 수 있는 툴인 넥타이도 무려 100여
개나 소장하고 있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
다.
나는 지금 매일 자격시험 대비 인강을 여러 편을
듣고, 자전적 수필을 하루에 몇 편 쓰거나 다듬
기도 한다. 아울러 주식시장 흐름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 또한 소득 절벽이란 것을 실감한다.
국민연금 조기 수령 자금과 실업수당을 활용하여 제2의 생업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예전에 치열하
게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과 영업 일선 필드
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매진하던 시절이 있었
다. 이 시절에 기울였던 노력 이상을 경주하면 이 어려운 세월이 지나고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격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관련된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게다가 국내 저명한 작가의 지도를 받아 자전적 수필을 쓰는데 매진하면 스테디셀러 작가로 데뷔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나는 이를 위해 오늘도 선택과 집중을 하여 제2막 인생의 준비활동에 날로 매진하고 있다.
현직에 있을 때 고객 기반에 여유가 있고 이른바 종합자산관리 업무에 매진하던 전반기 인생이 있었다. 전반기 인생의 전성기에 못지않은 꽃 피
는 호시절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열공 모두에 빠진다.
“월주차 계약 약정” 이란 자그마한 일이 지금은 ‘소확행’이지만 조만간 이 정도는 이야기거리에 올릴 가치가 없어질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