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세대 다른 분 대비 월등히 장신이며 한 분 밖에 안 계신 외삼촌은 겨울밤 늦은 시각 300번지를 찾았다.
이미 저녁식사 시각은 한참 지난 뒤였다. 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누나에게 메밀묵을 사 오라고 분부를 내렸다. 초여름날 그 많은 맹꽁이가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 대던 세 마지기 논에서 멀지 않은 나의 1년 선배네는 언제나 메밀묵을 대령했다.
주워 모은 도토리로 묵을 쑤기도 하지만 메밀은 그보다 농사가 가능하여 대량으로 조달이 용이하다. 따라서 메밀묵이 대세였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흐물흐물하고 회색에 가까운데 후자는 짙은 고동색에 가깝고 도토리 특유의 떫은맛을 자랑했다.
무채를 썰듯이 네모난 묵을 채로 썰고 쫑쫑 썰은 배추김치와 지고추를 토파 넣고 김 부스러기도 첨가했다. 그리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 시원하고 담백하여 겨울밤 간식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가끔 묵이 조기 완판된 경우엔 '동치미 국수'가 그 자리를 메웠다.
'오늘은 혹시 외삼촌이 오지 않으려나?'
가끔 듣게 되는 나의 독백이었다.
면소재지인 우리 집 300번지가 속한 부락은 인천 이씨 집성촌이다. 우리와 지근거리에 사는 큰고모부와 어머니 친정(나의 외가) 동네의 큰이모부도 동성동본으로 같은 집안이다.
당시는 '4대 봉사'라 하여 제주 기준으로 4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기제사를 모셨다. 제주가 한 세대 아래로 내려가면 4대 조상이 5대가 되어 시제로 올려 모시고 더 이상 기제는 모시지 않았다. 이리하여 5대조 이상 조상은 일정한 범위, 예컨대 8촌 이내의 집안 친족들이 직접 산소에 집결하여 시제를 모셨다.
이십 리 정도 떨어진 부락에 사는 큰이모부가 오늘은 시제를 모시고 300번지에 들렀다. 시제 음식으로 준비한 것들을 비록 적은 양이지만 한 가지도 빠짐없이 고급스러운 한지에 정성껏 포장한 '시사 봉송'을 선물로 들고 왔다. 화장품의 샘플이나 아파트 분양 현장에 흔히 등장하는 조감도의 '미니어처'를 방불케 했다.
아버지는 어미가 새끼 제비들을 그렇게 하듯이 6남매를 한데 불러 모았다. 투박한 군용 맥가이버칼로 모든 종류 음식을 공평하게 6등분하여 골고루 배분했다. 봉송을 포장한 한지를 풀어헤치면 아래 바닥부터 시루떡, 부침개, 산적, 두부전, 피둥어, 밤, 감, 대추, 명태포 등 이른바 간이음식 뷔페가 차려졌다.
어미가 삐약이 제비에게 먹이를 물어다 입에 쏙쏙 넣어주는 풍경에 다름이 아니었다. 오늘처럼 6남매가 죄다 모인 자리에서 "우린 참 다복하기도 한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라는 말씀이 이제 어느덧 관용구가 되었다. 아버지는 6남매 안위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혹시 오늘은 이모부가 300번지에 오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