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도 안 보는 여자와 사표도 안 쓰는 남자

by 그루터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의 정년퇴직일까지는 아직 45여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이 터졌다. 새벽형 인간인 나는 오늘도 사무실 출입문을 제일 먼저 통과했다. 7시 50분에 개인 PC의 전원을 켰다. 제일 먼저 사내 편지함이 눈에 들어왔다. “정년퇴직 도래 안내”라는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이름이 달려 있었다. 수신인은 나 혼자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참조인 란에는 무려 10여 명의 직원 이름이 자리를 다투어 올라 있었다.


이 한 많은 직장생활 마감일을 당사자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정년퇴직 도래 안내” 라니. 단순한 사실의 안내에 그치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더욱 친철하게도 사직서 양식도 첨부되어 있었다.


“2020.12.31일 정년 도래로 인하여 퇴직하고자 하니 처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란 황당한 문구에 한 번 더 놀랐다. 아니 정년 기한이 도래하면 자동으로 직원의 신분이 종료되는 ‘당연면직’인데 뜬금없이 사직서 운운하니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대단한 큰 사건이고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10여 명에게 널리 소문을 낸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만 50세까지는 여유가 좀 있었던 2007년 10월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회사 간 합병과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201명을 무늬만 희망퇴직이란 이름을 달아 일찍이 집에 보냈

다.


회사 측은 당시 근속연수와 나이를 기준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나는 1년 차이로 자랑스럽게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다. 1년이란 세월이 생사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나는 당시 회사의 권유를 당당하게 물리쳤다. 그러다 보니 그 이후론 회사는 내내 나를 대역죄를 저지른 범인 취급을 했다. 그 후 3회 이상의 크고 작은 허들이 이어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인력지원실 담당자에게 일단 강하게 어필을 했다.

“아니, 정년퇴직일이 도래하면 ‘당연면직’이란 훈장을 달고 회사의 문을 나설 것인데 무슨 이유로 사표를 써야 하나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네요. 만약 사표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사표를 쓰지 않으면 하는 수 없습니다. 퇴직 후 구직급여를 제대로 받도록 회사에서 배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었다. 의원면직이 아니라 비자발적인 퇴사라는 정년퇴직 문서로 충분히 갈음하면 될 것인데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댔다.


회사는 사직서 제출 이외에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정년퇴직의 근거를 남기기 위해 지점 내에서 정년퇴직을 하겠다는 자체 기안문서를 남기라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점입가경이었다. 이 정도에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빈틈없이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여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뒤탈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본래의 의도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기서 내가 대학시절 잘 나가던 모가수가 불러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보통의 여자라면 성년, 아니 그 이전부터 같은 연령대의 남자들 대비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작은 상식이다. 나는 회사 내에서 직장생활의 목숨이 위협받을 때마다 이 노래를 불러냈다. 그런데 남자인 나도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겨울도 안 보는 여자에 상응하게 대신 나는 ‘사표도 쓰지 않는 남자’가 되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런데 아깝게도 ‘사표도 안 쓰는 남자’로 회사의 문을 나서겠다는 이 야무진 목표 달성은 코 앞에 두고 좌초 위기에 빠졌다.


케미가 유난히 좋았던 지점장에게 결코 큰 부담을 주는 것은 기본 예의가 아니었다. 내가 사표를 쓰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아무래도 지점장이 곤혹을 치를 가능성이 있었다.


죽을 고비를 10여 회나 넘기고 여기까지 온 나는 결국 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표도 쓰지 않는 남자’에서 ‘사표의 근거 문서의 기안도 하지 않는 남자’로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사표를 쓰지 않는다고 어차피 이 조직에서 더 머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32년간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의 글솜씨를 약체로 평가하여 친절하게도 회사에서 직접 마련해준 사표 양식의 빈칸을 메웠다. 이래서 ‘사표도 쓰지 않는 남자’라는 나의 지상과제이자 숙원사업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같은 업무처리도 회사 측이 먼저 빠져나갈 수 있는 도피구부터 마련한다. 이번 정년퇴직으로 인한 사직서 제출 요구 건도 이러한 회사 정체성이 반영된 빙산의 일각이었다.


직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조그만 배려도 없었다.


이제 나는 조직원에서 야인이 되었다. 사표도 쓴 마당에 이후로는 ‘거울도 자주 보는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 2막에 훨씬 도움이 되고 어울릴 것이다.


수차례에 걸쳐 나를 집으로 보내려던 회사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 ‘사표도 쓰지 않는 남자’로 오랜 기간 버틴 나는 회사 측에서 보면 아주 커다란 애물단지였다.


내가 어떤 변칙적인 방법이라도 동원하여 정년 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갈 까 보아 몹시 불안했나 보다.


회사는 과잉대처를 자제하고 “사표도 안 쓰는 남자’로 회사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자부심을

가득 안고 회사의 문을 나서게 했어야 했다.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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