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이가 내 군대 동기야

금융기관 직원은 과연 항상 을인가?

by 그루터기


“야, 이 자식아! 너는 모가지가 도대체 몇 개야? 장●동이가 내 군대 동기거든. 내가 공기업에 근무하던 처삼촌도 자리에서 끌어낸 사람이야. 정말로 나하고 끝까지 한번 가볼 거야”

“ 사장님, 제발 고정하세요. 제 이야기도 들어보셔야지요.”


약 5년 이상 나와 거래를 해온 강 사장의 어깃장이었다. 거래 개시 이후 줄곧 매우 양호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브릭스펀드를 전액 환매했다. 일정한 수준의 손실을 보았다. 그 손실액을 나보고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이제껏 8천만 원을 우량 회사채와 ELS 등에 분산 투자하여 선순환을 이어왔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의 3 ~ 4배의 양호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가져갔다. 이에 만족한 강 사장은 자신의 지인을 나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전 세계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 평가손이 발생하자 이를 어찌할까 전전긍긍했다. 이윽고 손절매를 감행했다. 이에 펀드의 가입을 권유한 나에게 처분 손실의 일부를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부채권)의 부실화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이에 전 세계 주식시장은 폭락을 했다. 투자 대상국의 구분 없이 모든 투자상품은 커다란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강 사장은 자신이 가입한 계좌의 투자 원금이 모두 날아가 버릴까 매우 불안해했다.


강 사장은 얼마 전에 유선으로 나에게 투자손실의 일부를 물어낼 것을 종용했다. 이에 나는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강 사장은 나에게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왔다. 만약 자신의 주장에 응하지 않으면 감독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고 나아가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강 사장에게 해당 상품을 판매할 때 정해진 매뉴얼을 정확하게 모두 지켰기 때문에 나는 별로 걱정이 없었다. 강 사장이 보내온 서신에 조목조목 논리 정연하게 반박을 하여 회신을 했다.


“저는 해당 상품의 판매과 관련하여 책임이 전혀 없습니다. 상품의 투자대상, 리스크, 환매 방법, 절차 등 모든 항목을 완벽하게 설명했습니다. '투자상품의 손익은 모두 고객에게 귀속되는 것'은 아주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게다가 사장님께 그동안 지속적으로 양호한 수익을 내드렸기 때문에 다른 고객도 소개해주셨지 않습니까?”


이 답신에 격노한 강 사장은 나한테 헐레벌떡 달려왔다. 내가 보낸 회신을 받아 든 강 사장은 숨이 탁탁 막혔나 보다. 손까지 부르르 떨었다. 나는 강 사장을 번듯한 빌딩의 1층 사무실 안쪽에 자리한 우리 지점 상담실로 일단 안내를 했다.


“나는 직업군인이었다. 한 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장●동을 아느냐, 내 군대 동기다. 네가 제대로 돈을 물어주지 않으면 주위의 실력자들을 총동원하겠다. 오늘도 이미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을 다녀오는 길이다. 그리고 나는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서 당신을 괴롭히겠다.”


강 사장과 나의 공방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결국은 합의를 했다. 아주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손실액의 일부를 배상해주기로 결론에 이르렀다. 대개 이런 경우 민원이나 소송으로 발전할 경우엔 일방 당사자의 완승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보기 드물다. 결코 짧지 않은 직장 생활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지켜보았다. 다른 동기 대비 늦은 나이에 회사에 들어온 나에겐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촘촘한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 넣은 ‘합의서’를 받는 대가로 소정의 금전을 건넸다. 결과를 떠나 이슈화되면 최소한 나에게 인사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약 1개월이 지난 뒤였다. 본부 민원담당 부서 박 차장의 호출이 있었다. 이미 재가 된 것으로 보였던 그곳에서 새로운 불씨가 살아났다. 강 사장이 이번엔 동일한 사건에 관해서 나의 후임 관리자 조 부장을 걸어 금융감독원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했다는 소식이었다. 참으로 피곤한 족속이었다. 지난번 합의서에 우리 회사의 다른 직원에게도 본건으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문구도 분명히 끼워 넣었다. 그럼에도 또 추가로 금전배상을 요구했다.


“선배님, 이번 민원 건에 관해 관련 자료, 정보 서류작성 등에 협조가 필요합니다. 강 사장의 주장은 감독원에서 전혀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습니다. 기각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비슷한 사례를 스크린해 보았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결국 강 사장의 민원은 감독원에서 보기 좋게 기각이 되었다. 이래서 나를 비롯한 우리 직원들을 한동안 곤혹에 빠뜨렸던 이 사안은 종결되었다.


많은 수익을 지속적으로 안겨주어 서로 좋은 관계가 유지되던 고객도 어느 순간 보기 좋게 배신을 한다. 관리자가 완전판매를 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자신에게 손실이 나면 민원, 소송 등은 물론 제도권 내의 정상적인 구제방법이 아닌 심지어 공갈 협박 등 물리적 수단까지 동원한다.


“나는 당신에게 돈을 받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 대신 당신의 회사 생활의 생명을 끊어내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야”라는 협박도 동원한다. 회사 입장에선 직원을 무슨 ‘거리’나 ‘핑계’가 없어서 자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열약한 입장인 직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민원 고객은 합당하지 않은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금융기관 직원이 완전판매를 했음에도 투자상품의 손실액을 물어달라는 막무가내 고객이 없어지길 기대한다. 권유 직원에게 과실이 없으면 직원은 면책이 되어야 마땅하다.


강 사장이 나에게 소개해준 고객은 2년 만에 무려 50%의 수익을 얻어 대박이 터졌다. 이 고객도 손실이 났다면 강 사장처럼 아마 나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들이대었을 것이다. 금융기관 직원은 영원한 을이고 고객은 갑이란 말인가. 금융기관 직원은 사실상 무과실 책임을 떠안는 을을 넘어 병이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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