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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6. 2022

지옥 같은 자금부 시대(12편)


이제 마감 자금이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 우리 지금부터 압박축구를 구사합시다.”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은 영업점 좀 알려주세요.”     

남직원 4, 여직원 1, 담당 대리 1, 서무 여직원 1명 도합 6명의 사내 전화번호 회선이 풀가동되었다. 그저 되는대로 대충 통화는 절대 금물이었다. 거래은행의 마감 시각에 맞추어야 했다. 오늘도 단기간에 아주 긴장하고 집중하여 깔끔하게 마감 자금을 접수했다. 

    

은행별 자금 과부족을 파악한 후 잔고를 재배분했다. 그런 다음 남직원 4명은 각자 맡은 은행으로 신속하게 뛰쳐나갔다. 주거래 은행을 중심으로 직원들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사무실 각자의 자리로 복귀하는 시스템이 매일 반복되었다. 오래전 이스라엘 군대의 엠테베 공항 작전을 방불케 했다.     

주거래 은행을 제외한 입출금이 일어난 여타 은행 잔고를 즉시 장부와 대사를 마쳤다. 아직 많은 거래의 기장이 남아 있는 주거래 은행의 그날 마지막 잔고가 일치하가를  확인하는 것을 우리는 잔고가 나왔다고 불렀다. 최종잔고가 나온 다음에야 우리는 겨우 퇴근이 가능했다.     


사내 번호 505번 내 자리의 바퀴가 달린 의자가 갑자기 말썽을 부렸다. 사무실 콘크리트 바닥 한 군데가 움푹 파인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좌우로 약간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이 파인 작은 홀에 한쪽의 바퀴가 여지없이 빠졌다. 앉는 자세의 균형이 깨졌다. 잠시 바퀴를 다른 곳으로 굴려

냈다. 그러다 빠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아오

지 탄광으로 끌려온 것도 모자라 이 탄광 내에

서도 또 다른 별도의 작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이 수렁은 물론 더 나아가

이 아오지 탄광을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지 출

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암울한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기록적인 초대형 집중호우로 한강이 일부 범람

했습니다. 계속되는 폭우로 인한 재산과 인명 피해를 줄이고자 합니다. 필수 요원을 제외하고 직원분들은 조기 퇴근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사내 방송에 이어 대표이사 사장이 직접 나섰다.


각 부서별 현황 파악과 대책 수립을 위해 현장 순시에 나섰다. 사장은 전 부서를 들러 보던 중 우리 사무실에도 그 모습을 나타냈다.      

여기 자금부는 어떤가? 특히 자금과는? 별일 없나? 필수 요원만 남고 어서 퇴근들 하세요.”

사장님, 이곳 자금과 직원들은 모두가 필수 요원입니다.”     

자금부장이 사장 질문에 직접 답변을 이어갔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주거래은행 예금 잔고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굳게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 어느 부서 어느 과이지요?”

밤늦은 시각 퇴근길에 나선 우리 자금과 직원에게 경비원이 다가섰다.

예 자금부 자금과 입니다. 수고하세요.”

우리는 자금부 자금과를 핵심부서 핵심 과로 고쳐 불렀다. 자조적인 표현임은 물론이었다.  첫 발령지 영업점에서 마련한 독신자 숙소에 아직 기거 중인 나도 내일 출근을 온전히 하기 위해 여의도에 자

리한 대학 동기집에서 오늘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우리 회사 개포지점이 자리한 지역은 상습 수해

지역으로 이미 소문이 난 곳이었다. 이번 기록적

인 폭우로 영업장과 객장을 가리지 않고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사무실 내를 오가는 수단으로 고무보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자금부에선 이 보트 구입 비용을 벌써 이체 완료

했다. 보기 드문 천재지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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