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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20. 2022

청바지와 가르마(2편)

                           

나는 이 가로 주머니 방식을 수용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고교생 시절에 이 가로 방식 교복을 고집하는 친구들을 나는 항상 색안경을 끼고 줄곧 지켜보았다. 이 친구들은 어딘가 좀 껄떡대는 불량 학생이거나 최소한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무리로 보았다. 당시 내 머릿속에 박힌 이 선입견은 아직도 꿈쩍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내가 선뜻 청바지족에 데뷔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자 마지막 핑계였다. 아마도 조선 천지에 나와 같은 이런 고루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쪽 손가락만으로 충분히 꼽을 수 있으리라는 것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니, 아직도 그런 것을 몰랐어? 세로식 주머니가 달린 청바지도 요즘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최근 고향 절친이 내게 일렀다. ‘이 엄청난 사실을 나만 몰랐나, 내가 매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방안 퉁소는 아닌데...”  

    

최근에 새로이 대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향 동기 민우와 일정 조율을 이미 마쳤다. 내 고교 동기 저녁 모임날로 거사 일을 잡았다. 좀 이른 시각에 민우가 추천한 @@아웃렛에서 드디어 이 세로 청바지를 장만하기로 큰 결단을 내렸다. 색상과 디자인이 내게 맞는 세로 청바지를 제대로 찾아내면 이제라도 청바지족에 당당히 데뷔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셀렘이 있었다. 보통의 아웃렛 매장은 중소규모였다. 메이저 백화점이나 마트보다는 규모가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상 3층이란 층고를 제외하면 이곳은 대형 백화점에 별로 밀리지 않았다.  

   

우리는 드디어 2층에 자리한 대망의 청바지 매장으로 들어섰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청바지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두세 군데 들러 내 기준에 근접한 스타일을 찾아냈다. 아직도 여전히 가로 청바지가 대세였다. 비교적 목표에 근접한 세로 청바지 한 벌을 쇼핑백에 담아 1층으로 내려왔다. 정장 바지 매장 한 곳을 더 들르기로 했다. 매장 사이의 통로에 주로 상품들을 진열하는 관행은 자주 있었다. 일반적으로 할인 폭이 큰 기획 상품들이 주로 이 공간을 차지했다. 제법 이름이 있는 브랜드 남방셔츠에 눈길이 갔다. 색상만 달리 한 같은 디자인의 남방 두벌을 추가로 챙겼다.

     

이제 마지막 일정인 양복 정장 바지 매장에 도착했다. 내가 현역 시절 가끔 찾던 브랜드 매장이었다. 가성비가 제법 좋았다. 짙은 색상과 좀 옅은 색상 바지 2벌을 추가로 쇼핑백에 담았다. 오늘 쇼핑은 그런대로 만족했다. 이곳 아웃렛에서 내 볼일은 이제 끝이 났다. 고교동기 저녁 모임 시각까지는 아직 제법 여유가 있었다. 

         

민우야, 이제 이 근처 어디 편한 곳에서 차나 한잔 하자.”

1시간 정도 차담을 나눈 후 약속 장소로 출발해도 그리 문제가 없을듯했다. 그 순간이었다. 정말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었다.     

아니, 내 자동차 키가 안 보이네. 어디 있지? 방금까지 내 주머니에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 둘은 이곳 아웃렛으로 들어서기 전 주차장부터 그간 경로를 역순으로 샅샅이 찾아 나섰다. 청바지를 마련한 매장은 물론 옷은 구입하진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거친 매장도 자동차 키의 행방을 찾기 위해 꼼꼼하게 추적을 했다. 

    

자동차 키가 제 모습을 가장 쉽게 드러낼 것으로 유력시되는 곳은 단연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의 전면에 마련된 선반 위에 내 자동차 키를 올려놓은 후 회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나는 자동차 키에 키홀 드는 물론 작은 인형 등 장식품을 달고 다니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다. 작은 인형 등 액세서리나 키홀더가 장착되었다면 부피가 늘어나다 보니 설령 매장 바닥에 떨어뜨리더라도 훨씬 눈에 쉽게 띄었을 것이었다.  

   

내가 오늘 들른 3곳의 의류매장은 사실 시설이 좀 부족했다. 피팅룸엔 소지품을 잠시 올려놓을 만한 간이 선반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반지갑은 물론 스마트폰과 자동차 키는 내가 새로이 입어보는 바지 주머니에 옮겨 담았다 다시  이곳에 입고 왔던 바지로 복귀시키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사이즈가 매우 작고 무게라고도 할 것이 없는 옷핀이 매장 바닥에 떨어질 경우라도 눈에 쉽게 띄었을 것은 물론 부딪는 소리를 눈치챌 정도의 청력은 아직 충분한 우리들이었다. 더구나 목직한 자동차 키 뭉치가 똑같은 궤적을 그렸다면 우리는 이 녀석의 행방을 놓칠 리가 없었다. 

    

매장 밖 1층의 주차 구역까지 바닥도 주의 깊게 뒤졌으나 이 자동차 키는 자진하여 주인에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네가 손에 쥔 자동차 키를 이용해 리모컨 방식으로 차량의 출입문을 잠그는 것을 똑바로 보았어,”

이어 자동차 키의 분실을 알리는 멘트도 여러 번 매장 내 방송을 탔다.      

내가 오늘 이곳 아웃렛 매장에서 구입한 옷이 담긴 쇼핑백은 잘 보았어?”

그럼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지 그 정도야 기본이 아니야

조만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일단 이번 고교동기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모임을 주선하는 친구에게 먼저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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