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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21. 2022

청바지와  가르마(3편)

                        

요즘 대세인 스마트 키가 아닌, 리모컨 기능이 장착되지 않은 예전의 수동 키라면 오히려 문제가 쉽게 풀릴 수도 있었다. '스마트키'란 멋진 이름을 자랑하는 이 자동차 키가 오히려 문제였다. 차량 4개의 문짝 모두는 리모컨 기능을 거쳐야 열 수 있었다. 설령 강제로 문을 여는데 성공하더라도 엔진 시동을 걸 수는 없었다.  

   

수동 키 시절엔 열쇠 전문가를 호출하여 문을 강제 개방한 다음 자동차 키를 복제하여 시동을 걸면 응급조치는 일단 충분히 마무리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각에도 열쇠 전문가는 출동이 가능했을 것이었다.     

내가 자동차 키를 분실한 사실이 밝혀지고 견인차를 호출하고 경로를 추적하느라 제법 시간이 흘렀다. 6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결코 밤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열쇠 전문가들이 퇴근길에 나서기엔 이른 시각이었으니 그리 걱정이 없을 듯했다.   

   

이즘 해서 오늘도 고향 절친 '구제주'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차량 운행과 관련된 크고 작은 위기 상황마다 내게 적절한 진단, 조언과 처방은 물론 결정적인 도움을 베풀고 있는 고향 절친이었다. 병찬에게 도움을 청했다.     

  

현대 자동차 정비 대리점으로 차를 견인해서 키를 재발급받고 전산 입력을 해야 차량 운행이 가능할 걸세. 지금 이 시각이면 오늘 업무는 모두 마감이 되었을 거야. 내일 오전에야 조치가 가능할듯하네.”     

나는 일단 보험회사를 통해 견인차를 호출했다.

제가 강제로 차량 문을 열었는데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어요. 혹시 차량 안에 키를 둔 채 문을 잠갔을지도 모르겠어요,”

견인차 기사의 이야기에 혹시나 하며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곧 이 기대도 무너졌다.  

   

이제 내가 오늘 이 차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림이 그려졌. 경로가 눈에 들어왔다. 병찬이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견인차의 신세를 지어 정비 대리점으로 차량을 이동시킨 후 내일 아침 이른 시각에 키를 복사하여 전산 입력을 마치기로 했다.   

  

내 고향 보금자리에서 이곳은 약 6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곳이었다. 결국 오늘 하루 밤은 꼼짝없이 대전에서 멀쩡히 묵어야 하는 수밖에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지난번 수도권에서 제네레이터가 수명을 다해 ’ 차가 퍼지는 사태의 후속 편이었다. 이번에도 또 한 번의 액땜 기회가 너무나 일찍 찾아온 것이었다. 평소 내가 조상님을 잘 모시지 못했기 때문인지 파행이 잇달았다. 

    

이곳은 주거 지역이기 때문에 숙박시설이 없습니다. 차량은 이렇게 정비소에 두고 사장님이 처음 찾았던 아웃렛 쪽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견인차 기사의 친절한 안내가 이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지방에서 수도 서울로 대학 입학 본고사를 치르

러 상경한 수험생이 하루 목어야 할 때 치르는 대가와는 전연 달랐다. 오늘 이곳 대전의  '비자발적 숙박'에 따른 비용은 정말  '생돈'을 

날려 버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오늘 저녁 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근처 고향 친구들을 불러낸다는 것도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20 ~ 30대의 청년이 아니었다.   

   

내가 들어선 숙박시설에 나는 도통 적응이 어려웠다. 통합 리모컨 작동방식에 익숙지 않았고 조명시설 조작도 쉽지 않았다. 샤워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까운 숙박비를 만회하기 위해 책을 펼칠 수도 글을 쓰기에도 결코 어울리는 환경은 아니었다. 마음이 편한 밤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각에 나는 정비소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접수를 했다. 리모컨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 키를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한 복원에는 모자랐다. 타원형의 틀 안에 진출입이 가능한 형태의 수동 비상 키는 추후 별도로 주문 제작한 후 정비소를 찾아 다시 전산 입력을 해야 합체가 완료되는 로직이었다.    

 

이번 해프닝으로 몸과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대전에서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닌 내 고향 보금자리로 패잔병처럼 복귀를 했다. 내가 원하던 스마트키를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개운치가 않았다. 꺼름직했다. 복귀하기 전에 내가 옷을 구입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들른 매장마다 내 연락처를 남기고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향후 혹시라도 내 주머니를 나간 손 때 묻은 자동차 키가 나타나면 꼭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얼마 전이었다. 내 직전 보금자리인 인천을 들러 예비키 뭉치를 회수했다. 귀향을 하여 읍내 정비소에 들렀다. 비상용 수동 키를 복제하는데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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