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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22. 2022

청바지와 가르마(4편)

                       

                        

기아차 정비소에서도 이 작업이 가능하다는 직원의 말은 맞지 않았다. 부속품 가게를 네비의 도움을 받아 찾아 나섰다. 하지만 10여 년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내 자동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과 T 맵이 안내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오차가 있었다. 정비소와 부품가게를 각각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그래서 비상 수동 키 복제를 위해 읍내를 종횡으로 여러 번 왕복을 해야 했다. 자동차 부품 판매점을 찾아 키 원본을 손에 넣고 열쇠 가게에 들러 정교하게 가공한 다음 마지막으로 정비소에 들러 전산 입력을 했다. 겨우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집 나간 키와 같은 기능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새로운 키 뭉치의 완벽한 복원에 성공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찜찜한 기분은 개운하게 가시지 않았다. 집 나간 키 뭉치는 어느 날 문득 주인장인 나를 찾아 나설 것만 같았다. 나와 십여 년이나 동고동락을 했으니 신체의 일부로 여겨졌고 한쪽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착각까지 들었다.     


세로형 주머니 청바지를 찾아내서는 이번에야말로 야심 차게 ’ 청바지족‘에 데뷔하고자 한 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아직도 생애 최초로 내 손안에 들어온 내 스타일 청바지를 나는 오늘도 옷걸이에 고에 걸어 모셔두고 있었다. 오랜동안 별렸던 숙원사업의 달성을 코 앞에 두고선 벌어진 '자동차 키 분실 소동'으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고향 절친들과 몇몇 이서 '청바지족 데뷔식'이라도 그럴듯하게 벌이고자 했다. 난 아직도 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주머니 방식'만 해결이 된다면 이 청바지를 자랑스럽게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어느덧 반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뜻하지 않게 자동차 키를 분실하는 바람에 치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키 복제비, 비자발적 숙박비, 외식비. 택시요금 등을 어림해 보았다. 최근 내 손안에 넣은 내 스타일 청바지는 겨우 한 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으로 나는 이번에 무려 청바지 5벌에 상당하는 추가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보금자리로 복귀 후에 치른 유류대. 키 복제비, 정비 요금 등도 모두 감안하니 이는 결코 잘 못된 계산이 아니었다.  

   

무릇 사람의 취향이나 선입견이란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청바지를 입고 고향 동기 모임에 나타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나에게는 생애 첫 청바지족 복장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색하고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각종 우호적이지 않은 코멘트 세례를 받을까 걱정이 앞설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것은 어쩌면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주위의 타인을 의식하는 만큼 제삼자는 내게 그리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내가 생애 첫 청바지 복장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친구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친구들은 내가 10대 후반부터 청바지를 즐겨 입던 동기로 그저 보아 넘길 가능성이 훨씬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직장에 첫발을 내딛은 지 약 15년 될 무렵이었다. 평소 내가 자주 찾던 그야말로 옛날식 단골 이발소 대신 다른 한 곳을 들렀다. 주인장은 내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작지 않은 화두를 꺼냈다.     

사장님, 머리 가르마가 처음부터 통째로 잘못되었어요. 사장님은 가마가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가르마를 트는 것은 처음부터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입니다.”
 

나는 고교 졸업 후 20대에 진입을 하면서 이제껏 줄곧 왼쪽 가르마를 고집해오던 터였다. 오른쪽에 가마가 자리 잡은 나로선 이 왼쪽 가르마는 어찌 보면 ’ 순리‘를 거스르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두발 스타일이었다.      

도끼로 장작을 팰 때 '나무의 결'을 잘 살펴서 작업을 해야 수월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고기를 썰 때도 '결'을 따라야 했다. 생선회를 뜰 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결을 거스르면 무엇인가 부자연스럽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음은 물론이었다. 

    

나는 이미 이십여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세상 이치나 순리를 거스르는 두발 스타일이 정석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착각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발을 마치고 나선 나는 작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직장동료, 가족, 친구들로부터 어느 날 내가 이렇게 갑자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노선을 갈아탄 이유를 추궁당하고 양쪽 가르마의 호·불호에 관한 즉각적인 평가에 시달릴 것을 염려했다. 

    

단순히 머리 가르마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겼을 뿐인데 이발소 문을 나서면서 내 주위의 세상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심지어 거창하게 말하면 사람의 성향이나 정체성도 송두리째 바뀐 것 같은 혼돈에 빠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기우에 불과했다. 직장 동료, 친구는 물론 심지어 내 가족들도 내가 오늘 이발소를 다녀온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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