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Sep 22. 2022

사람잡는 미스터리쇼핑 평가제도

 “요즘은 어느 쪽의 주식을 사야 하지요? 어떤 주식이 좋나요?”“예, 사모님, 죄송합니다. 일단 저쪽 업무 창구에 가셔서 계좌를 개설하시고 사이버로 매매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주식시장 개장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강도 높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승용차로 장거리 운행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나 지방도로 들어서는 순간과 아주 유사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한 단계 낮은 곳으로 들어서던 찰나였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주부가 내 상담 부스 정면 귀퉁이로 다가서면서 그저 지나가는 말투로 질문을 툭 던졌다. 나는 이미 진이 모두 빠진 상태였다. 많이 지쳤기 때문에 건성으로 응대할 수 밖에 없었다.


 “최부장님, 별일 없나요? 영업은 잘 되나요?”

몇주 뒤 본부 관련 부서장의 뜻밖의 호출이었다. 단순히 안부를 묻고자 나를 찾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챘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약 2주 전에 나의 상담부스를 찾았던 고객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차, 올 것이 왔구나. 그랬었구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번에도 이미 낚인 것이었다. 그때 그 주부는 고객을 가장한 ‘미스터리쇼퍼’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향후 나와 우리 지점에 닥칠 불이익을 생각하니 그저 눈 앞이 깜깜했다.


 박부장의 설명은 이어졌다.

“이번 ‘MS테스트’에서 우리지점은 너무나 기가 막힌 결과가 나왔다. 도저히 그 평점을 윗선에 보고할 수가 없다. 그래서 특별히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정해진 기한 내에 이 테스트가 다시 이루어지니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응대를 하여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등골이 오싹했고 식은 땀이 흘러내렸으나 하늘이 도운 것이었다. 직장생활의 생명이 다 할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배려를 해주다니 천만다행이었다.


 미스터리쇼핑 테스트란 고객을 가장한 위탁회사 직원이 내점하거나 전화를 걸어와 상담직원이 제대로 된 응대를 하는가를 평가하는 제도이다. 직원이 금융상품 매각이나 종목 상담 시 자본시장법이나 그 하위 법규 또는 감독기관이 정한 매뉴얼대로 실행하는가를 점수화한다. 성적이 상위에 랭크된다 해도 포상은 없다. 반면에 하위에 그칠 경우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부진직원이나 점포 나아가 회사는 커다란 불이익을 받는다.

  

 금융상품을 예로 들면 ‘투자신탁설명서’ 풀버전을 기본 매뉴얼로 하여 핵심사항을 빠짐 없이 설명해야 하는 고난도의 미션이다. 설명서는 40내지 50쪽이란 적지 않은 분량이다. 평가기관은 회사, 또는 감독기관이 된다. 외부 평가기관에 위탁하여 일반적으로 매분기 시행한다. 일정한 수준 이하의 결과가 나올 경우 여러 가지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우선 해당 직원은 공문에 실명이 공개되어 전국 방방곡곡 그 이름을 드날린다. 지점 자체 롤플레잉의 재실시, 또는 본부 주관부서 담당자의 직접 방문 재교육, 아니면 최악의 경우 지점직원 모두가 본부 부서로 불려들어가 교육을 받게된다.


 영업실적등 점포 평가부문에서 아무리 우수한 성적을 올려도 소용이 없다. 이 미스터리쇼핑 평가에서 낙제점이 나올 경우 해당 직원은 원거리 인사발령을 받거나 점포장은 지배인 자리를 반납하기도 해야 한다. 이 건과 관련하여 본부 박부장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아찔했다. 평소 회사내에서도 인맥을 쌓을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 테스트에서 부진을 면하고 최소한 낙제점을 넘어 중상위권의 점수를 얻기 위해선 핵심적인 몇개의 포인트가 있다. 제일 먼저 실제 우리 회사 기존 거래 고객이거나 거래의사가 있는 잠재고객과 상담요원인가를 구분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그 구분에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평가요원으로 의심하고 응대를 시작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과락을 면할 수 있다. 예전엔 우리 회사와 거래중이거나 거래경험이 있는 고객은 당연히 상담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손쉽게 응대를 해나가면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런 편한 시절은 흘러간 이야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 테스트 프로그램의 버전이 훨씬 업그레이드 되고 매우 정교해졌다. 기존고객 등도 평가요원으로 나선다. 따라서 직원들은 더욱 긴장해야 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 다음은 일체의 영업마인드가 가미되어서는 결코 좋은 성적을 거두기란 힘들다. 그럴수록 매뉴얼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감독기관은 금융기관 소비자의 권리보호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운다. 실제 영업창구에서 일어나는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부담스러운 추가 설명의무를 직원에게 요구한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실행한다면 제대로 된 정상적인 영업은 어렵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따르지 않은 상담 후 상품 가입이 이루질 경우 이에 따르는 모든 리스크는 거의 모두 금융기관이나 직원이 떠안아야 한다. 규범과 현실 간의 업청난 갭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없이 이 테스트와 영업은 별개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복불복이다.


 ‘소비자보호’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고서 강도가 높은 엄청난 양의 설명 설명의무를 금융기관 직원에게 떠미는 행태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감독기관은 자신들이 정한 매뉴얼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경우 ‘불완전판매’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고 자신들의 소임은 다한 것으로 이른바 면피가 되는 것이다.


너무 기계적이고 비현실적인 수준의 의무를 부담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식 영업을 방임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연히 핵심적인 내용의 설명을 하는 상담은 해야한다. 이 필요성을 다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현실에 맞게 매뉴얼을 개선함이 절실하다. 이 테스트에 신경을 쏟아 붓느라 쓸데 없이 고도의 긴장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업무적 부담에서 금융기관 직원을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사람 잡는 미스터리 쇼핑‘이라는 말이 금융시장에서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거나 자기목적적 테스트가 되지 않아야 한다.


 오늘도 모든 금융기관 상담직원들은 미스터리쇼퍼가 본인을 찾아나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요즘 주식 어떤가요?”

고객이 나타났다. 나는 매뉴얼을 펼치고 1시간 동안 설명에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 청바지와 가르마(4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