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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9. 2022

청바지와 가르마(1편)

                        

아니야, 거기보다는 화장실이 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2층 화장실과 청바지 매장을 한번 더 다녀올게.”

오늘 오후 7시에 나는 약속이 잡혀 있었다. 고교동기 모임이 대전 둔산 인근 고깃집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나는 이미 아주 커다란 결단을 내렸다. 나는 이제껏 평생 청바지를 입고 열 발작 이상의 걸음을 떼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이제 내 선입견이나 사고방식을 확 바꾸어버리겠다고 며칠 전부터 단단히 작정을 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고교 입학식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A5 용지 10여 쪽이나 넘는 서류 더미를 우리 입학 예정자들은 손에 쥐었다. 여기엔 고등학교 입학 시까지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준비물 지침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교복은 물론 교련복이 갖추어야 할 디자인이나 무늬, 바지통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들어 있었다. 

    

교련복은 AST무늬로 할 것, 교복 바지의 앞 주머니는 아웃포켓 식이나 가로 주머니로 하지 말 것" 등이 특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림도 그려 넣어 가며 예시를 해주는 친절함도 베풀었다. 여기서 아웃포켓식이란 청바지 뒷주머니처럼 천을 따로 떼어내어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는 방식을 말했다. 이에 반해 가로식 호주머니란 청바지의 앞 주머니처럼 위쪽에서 아래로 손을 푹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보통 양복 정장의 바지 주머니는 세로식이 대세였다.  

    

나는 이 학교에서 우리에게 내린 지침을 헌법 11항처럼 지금까지도 떠받들어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일부 친구들은 이 지침을 나 몰라라 했다. 일부 앞서가거나 조숙한 부류 또는 좀 껄떡대는 친구들은 이 헌법 조문을 처음부터 내팽개쳤다. 아웃포켓식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로 주머니방식을 고집했다.

     

학교 측은 바지통 사이즈 부문에도 지침을 내렸다. 지금은 대부분 캐주얼은 물론 양복바지도 아래 사이즈가 9인치를 넘지 않음은 물론 그 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대세이다.  

    

10여 년 전 일이었다. 맞춤복 분야에서 이미 장인 반열에 오른 고향 절친에게 양복 한 벌을 주문했다. 바지통을 너무 좁지 않게 해달라고 따로 단단히 당부를 했다. 이러자 친구는 나를 촌스럽다며 즉각 핀잔을 줄 정도였다.


바지통이 무릎 부분부터 눈에 띄게 넓어져 가장 아래 부분이 10인치를 넘어서면 ‘나팔바지’ 대열에 충분히 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나팔바지 방식도 금기사항 목록에 거뜬히 그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이럼에도 일부 진보적인 친구들은 가로 주머니가 달린 나팔 교복 바지를 자랑스럽게 차려 입고 고교 입학식장에 너무나 당당히 나타났다.    

  

나는 이제껏 떠받들던 이 헌법 조문을 이젠 내팽개치기로 작정을 했다. 우리 학창 시절 대비 청바지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내 기억으론 당시엔 30대에 들어서면 청바지 차림으로 절대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보였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청바지 복장 금지 상한 연령은 이제 아예 철폐된지도 오래 지났다. 이럼에도 나는 유독 청바지족에 이제껏 데뷔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신세이다. 젊은 학생이나 중년 청장년 노년의 구분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 영업장을 오가는 고객,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 각종 공연장, 체육대회 모임에 나타나는 청바지 차림의 사람을 나는 주의 깊게 뜯어보는 버릇이 언제부터인지 생겼다.    

  

디자인이나 색상면에서 딱 내 취향에 맞는 청바지 차림을 찾기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 길거리 모델의 사전 동의를 무시한 채 스마트폰의 갤러리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절기엔 주로 옅은 색상인 반면 동절기엔 보다 짙은 색상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그럼에도 자갈을 장착한 로울러를 가동해 인위적인 패션을 만들어내는 '찢어진 청바지'는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 옷장에 들여놓을 일이 없을 듯하다.  

   

5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도 나는 아주 큰 결단을 내렸었다. 내 취향에 아주 딱 맞는 청바지를 손에 넣는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근접한 청바지 두 벌을 눈을 질끈 감고 쇼핑백에 담았다. 물론 피팅룸에 들어서서 몸에 잘 맞는지를 살피기는 했다. 하지만 두 다리를 끼워 넣고 집 밖으로 나설 염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결국은 내 애마 트렁크 안쪽에서 1년여를 숙성시킨 후 고향 절친에게 넘겨버렸다. 나 보다 더욱 나은 청바지의 진정한 임자를 찾아 주는 훌륭한 이력을 쌓았다.

    

내가 이렇게 청바지족에 데뷔하기를 주저하는 가

장 큰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었다. 고교 입학식 직전부터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금과옥조처럼 잘 모시고 있는 ‘가로 주머니 금지 조항’이란 것 때문이었다. 내가 이제껏 구경한 청바지 중 앞 주머니가 가로 방식이 아닌 것을 한 번도 본 적

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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