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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18. 2022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엄마, 밥 아직 안 되었어요? 학교 늦었는데 안 되면 저 그저 갈래요.”

“둘째야, 조금만 더 기다려라. 다 됐다. 아침 밥을 굶고 가면 안 되지, 조금만 더 기다려.”

오늘도 나는 어머니에게 아침 밥을 빨리 달라고 보챘다. 결국 나는 아침밥 먹는 것을 포기하고 300미터 내외에 자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산 초등학교로 발길을 급히 돌렸다. 수업시간에 행여 늦을 세라 서둘러 학교 정문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모교 운동장엔 인기척이라 곤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내 책상위에 책보를 내려 놓고 다시 운동장으로 나섰다. 희귀종인 라구송 나무 인근의 그네에 몸을 맡기고 그저 앞뒤로 오가기를 반복했다.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학생은 물론 선생님 한 명의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 대로 조금 기다렸다 아침 밥을 먹고 출발해도 문제가 없었다. 나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여러 친구들의 무리에 섞여 등교하는 것을 지각으로 생각했다.


훗날 30대 중반 즈음 사촌 누나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던졌다.

“외숙모님, 얘가 어릴 때 제일 속을 많이 썩였는데 이제는 효도를 하나요?”

이렇게 묻는 사연이 차고 넘쳤다. 필요 이상으로 서둘러 등교 길에 나서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직장을 다닌 지 어언 10여년이 지났다. 본부 부서와 몇 군데 영업점 근무를 마친 후 다시 초임 책임자로 부임했던 영업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예전과 달리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였다. 지방 연고 점포에 근무 중 주로 외곽법인 영업을 했던 나는 이제 운전 실력이 부쩍 늘었다.

출퇴근 거리는 약 30키로미터 내외였다. 교통 흐름이 원활할 경우엔 30내지 40분 정도이면 충분히 주파가 가능한 거리였다. 문제는 출퇴근을 하자면 경인고속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출발 시각을 잘 못 선택하면 무려 2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제물포로 인근의 상습 정체 구간이 하루 종일 막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피크 타임을 피하여 이 구간을 통과하면 출퇴근 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침 일찍 출발하려면 기상 시각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나는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이에 나는 아침 식사도 밖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새벽형 인간에 데뷔를 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일찍 기상하고 출근하여 여유가 생기는 자투리 시간의 적절한 활용이 더 중요했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엔 그에 따른 기회 비용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었다.


나는 근무지마다 영업점 출입문을 여닫는 예비 키를 항상 소지하였다. 주로 아침 일찍 영업점 출입문을 여는 일은 내가 전담하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된 사무실의 출입문을 열면 기분이 상쾌했다. 게다가 “새벽을 여는 미션”도 혼자 수행하는 것 같아 덩달아 자부심도 생겼다. 또한 아침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다 보니 다소 거리가 멀더라도 가성비가 좋은 식당을 개척할 수 있었다. 나중엔 고객을 만나거나 회사내의 직원과 식사를 하는 경우 이 식당을 아주 요긴하게 활용했다.


나는 최근 10여년간 새벽의 여유시간을 주로 종이 신문을 탐독하고 스크랩하는 곳에 집중 활용했다. 일정한 비용으로 종이 신문을 구독할 경우에 아주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무조건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다.


나는 짧지 않은 학창 시절 수험 준비를 위해 때론 올빼미형으로 변신하기도 했었다. 학교내 중간, 기말 시험 때였다. 프로야구에서 이른바 패넌트 레이스 때와 달리 단기간의 승부가 필요한 한국시리즈에서 그랬다. 오른손 왼손 타자를 넘어 한시적으로 스위치 타자가 된 셈이다.


나는 이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필요한 때를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새벽형 인간이다. 그게 내 체질에도 맞다.

 

외부에서 고객 접대나 회식이 있었던 다음날 아침에 지각을 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더욱 긴장을 하고 평소보다 알람 시각을 조금 앞당겼다. 퇴근 후 시간은 인맥 구축이나 외부 영업에 할애하는데 여유가 생겼다.


한 때 국내 굴지의 S그룹은 출근시각을 앞당긴 적이 있었다. 결국은 근무 시간만 늘어날 거라는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생산성 증대로 이어졌다. 다만 제도를 다시 변경한 것은 아쉽다.


나는 최근 정년퇴직을 한 이후에도 새벽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현직 당시와 같은 패턴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바이오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조그마한 개인 사무실을 얻어 현역시절 회사로 이른 시각에 출근하듯이 집을 오가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몽땅 잡는 것은 아니라도 대부분 또는 쓸 만한 벌레는 남보다 많이 잡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도 나를 포함한 새벽형 인간들에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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