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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11.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고교시절 2편)

                     

교칙을 어긴 학생들에게 내려지는 징계 유형은 그저 심플했다. 군더더기가 전혀 필요 없었다. 3가지밖에 없었다. ‘제적’ ‘퇴학’ ‘무기정학이 바로 그것이었다. 징계 결과가 적힌 하얀색 모조지가 게시판에 붙을 때마다 전교생에게 주는 ‘위하효과'는 가공할만했다.     

'유기정학' '근신' '경고'등도 학칙 상 징계 유형에 그 이름은 올라 있었지만 이런 가벼운 징계 사례를 우리는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 동기가 2학년으로 진급을 하면서 학생과장은 공업 선생님으로 전격 교체되었다. 이 새로이 학생과장을 맡은 선생님은 전임 선생님과는 외모부터 달랐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에 딱 맞는 캐릭터였다. 이른바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바뀐 것이었다. 이에 전교생이 마음속으로 환호의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수학여행 23일간 여정 첫날이었다. 우리는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제법 너른 마당이 딸린 여관에 짐을 풀었다. 저녁 식사 후 한판의 광풍이 지나갔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 몰래 어디선가 각자 닦은 춤 실력을 유감없이 벌 휘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당시 이 광란의 ’ 몸부림 타임을 아주 잘 포착해 낸 추억의 사진을 아직도 접이식 앨범 한 귀퉁이에 고이 잘 간직하고 있다.     


이어 친구들은 자신이 배정된 객실이나 마루 한 곳에 걸터앉아 잠깐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훌쩍 흘러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고교 수학여행 일정 중 밤 10시는 초저녁에 불과했다.  

    

인근 유흥가에선 피 끓는 젊은 우리들을 확실하게 꼬드기기에 충분한 이른바 생음악이 고막을 찢을 정도 데시벨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가 인근에 널려 있었다. 불구덩이 속으로 제가 죽을 줄도 모르고 뛰어드는 ’ 불나방‘을 대대적으로 꼬드겨내기에 훌륭한 밴드 음악이었다.  

    

이때였다. 신임 학생과장이었다. 평소 자신의 캐릭터와 전혀 다른 뜻밖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지시봉이나 군용 야전 침대의 양변을 두르던 각목을 떼어낸 몽둥이가 제격 낼 듯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고 몽둥이로 제대로 된 용도에 걸맞지 않은 무기를 들고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었다. 겨울철 난방용 장작 개비를 한 손에 불끈 쥐고 있었다. 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려는 의도가 충분히 읽혔다.

          

이 시간 이후 각자 정해진 방으로 들어가 즉시 '해골'을 뉘라는 단호한 명령도 반복했다. 아궁이 땔감으로 쓰려면 한 번의 도끼질이 더 필요할 듯했다. 두께는 휴대하기엔 너무 넉넉하게 여유가 있는 반면 길이는 좀 모자란 말 그대로 몽땅하고 뚱뚱한 자태를 자랑하는 도구였다. 훈육용 몽둥이를 급히 찾아 나선 학생 과장은 급한 김에 이 기묘한 모습의 장비라도 우선 손에 쥐어야 했던 것이었다.   

   

단순한 무력시위 용도를 넘어 만일 이 무기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동을 면 최소한 중상 이상을 각오해야 할 듯했다. 전임 학생과장이 제적’ ‘퇴학’ ‘무기정학’만을 휘두르던 형태에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하지만 이 학생과장의 무력시위는 이미 그 타이밍을 놓친 것이 금세 밝혀졌다. 이미 내노라는 자칭 선수들은 객실마다 달린 창문이나 이 여관 한쪽의 개구멍을 통해 생음악을 찾아 불나방처럼 벌써 빠져나간 뒤였다.   

   

학교 측은 우리 친구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 이 자리에 지금 남아 있는 친구들은 학생과장의 이 장작개비 무력시위가 없더라도 생음악 현장을 찾아 나설 불나방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관 정문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이 불나방 선수들에겐 정문 말고 이 숙소를 탈출할 수 있는 개구멍이나 창호 등을 벌써 찜해 놓은 터였다. 가히 제2의 공포정치 시즌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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