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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12.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고교시절 3편)

                       

돌아가서 그저 여학생들끼리 재미있게 놀아요.”

우리가 여행 첫날 묵었던 여관 정문 꼭대기엔 대전 @@고교 수학여행단 이라 적힌 현수막이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교생 수행여행 코스란 것이 학교마다 별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 오늘 오후 여관으로 복귀하던 중 인근 계곡 구름다리에서 조우했던 모 여고생 수학 여행단이었다. 우리가 수학 여행지에서도 꼭 머리 위에 이고 나녀야 하는 시커먼 교모가 있었다. 모자 상단 한가운데  학교 표지를 부착했다. 네모난 쇠붙이에 우리 학교를 알리는 약칭을 세로로 두 글자를 적어 넣었다. ‘@이란 표찰을 잊지 않고 기억해낸 여고생 무리였다.

      

우리 모교의 터프한 캐릭터가 널리 알려진 덕분이기도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감히 여고생이 먼저 남고생들의 진지를 수소문하여 무작정 쳐들어온 것이었다. 때마침 여관 정문 입구를 배회하던 학생과장에게 제대로 적발이 되었다. 우리나라 고교생 수학 여행사에 길이 남을 뻔했던 남녀 고교생 조인트 춤판은 아쉽게도 무산이 되었다. 이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주었던 여학생들을 점잖게 타일러서 자신들의 숙소로 되돌려 보냈노라고 학생과장은 우리에게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방금 전 내가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따끈따끈한 첩보였다.     


‘@@고등학교남학생들을 찾아왔노라고 당당히 외치며 시대를 앞서가던 장한 신식 여고생들이었다. 그 이후 이 여학생들은 학창 시절을 마무리한 후 국가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는 둘째 날 숙소를 동해안 해수욕장 인근으로 옮겼다. 철책을 지키는 국군 아저씨들이 부지런한 빗질로 곱게 단장된 모래사장 인근이었다. 조약돌 더미도 쌓아 놓은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

었다. 분단된 조국 군사 분계선 인근의 기이한 모습이었다.  

    

아이. 이 자식들 정말 매운맛을 한 번 보고 싶나?”   

고등학교 문을 들어서기 전에 이미 나는 형과 이소룡 주연의 무협 영화를 시리즈로 섭렵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영화 속 클라이맥스의 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좋은 기회가 돌아왔다. 설악산 관광단지 내 편도 2차선 포장도로 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영화 속 이소룡이 자주 애용하던 쌍절봉 대신 다른 장비가 동원되었다. 지역 소주인 경월 라벨이 부착된 이 홉들이 빈 소주병을 인근 건물의 콘크리트 벽에 한번 부딪혀 깨어냈다. 백주 대낮의 대로 한 복판에서 활극이 벌어졌다. 순간 이 아슬아슬한 사태를 전해 들은 지도교사는 물론 경찰도 긴급 출동했다. 겨우 끔찍한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벡 종구 있나? 별일 없지? 그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우리 객실을 찾아 나섰다. 헐레벌떡 숨이 차도록 달려왔다. 몇 시간 전 대로변에서 영화 속 이소룡 활약을 재현코자 나섰던 친구 종구의 행방을 수시로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는 수학여행 객실 배정도 출석번호를 기준으로 정했다. 마땅히 다른 기준이 없기도 했다.      


객실 숫자를 여유 있게 확보하지 못하다 보니 이 커다란 덩치 친구들이 쾌적한 잠을 이어가기엔 늘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럴듯한 묘안을 꺼내 들었다. 친구들 모두는 기다란 두 다리를 방안 정 중앙으로 한데 모았다. 이 것이 누구 아이디어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법 효과가 있었다. 제한된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창의적인 방법이었다.     


내가 혼자 귀촌한 고향 비단 강변엔 성업 중인 어

죽 집이 널려 있다. 이 어죽 집에서 두 번째 메인 메뉴로 꼽히는 빙어 도리 뱅뱅이모습에 딱 맞았다. 원형 프라이팬에 빙어를 한가운데 가지런히 모아서 정리하고 구워낸 별미의 빙어 모습에 빙의되었다.  

   

고교 시절엔 수업을 종료한 후에 1주일 단위 청소 당번을 정하는 기준도 당연히 출석번호였다. 나는 68명 중 32번이었다. 그런데 내 바로 앞 번호는 백종구 차지였다. 10명 단위 청소 당번 조장은 당연히 번호가 가장 앞선 친구의 몫이었다. 그래

서 우리 조는 종구가 조장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청소를 비롯한 학생들의 일상적인 미션에서 자의 반 타의 반 항상 열외를 인정받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종구 대신에 온갖 미션의 조장 역할을 억지로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린 반 출신 출석 번호 31번인 백종구 한 사람만 잘 챙기면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 반, 아니 동기를 넘어 우리 모교 전체의 평화가 확보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러다 보니 이번 수학여행 중에도 우리 담임은 물론 학생과장도 종구가 같이 묵기로 되어 있는 우리 객실을 늘 특별 순찰 대상에 올렸다. 우리 객실 친구들은 너무나도 자주 선생님을 알현해야 했다. 은사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다른 객실 친구들 대비 듬뿍 더 받는 영광을 누렸다.

     

오늘은 수학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식사 후  군인 아저씨들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즉석에서 주머니 속 코 묻은 돈을 모았다. 우리 숙소 인근 경계 경비에 늘 고생을 하는 이 아저씨들에게 조그마한 정성의 뜻을 전했다. 몇 명의 친구들은 아저씨들의 소총과 방탄모를 잠시 빌려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

아 자신들도 겪게 될 군 생활 예행연습에 나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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