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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14.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대학시절 1편)

                          

"이번 학기 면담은 설악산 정상에서 하겠습니다."

지금 같으면 이는 당연히 갑질이었다. 담당 교수는 오늘 상법 강의 시간에 긴급 대권을 발동했다. 초등부터 고교까지는 담임교사가 있었다. 캠퍼스에 들어서면 이런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다. 대학에도 담임 교수제가 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80년 초였다. 새로이 등장한 신군부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 모두의 뜻을 무참히 짓밟았다. 서울의 봄은 짧은 기간 내에 신기루에 그쳤음이 판명되었다. 신군부는 평소 대학생들의 동태를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담당 교수제 라는 기이한 장치를 도입했다. 담임교사제 보다는 다소 느슨한 것이었지만 학생을 통제하고자 하는 목적에선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새로이 등장한 정권은 정통성에 뿌리가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의 시국 시위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고 운동권 학생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 정기적인 면담에다 또 다른 절차를 도입했다. 학기마다 등록금을 납부하기 전에 고지서에 반드시 담당 교수의 서명을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등록금 수령을 거부당했다.     


나는 2학년 1학기 등록금을 납부하기 전에 이 담당 교수를 찾아 나섰다, 

그래, 요즘 어디에서 공부하고 있지?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면담이었지만 이 절차를 지켰다는 최소한의 면피용 요식행위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절차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하나의 대안이 등장했다. 군 복무를 이미 마치고 느지막이 대학 문을 들어선 복학생이 아닌 예비역 입학 동기 동주 형이 우리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이 형은 우리 친구들에게 교수의 가짜 서명 서비스를 아무 대가 없이 쿨하게 대행해주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3학년 1학기에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상자들은 피치 못할 사정을 대거나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내세우는 바람에 무산이 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 가을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수학여행을 성사시키려 단과대학 학생장 등이 발을 벗고 나섰다. 이번에도 무산이 되면 대학 시절 수학여행은 아예 물 건너가는 것으로 보아야 했다. 졸업 여행이란 것도 있었으나 졸업반 학생이 여행에 나선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취업 준비나 대학원 진학, 늦은 군 입대 등 여러 가지 걸림돌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상법 교수가 던진 면담 장소 지정 발언은 이런 수학여행을 성사시켜보려는 학생들의 노력에 지원성 사격을 한 것이었다. 이른바 갑질운운할 것은 아니었다. 이번 수학 여행비는 29,000원으로 책정되었고 행선지는 설악산으로 정했다. 학생장과 교수 일부 동료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힘입어 드디어 성사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나는 초 중 고 대학 총 4회를 이어가는 수학여행 전성시대의 급자탑을 쌓게 되었다.    

 

수학여행 동참하기로 한 학생들은 추진팀에 1인당 30,000원을 건네고 거스름은 영원히 돌려받지 못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인들이 자신의 상품 판매가를 책정하는데 자주 동원하는 마케팅 기법을 동원했다. 거스름 돈을 왜 돌려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30,000원과 20,000원은 엄청나게 다른 것같이 느껴지는 착시현상을 이용했다. ‘아' 와 '어'가 다르듯이 느낌이 달랐다. 20,000원대의 저렴한 비용으로 수학여행을 잘 다녀왔노라고 자랑까지 늘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 출신이 많은 음대생들은 45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이미 1학기에 다녀왔노라는 소문이 캠퍼스 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하긴 체육대회 행사 때마다 음료수 주류 간식거리 등을 트럭 단위로 찬조하는 음대생 부모들도 있다는 소문도 돌던 시절이었다.   

   

교수님, 이번 학기 등록금은 고모부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심 교수는 그렇게 솔직한 것을 좋아하지...”
 우리 법대에는 학기 단위 평점 1위인 과수석을 차지한 학생에겐 한 학기 등록금 전액 장학금 혜택을 주었다. 아름다운 제도였다. 친구 성용이는 지난 학기 학점 수석 자리에 오른 백 선배가 이번에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던 자리에서 백 선배와 민법 교수 간 오간 대화를 내게 귀띔했다.      

이 순간 나는 잠시 상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력을 기준으로 편 가르기를 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부모를 둔 법대생이 많은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계기가 되었다.  

    

4.19 의거 기념일 전후였다.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눈이 부시도록 흰 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렸다. 남학생이 전무하거나 여학생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가정대, 문과대 여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도 한 두 권의 책과 대학 노트를 한 손으로 자신들의 가슴 쪽에 밀착시킨 채 조잘거리며 해맑은 표정으로 교시탑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한편 중앙도서관 앞이었다. 고르게 잘 자란 잔디밭엔 여학생들이 작은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앙증맞은 사이즈의 컬러풀한 프라스틱  도시락을 앞에 대령했다. 수저와 포크 역할을 동시에 장착한 도구를 이용했다. 여유 있는 동작으로 밥알 뭉치를 조금씩 입안에 밀어 넣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중 한 가정을 꾸릴 경우 내 미래의 딸내미에게도 저렇게 대학에 보내어 캠퍼스 안에서 즐겁게 오가는 정도로 키워낼 수 있을까.’

나로선 솔직히 장담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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