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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15.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 대학시절 2편)

                         

우리는 스쿨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는 드디어 4회 연속 수학여행의 장도에 올랐다. 어디서 조달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복학생 선배들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공연 무대에 자주 등장하는 음향기기를 공간에 여유가 있는 객실 한 곳에 대령시켰다. 박자와 스텝을 맞추어가며 그 이름도 생소한 ‘지르박’ ‘탱고등의 시범과 개인교습에 나섰다. 때론 차차차를 외쳤다. 역시 세월의 무게와 관록이란 무시할 수 없었다. 카바레를 잠시 이곳 수학여행단 숙소로 옮겨 놓은 듯했다.     


사회자님, 이 유리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주실 수 있나요?”

후리후리한 6척 장신에 멋진 구레나룻을 자랑하던 복학생 선배가 자진하여 오프닝 무대에 보컬로 나섰다. 이국적인 외모가 트레이드마크였다. 바리톤 오현명의 명태가 자신의 18번이었다. 노래 가사의 중후반 즈음 ‘소주를 마실 때~’를 입밖에 낸 후 방금 전 사회자가 대령했던 소주를 원샷으로 단번에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크하라는 후렴을 이어갔다.  

    

무어, 저따위가 노래야, 대중가요, 판소리, 가곡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정체 모를 한 가락에 불과한 것 아니야?’ 나의 당시 의혹이었다. 그런데 절대 그것이 아니었다. 한 때 우리나라 대표 가곡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는 엄청난 사실을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시인 양명문의 노랫말에 작곡가 변훈이 곡을 붙이어 탄생한 명품 가곡이었다. 우리가 잘 먹는 국민 생선 명태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곡이었지만 처음엔 엄청난 비난과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윽고 양 시인에겐 작사 의뢰가 끊겼고 변훈 작곡가는 작곡가의 길을 포기하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가사와 개성 있는 멜로디가 나중엔 호평으로 바뀌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개성이 있고 창의성이 있는 창작물은 언젠가는 그 진가를 알아주게 된다는 두 개의 작은 교훈을 얻었다. 

    

야 인마 얼른 마셔, 오늘은 주호 형이 너에게 술을 사주려고 작정을 한 거야...”

4년 선배 주호 형과 나는 사실 좀 서먹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학번이 4년이나 위인 선배를 그에 걸맞게 대접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주호 형’이란 말을 입밖에 자연스럽게 낼 수가 없었다. 과동기 절친 성준이가 내게 눈을 찔근거리며 훈계조로 한마디 건넸다. 나는 성준이의 말을 받들기로 했다. 그래서 어정쩡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자연스럽게 대작에 나섰다.

     

주호형은 지난 봄철 축제 기간 중 민사모의 재판을 마친 후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화를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선배가 회식 자리에서 사회자로 나섰다. 각종 크고 작은  캠퍼스 내 행사 자리마다 나서서 이미 MC의 역량을 인정받은 터였다. 

    

오늘 이 자리에선 교수님들의 술버릇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자의 멘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던 헌법 교수가 주호 형을 나중에 불러 세웠다. 

, 그런 말을 쓰면 안 되는 거야. 어디 감히 교수의 술버릇 운운이야?”

예 교수님 잘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주호 형은 '사과 매뉴얼'에 실린 정석대로 즉석에서 사과를 했다.      


아니야. 주호야 괜찮아. 이런 자리에선 그런 멘트가 아주 적절한 것이었어.”

우리 법대 대 선배인 헌법 교수는 이제 명실상부한 헌법학계 거두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반면 주호형에게 어깨를 토닥이며 힘을 실어주던 민법 교수는 국립 S대 법대 출신이었다. 두 교수는 많은 연배 차이가 있었다. 헌법 교수는 이미 명강의나 무게 있는 논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저명한 헌법학자였다. 반면 민법 교수는 아직 갈 길이 멀었던 처지였다. 

    

여기서 나는 잠시 분석 모드에 들어섰다. 만약 민

법 교수도 우리 대학 선배였다면 어떠했을까.

코 헌법 교수와 각을 세우는 취지의 코멘트에 나서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생존경쟁’ ‘파워게임이란 것이 권력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

었다.  

    

이 술자리가 파한 후 우리 일행 세 명은 오늘 남은 여행 코스를 쭈욱 동행하게 되었다. 오색 약수터 인근이었다. 우리는 모델과 사진 기사의 역할을 번갈아가며 추억의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분주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너른 바위 위에 편한 자세로 걸터앉아 쉬어가던 중이었다. 전방 10

터 내외 9시 방향에서 자매로 보이는 젊은 여성 관광객 둘이 눈에 들어왔다. 주호 형은 즉각 작업에 착수했다. 대성공이었다. 병역의무를 이미 마친 예비역 복학생이라면 무시 못할 프리미엄을 받던 시절이었다.  

    

자매도 동행하기로 했다. 이래서 우리 일행은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다. 양측의 카메라로 서로 번갈아가며 설악산 일대의 절경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래의 나이에 비해 홍안을 자랑하는 선배의 외모에다 이미 적어도 캠퍼스 내에선 유명 MC의 자리를 굳

게 다진 선배였다. 그러니 주호형은 대화를 자

스럽게 리드하는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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