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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17.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대학시절 3편 완)

                        

우리가 여행 기간 내내 이용한 스쿨버스만 보더라도 우리의 신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했다. 게다가 운전석 반대편 쪽 스쿨버스 외벽에 정의가 살이 숨 쉬는 영광 법대라 기재한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었다. ‘@@법대 수학여행단이란 안내 문구도 부기되어 있었다. 이 정도니 이 자매는 유리의 신분을 의심할 일은 결코 없었다.   

  

우리는 이 두 관광객 자매와 이례적으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즐거운 단체 미팅과 데이트를 마친 셈이었다. 우린 헤어지기 전에 자매의 주소를 손에 넣었다. 우리 카메라에 담긴 내용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매의 카메라로 작업을 마친 필름도 넘겨받았다. 그래서 그 사진을 인화하여 빠른 시일 내에 자매 쪽으로 보내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약속을 했다. 장차 어쩌면 주호형과 자매 중 언니와 여차하면 좋은 인연으로 발전해 나갈 수도 있으리라는 즐거운 상상도 할 수 있었다.   

 

철진아, 전에 우리가 부탁했던 수학여행 필름은 어떻게 되었어? 사진은 언제쯤 나오는 것이야?”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나오면 내가 알려 줄게.”
 이번에 수학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은 자신들의 카메라로 찍어낸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는 방식도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많은 친구들은 자신이 알고 지내던 단골 사진관이나 캠퍼스 타운 내 가까운 현상소에 맡겼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에 3통이나 되는 필름을 철진이를 통해 현상을 의뢰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골집에 맡길 경우 저렴한 단가에다 좋은 품질도 자신이 보증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평소 마당발이라 불리는 친구였으니 우리는 그저 철진이의 말을 믿고 편하게 문제의 필름을 별 다른 생각 없이 건넸다.

     

우리가 필름을 맡긴 지 무려 6개월이 지났다. 나는 철진이와 마주할 때마다 필름의 현상 경과를 물었고 매번 앞당겨 달라고 독촉을 빠뜨리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수학여행 필름 현상을 책임지겠다고 자신했던 철진이는 이런 우리의 독촉에 적반하장입장으로 돌아섰다. 이 필름의 안부와 소재를 따질 때마다 우리에게 오히려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철진이는 매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세월은 휘리릭 흘러 어느덧 대학 4학년 2학기 종강을 하고 기말시험을 마쳤다. 오늘은 사은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 준수야 그 문제의 필름 이야기는 이제 철진이에게 그만 물어. 철진이가 벌써 잃     

저버렸을 거야...”     

절친 성준이는 문제의 사진 회수를 이미 포기했나 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수학여행 추억이 오롯이 담긴 이 필름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특히 우리가 그 젊은 자매 관광객에게 가짜 대학생으로 오인받는 것은 더욱 싫었다.      

, 사실 이제 학교를 졸업하는 마당에 너희들에게 미안한 것 한 가지 꼽으라면 그 수학여행 필름이야. , 사실 그것 벌써 잃어버렸는데, 이제까지 사실대로 너희한테 털어놓지 못했어. 미안하다.”     

대학 4년 생활을 마감하는 사은회 자리였다. 그제야 실토를 했다. 우리가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사계절이 한 번씩 바뀐 데다  무려 2개월을 더 지나는 시점이었다.   

  

우리는 벌써 수학여행 기간 동안 단체 데이트를 이어갔던 젊은 자매 관광객에게 결국 희대의 가짜 대학생 사기극을 벌인 죄질이 아주 불량한 놈팡이로 전락을 했다. 그쪽에 우리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도 건넸으면 최소한 변명의 기회라도 잡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일이 꼬일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었다.   

   

이래서 내 대학시절 수학여행 추억이 담긴 사진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희귀한 보물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 카메라의 신세를 진 경우와 단체 사진 이외엔 찾을 수가 없었다. 철진이는 우리 세 명을 가짜 대학생으로 몰아가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정말로 유감이었다.  

   

“철진아! 우리 수학여행 사진은 언제 나오지?”

, 자꾸 독촉하지 마라. 내가 곧 가져다 줄게...”

오늘도 이런 악몽에서 깨어 보니 아직 동이 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새벽 시각이었다. 아직도 수학여행 필름 분실에 따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상 비용 몇 푼을 아끼려다 우리는 큰 낭패를 당했다. 정말 소중한 추억이 담긴 아주 아까운 보물 덩어리를 몽땅 한꺼번에 잃는 대형 참사를 당했다. 보통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소탐대실이란 문구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뒤끝이 개운하지 못했다. 수학여행 전성시대의 대미를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해서 지극히 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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