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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19. 2022

추억의 창고 집과 5일장 시대(1편)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시면 남인데 무엇이 안타까워 기다려지나 ~”
 오늘은 16일이다. 우리 동네 5일 장이 열리는 날이다. 우리 면의 5일 장은 1·6 일이었다. 우리 창고 집에서 3시 방향 10미터 내외의 거리에 자리한 포목상 아저씨였다. 손님이 뜸해지자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장돌뱅이들마다 각자의 영업 구역이 따로 정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깔끔한 대패질로 잘 다듬어진 광채까지 나는 짙은 고동색이었다. 기다랗고 납작한 각목으로 세 변 아래 위를 둘러 짜 맞추어 직사각형 공간을 만들어 냈다. 영업장의 앞 변은 트여 있었다. 2평 내외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성복과 옷감을 같이 취급하기도 했고 이 두 품목 중 한 가지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도 있었다. 포목상은 옷감 원단을 수평으로 짜 맞춘 각목에 걸쳐 진열했다. 비단 옷감, 한복, 양복 원단, 삼베 등 그 취급 품목도 제법 다양했다.

     

내 고향 절친 어머니도 방금 흥얼거리던 아저씨의 바로 옆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등시절 매주 수요일은 저금을 하는 날이었다. 소나무 마을이 출생지인 이 포목점집 장남은 나와 학교 동기였다. 매주 수요일이 돌아오면 천수는 평소보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종이 통장에 끼워 담임선생님에게 내미는 1주간 단위 저금액 순위가 항상 최상위에 랭크되었다. 나는 매주 10원을 저금하던 시절이었다. 친구는 수요일마다 내 저금액의 3~5 배를 자신 있게 들고 나섰다. 현금 회전이 빠른 포목상을 꾸려가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산수 교과서에 구구단이 나뉘어 올라 있었다. 2단부터 9단까지 모두 한 학기에 배우지 않았다. 구구단이 실린 쪽엔 이해를 돕기 위해 삽화가 늘 실려 있었다. 이 시절 8단과 함께 등장하는 해물 그림의 정체가 아직도 헷갈릴 지경이다. 나는 오징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문어였음이 나중에야 밝혀졌다. 문어의 다리가 8개였던 것이었다. 오징어보다 귀족 어종에 속했던 문어의 다리가 많으리라는 선입견이 늘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친구 어머니 포목상 구역 맞은편은 건어물을 파는 아저씨 차지였다. 앙증맞은 크기의 나무 재질로 만든 네모난 되박이었다. 이 되박에 편강을 수북이 담아 진열했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문어, 피둥어 오징어 모두를 취급했다. 기제사가 아닌 양대 명절 차례상 위에 겨우 오르던 피둥어를 보더라도 오징어는 평민이고 문어는 귀족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문어의 다리가 오징어의 그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던 중학생 시절 10월을 일컫는 영어 접두어 옥토를 제대로 생각해보았으면 이런 혼동은 금세 정리가 되고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구구단은 제일 윗 단위가 9단이었고 10단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8단에 등장했던 어종은 오징어가 아니고 문어였다고 겨우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마른오징어는 20마리를 한 축으로 엮어내어 거래되었다. 그 용어도 정겨운 이란 단위를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 고향 5일장에서 이 오징어를 한 축으로 거래되는 것을 구경하기란 좀처럼 힘들었다. 한 축으로 묶인 이 오징어를 헐어서 1마리씩 팔았다.

     

별로 급할 일도 없고 바쁘게 움직일 일이 없는 5일장 보기에 나선 시골 촌노와 단골손님이었다. 이곳 건어물 코너에 들러 자주 쉬어가던 중이었다. 무료함을 달래는데 아주 최적화된 손 장난에 두 가지가 있었다.      


둥근 모양의 커다란 버튼과 유사했다. 오징어 몸통과 다리의 한가운데 붙어 있는 누두(漏斗)를 주인장의 사전 허락도 없이 떼어내 심심풀이 군것질에 갈음했다. 주인장은 이를 두 눈으로 똑바로 지켜볼 수 있음에도 전혀 말릴 생각이 없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징어 다리 중 짧고 별로 성치 않은 외양의 다리를 치밀하게 골라 떼어 냈다. 이윽고 이 떼어낸 다리도 누두와 같은 용도로 넉살 좋게 활용했다.

     

내가 이제껏 오징어의 온전한 다리 수를 자신 있게 기억해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5일 장터 건어물 코너에서 대가를 받고 손님들 손에 건네지는 오징어의 다리 10개가 온전히 붙어 있던 것을 지켜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한 두 개 이상의 다리가 촌노나 단골손님 손을 거쳐 훼손된 온전하지 못한 오징어로 거래되는 것이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 오징어를 손에 넣는 손님도 이에 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오징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이 촌노나 단골손님의 행태를 그대로 따라나설 수는 없었다. 건어물 코너 주인장과 그저 세상 사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이 오징어의 다리를 축내는 고도의 세련된 손기술을 익히기엔 내 나이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이 손기술을 발휘하는 손님을 형법상 손괴죄절도죄로 다스려도 별로 큰 문제가 없을듯했다. 하지만 주인장은 늘 있는 일로 눈감아 넘기니 범죄행위가 절대 아니었다. 어린 내가 이를 흉내라도 냈으면 나는 학교에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았거나 부모님을 모셔오라며 호되게 꾸지람을 받을 것이 뻔했다. 

    

산수 교과서 구구단 중 8단 편에 등장하는 삽화에서 문어를 오징어로 전격 교체하더라도 이 5일장이 서는 면 단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구구단을 익히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했다. 5일장 한 귀퉁이의 건어물 코너를 찾는 단골손님들은 10개의 오징어 다리 중 정확히 2개 만을 떼어내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전한 오징어의 다리가 10개가 아닌 8개라고 우겨도 이를 잘못되었다거나 나무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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