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 때 박치기 왕으로 불리었던 프로 레슬러 김일 선수는 우리 모두의 우상이었다. 평소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레슬링 경기 중계방송을 볼 수 있는 TV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꼬맹이들은 까치발을 들고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김일 선수의 박치기 세례가 시작되면 이 레슬링 경기는 곧 극적으로 반전이 되었다. 결국은 늘 박치기 왕의 최종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우리 준수의 바꾸기, 바꾸기!”
이 “김일 선수의 박치기!”구호가 멋진 패러디로 새로이 탄생했다. 누런색 시멘트 종이 포대나 보다 고급스러운 달력 종이로 만들어낸 딱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것과 다른 또 하나의 ‘딱지(계급장)’ 놀이가 따로 있었다. 지금 통용되고 있는 종이 명함 3분의 1 크기의 딱지를 가게에서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었다.
딱지마다 계급이나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주로 군대의 계급제도를 그대로 도입했다. 이병 ~ 병장, 하사 ~ 상사, 소위 ~대위, 소령 ~ 대령, 원수, 이어 대통령이 제일 정점을 차지했다. 일대일로 대결을 벌였다. 자신이 손에 쥔 계급장을 공개하지 않고 동시에 계급장을 내밀었다. 계급이 높은 것을 내민 선수가 상대방의 딱지를 공출해가는 방식이었다.
상대가 과연 어떤 계급장을 내밀 것인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었다. 제법 높은 계급장을 내밀어도 상대가 그 보다 한 단계라도
더 높은 것을 들이대면 계급장을 공출당하는 것
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가장 큰 변수이자 반전의 기회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자 전법에 동원할 수 있는 비빌 병기가 따로 있었다. 이른바 ‘바꾸기’란 계급장도 아닌 해괴망측한 이름을 단 깡패 같은 계급장이 등장했다. 상대가 원수나 대통령을 내밀 기미가 확실하게 보인다면 상대
의 계급장과 교환할 수 있는 절회의 기회를 활용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전가의 보도처럼
이 바꾸기 카드를 자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대가 대통령을 내밀 줄로 확신하여 이쪽에서 바꾸기를 내밀었지만 상대의 패는 겨우 이등병에 그친 결과가 나오면 큰 낭패를 보는 것이었다.
이 바꾸기 카드를 요령 있게 잘 활용하면 로또처
럼 인생 역전도 가능한 반면에 자칫 그르치면 패가망신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상대에게 이 바
꾸기 계급장을 건네는 대신 아주 높은 계급장을
손에 넣을 때마다 ‘준수의 바꾸기’라는 고함을 질렀다. 프로 씨름판에서 천하장사 등극자로 최
종 결정된 순간이었다. 주인공이 양손 가득 모래
를 모아 포효하며 경기장 여러 곳으로 흩뿌리던 선수의 동작에 딱 맞았다.
초등시절 벌칙으로 선착순 달리기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선생님은 선두가 최초 출발지로 도착하기 전에 또 다른 곳을 지정했다. 이렇게 중간에 목표 지점을 바꾸는 경우 선두와 꼴찌가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순간에 필적했다. 세상의 기존 질서를 뒤집듯이 가공할만한 요술을 부릴
수 있는 리셋 버튼을 찾아 나서는 절묘한 타이밍
에 이 바꾸기 카드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것
이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아예 사라진 지금
이 바꾸기 카드가 언제 등장할지 모든 이는 궁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