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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22. 2022

추억의 창고 집과 5일장 시대(4편)


                          

이번에도 튀밥 아저씨는 좋은 논을 세 마지기나 샀다네...”

5일 장터 네 변의 긴쪽 중앙에 우리 창고 집이 자리했다. 우리 창고 집과 같은 변의 오른쪽 끄트머리엔 5일장이 서는 날마다 동네 꼬맹이는 물론 주부들로 언제나 북적였다. 

    

튀밥 재료는 쌀, 보리쌀, 옥수수, 서리태콩, 가래떡을 사선으로 삐져내 말린 떡점 등 다양했다. 우리 집의 재료는 쌀 한 가지로 일관했다. 옥수수 등을 동원하는 다른 집 형편이 부러웠다. 특히 서래태콩 튀밥은 부드러워 먹기에 수월했다. 쌀 한 되를 튀겨낸 우리는 6남매가 본적지 300번지 툇마루에 걸터앉아 늘 하루 만에 모두 소진했다.  

   

삼시 세 끼 밥 말고 간식거리가 흔치 않았다. 흔히 뻥튀기라 불리는 이 물건은 우리 동네에선 튀밥으로 통했다. 이 튀밥은 아주 근사한 간식거리였다. 대나무 싸리나무 소쿠리 등에 튀밥 재료를 담아 줄을 세웠다. 언제나 내 차지가 올지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이 튀밥을 만들어내는 기계는 재래식 포탄을 방불케 했다. 땅콩의 외형을 닮아 있었다. 왼쪽 끝은 재료를 넣었다 완성품을 꺼내는 입구가 장착되어 있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 ‘피대 줄’를 끼워 이 기계 몸체를 통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땔감에 풀무질을 했다. 이 기계의 재질은 투박한 무쇠였다. 이 길쭉한 기계 아래 한가운데엔 장작개비를 담아 태워 기계에 열을 공급하는 화로가 마련되었다. 그 화로 아래에 바퀴가 달려 있어 이 화로통을 밀었다 당겼다 하며 땔감을 수시로 보충했다.  


튀밥 료를 기계 입구에 먼저 밀어 넣었다. 아마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듯했다. 가로로 규칙적인 주름이 마련되었고 윗 뚜껑을 모두 제거한 깡통에 사카란 두어 수저에 물을 섞어 입구에 털어 넣었다. 기계 뚜껑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완벽하게 밀봉했다. 지금의 식용 설탕은 당도 면에서 당시 사카린에 견주면 ‘불도저 앞의 삽질에 불과했다.  

   

기계에 부착된 둥근 손목시계 모양의 압력 게이지보다 이 프로 선수 아저씨의 눈과 귀 육감이 더 정확했다. 이제 바야흐로 완성품 튀밥을 쏟아낼 시각이 다가왔다. 길이는 석자에 조금 모자랐다. 보통 고무보다 연성이 압도적으로 모자란 검은색 바탕에 가끔 흰 줄무늬가 보이는 투박한 고무줄을 동원했다. 철망의 군데군데를 이 고무줄로 떠맨 둥그런 원형 망태기를 기계의 입구 쪽에 들이밀었다. ‘기역자’ 모양의 쇠꼬챙이를 홈에 걸어 고리 부분을 왼쪽으로 힘껏 들어 올렸다.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은 양쪽 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순간 하는 굉음과 함께 완성된 튀밥은 기계 안에서 압력을 견디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와 망태기를 하나 가득 채웠다.   

       

이 튀밥 아저씨는 우리 동네 5일장이 아닌 무신 날엔 역사를 자랑하는 손 때가 묻은 리어카에 이 기계를 싣고 직접 부락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이른바 출장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의 출장지는 면 소재지 아크로폴리스라 불리던 ‘마

뚝 거리’로 정해졌다. 자귀로 쫓아낸 땔감을 한 아름 들고 나선 내 고향 절친 성득이는 튀밥 튀기

는 삯을 전액 면제받는 행운을 누렸다.   

   

튀밥 아저씨는 평소 근면과 성실함을 자신의

기로 자랑했다. 아저씨는 튀밥을 튀기는 이

돈에 불과한 품삯을 알뜰히 모았다. 그래서

향 들판의 문전옥답을 꾸준히 사들였다. 다

요령을 피거나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았다.

저 우직하게 땀을 흘리는 노동의 대가인 품

삯을 모아 이제 동네 신흥 부자의 반열에 올랐

다. 은 시간에 자산을 크게 불리기 위해 품삯

로모은 돈을 이 튀밥 기계에 넣어 무리하게

튀기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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