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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5. 2022

대학촌 순례(1편)

                                  

대학을 졸업 후에도 일정 기간 대학촌을 떠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대학촌에선 각종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 웬만한 것이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이미 일정한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듯했다. 캠퍼스에서 가까운 곳에 작장을 잡은 경우는 물론 일자리가 가깝지 않은 경우도 학창 시절의 하숙집이나 자취방을 떠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찍이 어느 유명인이 설파했듯이 캠퍼스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아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학시절 자주 찾던 음식점, 주점, 찻집, 카페, 약국, 병원, 서점, 음익사, 당구장 등을 새로이 찾아 나서는 반추를 해 보기로 한다.     


이곳은 간단한 가정식 백반이나 비빔밥, 설렁탕, 육개장, 만둣국 등 메뉴가 다양했다. 지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의 상호에 관해선 논란이 있었다. ‘해바라기또는 ‘해라바기’ 둘 중 어느 하나가 맞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가성비가 좋았고 저녁 주점보다는 점심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었다. 이 집 주인장은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최근 승용차 한 대를 뽑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우리는 비빔밥을 가장 많이 찾았다. 700원이면 1인분 주문이 가능했다.     

 

점심식사 시간엔 캠퍼스 안 잔디밭에 자리를 펴거나 중앙도서관 2층 식사실을 주로 이용했다. 때론 캠퍼스 타운 내 라면집을 찾아 나섰다. 보통 라면 시세는 300원이 대세였다. 2홉들이 소주 한 병과 정확히 똑같았다. 라면을 주문하면 대부분의 식당은 단무지만을 식탁에 올렸다. 사장에게 애걸을 하면 가끔 배추김치를 특별히 덤으로 내오기도 했다.

      

오늘은 민속촌이란 곳을 동기 선배가 섞인 네댓 명이 찾았다. 이곳의 내부 인테리어는 독특했다. 예전에 정통 중화 요릿집이나 레스토랑의 이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이곳을 자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보통 라면을 주문하면 둥근 원탁 위에 단무지와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이에 더하여 콩나물무침도 아끼지 않고 접시에 수북하게 올려 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자주 찾는 라면집의 반열에 이미 올랐다. 우리는 각자의 도시락과 라면 그릇을 모두 금세 비웠다. 배추김치나 콩나물 무침을 계속해서 리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때론 주인장에게 너무 염치가 없어 발길을 이곳으로 돌리기를 주저하기도 했다.

     

어이, 거기 코 묻은 돈을 집어넣어, 오늘은 내가 계산하지.”
 예비역 입학 동기 형이 콤비 저고리 안 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내 들었다. 우리를 코흘리개로 부를 정도의 연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떡국 떡점을 넣어주는 이른바 프리미엄급인 떡라면은 350원을 호가했다.      

이 민속촌 주인장은 라면을 팔아 혹시 적자를 면할 수 있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배추김치와 콩나물 무침 원가가 녹록지 않았기에 그런 걱정도 해보았다.  

   

월계동 시영아파트 시절이었다. , 여동생, 남동생과 나 이렇게 넷이서 자취 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주말 공휴일 불구하고 여동생은 매일 2개의 도시락을 이 작은 오라버니를 위해 챙겨야 했다. 그 고생이야 말로 해서 무엇하랴. 중앙도서관 식사실에 비치된 온수를 동원하더라도 차가운 도시락으로 점심 저녁을 해결하기엔 좀 어설펐다. 그래서 고향 부모님에게 추가 특별 향토장학금을 요청했다. 매일 점심, 저녁 식사를 음식점을 정해놓고 매식을 하기로 했다. 1개월 단위로 선불하는 조건이었다. 매번 식사를 마치고 치부책에 서명을 하는 방식이었다.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이 메인 메뉴였다. 한 끼당 100원의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이 집 주인장 외모와 내 고향 절친 매형의 그것의 싱크로율은 무려 100%에 육박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절친과 이곳을 한번 같이 찾자는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의료원 정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약 100걸음 정도를 뗀 곳에 4층 신축 빌딩이 들어섰다. 이곳 2층은 미네르바란 근사한 이름을 단 레스토랑이 통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대학생이 평소에 드나들기엔 이 식당 메뉴의 단가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조명 시설 등이 멋지고 다른 인테리어도 근사했다. 돈가스는 기본이었고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등 그 이름도 생소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 메뉴판에 올라 있었다.  

    

그래, 오늘은 좀 더 마실수 있겠네...”

법대 직속 고교 선배는 깨끗한 흰 봉투 안의 지폐 매수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병맥주 2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오늘은 이 선배 덕분에 잠시 신분이 상승한 착각에 빠졌다. 선배는 자신의 형으로부터 한달2번씩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좀 여유가 있는 형편이었다. 남자 동기나 복학생 선배들과 이곳을 찾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여자 동기, 선후배나 때론 미팅 파트너와 이곳을 찾는 동기들을 나는 가끔 먼발치에서 구경할 수는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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