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교 대학촌 대표 소줏집 부문에선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서로 건너편 길가의 정확히 맞은편은 아니었다. 약 스무 발자국 거리를 비켜 버티고 있었다. 이름하여 ‘농촌’과 ‘아방래물 “이 그것이었다.
농촌이란 곳엔 산태미, 지게, 호미, 멍석 등 농기구를 주점의 실내 여유 공간마다 랜덤으로 진열하여 60 ~70년대 우리 고향의 정취를 일부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남자 동기 학수가 갑자기 뜬금없이 술좌석을 박차고 일어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한 곡을 뽑았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마산 출신 법대 동기 홍일점 미혜의 두 눈엔 이슬이 맺혔다. 소리 내어 흐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학수의 노래에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다.
노래 실력 자랑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은 언제나 내 바람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도 나는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 왔다.
“어려우면 합창이라도 하시지요?”
행정학과 여자 동기는 내가 노래엔 젬병이라는 것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나에게 마이크를 넘기되 정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좀 도와줄 수 있다는 선의의 발로였다. 내가 비록 소리를 주로 다스리는 사람이지만 '적선‘이나 ’ 동정‘을 받는 것 같아 도움을 받기는 내키지 않았다. 동기의 제안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내가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술자리 판이 깨질 텐데...”
나는 월인석보에 곡을 붙인 찬송가가 아닌 찬불가를 들고 나섰다. 절친 동기 재신이는 유리 재질의 소주병 외벽을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박
자를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추임새로라도 나를 돕고자 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선술집으로 불리는 ’ 농촌‘을 찾을 때마다 누가 청하지 않더라도 자진하여 한 곡씩 뽑는 것이 어느덧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런 것이 대학가의 낭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래서 주점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고 늘 붐볐으며 시끌벅적했다. 시끄럽다고 어느 누구도 말리거나 딴지를 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우리 친구들에게 찬불가를 처음 선 보일 때는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직후였다.
세월은 참으로 빨랐다.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다. 오늘도 동기 네댓이 찾은 주점 농촌은 여전히 젊은 에너지와 활기로 넘쳐났다. 그러나 2학년 그때와 내 생각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대학생들의 노랫소리와 주고받는 톤이 높은 목소리는 내게 이제 더 이상 낭만이 아닌 소음으로 들렸다. 그간 별로 이룬 것이 없이 벌써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착잡한 심경 때문이었다. 이리 짧은 세월에 변절이 된 자신의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다. '낭만' 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었다.
“나는 마지막 잔은 마시지 않거든, 그래야 다음에 또 이곳에 들러 그 잔을 비울 수 있는 것이니까...
나의 마지막 순번 노래와 재신이의 ‘비우지 않은 마지막 소주잔’은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어찌 보면 더 운치가 있었고 근사했다.
“나는 그곳 술집 장부 외상 잔고를 제로로 만들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러던 내가 나중엔 무슨 이유인지 외상값을 모두 한꺼번에 갚아버렸어. 그랬더니 주인장이 내게 정말 고맙다며 서비스로 거하게 술상의 차려주더구먼...”
농촌과 또 다른 소줏집 ‘아방래물’에 대한 무용담을 자랑하고 나선 동기 일훈이었다.
농촌과 쌍벽을 이루는 이곳 또한 우리가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곳의 정확한 상호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아직까지 그 진위가 밝혀지고 있지 않다. 주점 벽의 한편에 걸린 사업자등록증을 한 번이라도 확인했으면 금세 궁금증이 풀릴 수 있었는데도 참 우리는 순진하기도 했다. 지하의 비빔밥집 상호를 놓고 ‘해바라기’와 ‘해라 바기’ 간 갑론을박이 있었듯이 이곳도 ‘물레방아’ ‘아방래물’에 관한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늘은 동기 재신이, 1년 후배 훈섭이와 영성이 이렇게 4명이 이곳을 찾았다.
“아이, 또 뱃속이 편하지 않네...”
자리를 정하고 내가 혼잣말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방금 전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던 영성이는 숨을 헐레벌떡 내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영성이의 한 손엔 ‘정노환’이 들려 있었다. 1년 선배인 나를 위해 근처 약국을 급히 다녀온 것이었다. 나는 순
간 코끝이 시끈 해졌다. 나를 선배라고 이렇게 끔찍하게 챙기고 나서니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마쳤다. 이곳 아방래물에서 우리 동기 3명이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 위엔 빈 소주병이 순식간에 늘어만 가고 있었다. 우리 셋의 주머니를 모두 털어내도 계산에 부족할 듯했다. 그래서 이곳에 멀지 않은 내 하숙집을 다녀와야 했다. 책꽂이 한 귀퉁이에 꽂힌 물권법 교과서 안에 고이 보관 중이던 10,000원 지폐 한 장을 동원했다. 이곳 주인장이 알아 볼만큼 나는 단골손님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외상 거래를 트자고 할 만큼 배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