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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6. 2022

대학촌 순례(2편)

                          

우리 모교 대학촌 대표 소줏집 부문에선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서로 건너편 길가의 정확히 맞은편은 아니었다. 스무 발자국 거리를 비켜 버티고 있었다. 이름하여 농촌‘아방래물 “이 그것이었다.      

농촌이란 곳엔 산태미, 지게, 호미, 석 등 농기구를  주점의 실내 여유 공간마다 랜덤으로 진열하여 60 ~70년대 우리 고향의 정취를 일부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남자 동기 학수가 갑자기 뜬금없이 술좌석을 박차고 일어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한 곡을 뽑았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마산 출신 법대 동기 홍일점 미혜의 두 눈엔 이슬이 맺혔다. 소리 내어 흐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학수의 노래에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다.      


노래 실력 자랑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은 언제나 내 바람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도 나는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 왔다.

     

어려우면 합창이라도 하시지요?”

행정학과 여자 동기는 내가 노래엔 젬병이라는 것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나에게 마이크를 넘기되 정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좀 도와줄 수 있다는 선의의 발로였다. 내가 비록 소리를 주로 다스리는 사람이지만 '적선‘이나 ’ 동정‘을 받는 것 같아 도움을 받기는 내키지 않았다. 동기의 제안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내가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술자리 판이 깨질 텐데...”

나는 월인석보에 곡을 붙인 찬송가가 아닌 찬불가를 들고 나섰다. 절친 동기 재신이는 유리 재질의 소주병 외벽을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박

자를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추임새로라도 나를 돕고자 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선술집으로 불리는 ’ 농촌‘을 찾을 때마다 누가 청하지 않더라도 자진하여 한 곡씩 뽑는 것이 어느덧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런 것이 대학가의 낭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래서 주점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고 늘 붐볐으며 시끌벅적했다. 시끄럽다고 어느 누구도 말리거나 딴지를 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우리 친구들에게 찬불가를 처음 선 보일 때는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직후였다.  

    

세월은 참으로 빨랐다.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다. 오늘도 동기 네댓이  찾은 주점 농촌은 여전히 젊은 에너지와 활기로 넘쳐났다. 그러나 2학년 그때와 내 생각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대학생들의 노랫소리와 주고받는 톤이 높은 목소리는 내게 이제 더 이상 낭만이 아닌 소음으로 들렸다. 그간 별로 이룬 것이 없이 벌써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착잡한 심경 때문이었다. 이리 짧은 세월에 변절이 된 자신의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다. '낭만' 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었다.   

  

나는 마지막 잔은 마시지 않거든, 그래야 다음에 또 이곳에 들러 그 잔을 비울 수 있는 것이니까...

나의 마지막 순번 노래와 재신이의 비우지 않은 마지막 소주잔은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어찌 보면 더 운치가 있었고 근사했다. 

    

나는 그곳 술집 장부 외상 잔고를 제로로 만들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러던 내가 나중엔 무슨 이유인지 외상값을 모두 한꺼번에 갚아버렸어. 그랬더니 주인장이 내게 정말 고맙다며 서비스로 거하게 술상의 차려주더구먼...”

농촌과 또 다른 소줏집 아방래물에 대한 무용담을 자랑하고 나선 동기 일훈이었다.  

    

농촌과 쌍벽을 이루는 이곳 또한 우리가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곳의 정확한 상호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아직까지 그 진위가 밝혀지고 있지 않다. 주점 벽의 한편에 걸린 사업자등록증을 한 번이라도 확인했으면 금세 궁금증이 풀릴 수 있었는데도 참 우리는 순진하기도 했다. 지하의 비빔밥집 상호를 놓고 ‘해바라기’와 ‘해라 바기’ 간 갑론을박이 있었듯이 이곳도 ‘물레방아’ ‘아방래물에 관한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늘은 동기 재신이, 1년 후배 훈섭이와 영성이 이렇게 4명이 이곳을 찾았다.

아이, 또 뱃속이 편하지 않네...”
 자리를 정하고 내가 혼잣말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방금 전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던 영성이는 숨을 헐레벌떡 내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영성이의 한 손엔 정노환이 들려 있었다. 1년 선배인 나를 위해 근처 약국을 급히 다녀온 것이었다. 나는 순

간 코끝이 시끈 해졌다. 나를 선배라고 이렇게 끔찍하게 챙기고 나서니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마쳤다. 이곳 아방래물에서 우리 동기 3명이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 위엔 빈 소주병이 순식간에 늘어만 가고 있었다. 우리 셋의 주머니를 모두 털어내도 계산에 부족할 듯했다. 그래서 이곳에 멀지 않은 내 하숙집을 다녀와야 했다. 책꽂이 한 귀퉁이에 꽂힌 물권법 교과서 안에 고이 보관 중이던 10,000원 지폐 한 장을 동원했다. 이곳 주인장이 알아 볼만큼 나는 단골손님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외상 거래를 트자고 할 만큼 배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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