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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7. 2022

대학촌 순례(3편)

                        

형수님, 여기 5인 분 같은 3인 분 추가요!”

이곳의 메인 메뉴는 돼지갈비와 삼겹살이었다. 전자는 여름 후자는 겨울에 더 어울리는 메뉴로 알려져 있던 시절이었다. 윤이 나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둥근 띠를 위에 두른 화덕 한가운데 25  연탄 두 장을 포개 넣었다. 그 위에 석쇠를 올려 고기를 구워냈다.  

    

복학생 선배의 형수님 부부가 꾸려 가던 곳이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이 집 안주인을 형수님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떡전 왕갈비란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건장한 성인 남자 손바닥 크기 돼지갈비를 ‘1란 단위로 600원에 석쇠 위에 올릴 수 있었다.      

10,000원 지폐 한 장을 들고나서면 군 입대하는 친구나 후배를 위한 참석 인원 4 ~5명 환송식도 무난히 치러낼 수 있었다. 이 홉들이 소주와 빨깐 라벨 동해 백주가 각각 3004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이는 결코 잘못된 계산이 아니었다.      


나는 초교부터 고교 졸업 시까지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부위별로 구분하여 거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재신아! 삼겹살은 쇠고기이지?”

에이, 촌스럽기는, 돼지고기야.”
 대학 1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나는 대학 동기 재신이 청주 본가를 찾았다. 재신이가 안내한 정육식당 불판 위에 수북이 쌓인 대패 삼겹살을 두고 두 사람 간에 오간 이야기였다.    

  

나는 이 떡전 왕갈비집을 처음 찾은 이후부터 ‘대’ 단위로 거래되는 돼지갈비의 매력에 푹 빠졌고 그 마니아에 이름을 올렸다. 돼지갈비를 ‘1, 2...’라는 단위로 주문을 받는 음식점이나 주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주도산이란 이름을 내걸거나 또는 제주도 현지에 자리한 정육식당에선 아직도 ‘근’ 단위로 고기를 손님에게 내는데 이는 대 단위 고기의 명맥을 그나마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근고기는 거래 단위가 너무 커서 손님에겐 또 하나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 인마, 너 아주 재수 없어!”

아니, 병용이 형 그것이 무슨 말인데요....?”
 너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다는 뜻이지 별 것 아니야...”
 나는 순간 머쓱했다. 선배가 내게 분명히 칭찬을 건넨 것이긴 한데 ‘말속에 뼈가 있다는 격언이 언뜻 떠올랐다. 병용이 형에게 그간 내가 선배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적이 있는지를 살피는 계기였다.

     

정은 사랑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 것이 아니야?”
 에이, 참 준수 씨는 누가 법학도 아니라고 할까 보아...”

디귿자로 객장의 둘레를 길게 이어간 원목 탁자에다 한가운데엔 6인용 테이블로 꾸미었. 레이아웃만을 놓고 보면 70년대 중 후반 행했던 스탠드바에 딱 맞았다. ‘아기 코끼리였다. 450원이면 생맥주 500CC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호시절이었다. 영문과 고교 선배가 늘 이르던 말이었다. 우리 학생들보다 연식이 그리 높지 않은 20대 중후반 젊은 안주인이 이끌고 있었다. 요즘 마트에 가면 손쉽게 눈에 들어오는 도시락용 작은 단위 김 용량을 1/5로 줄인 서비스 김과 신선한 생 오이를 길게 썰어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다.    

  

오늘은 우리 동기 예닐곱이 자리했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사랑과 정의 이동을 논함으로 정했다. 대학의 커리큘럼 상 어느 과목의 중간, 기말 시험 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주제는 어쩌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아주 근본적인 물음인 동시에 영원히 결론이 날 수 없는 담론이었다. 우리는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는 담론을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을 이어갔다. 그 길고 긴 여름 낮 시간도 부족했다.

      

당시 내 최종 의견인 정은 사랑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라는 것을 사랑은 정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라고 정확히 뒤집어 보았다. 그랬음에도 양자는 정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비숫한 깊은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학원 시절 갑자기 지도교수의 호출이 있었다. 상당한 위상을 자랑하는 민법 학회 모임 행사에 내게 긴급한 요청을 했다. 내 지도교수는 이 모임에서 간사를 맡고 있었다. 오늘은 나에게 간사의 심부름꾼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급히 유명 브랜드 매장을 찾아 화이트 셔츠를 새로이 마련했다. 

    

민법 학계에서 쟁쟁한 이름을 날리던 저명한 교수들이 총출동했다. 이 교수들 중 한 분이 발표에 나섰다. 자신의 예전 추억을 소환해 냈다. 외국 유학시절이었다. 토론 주제는 일반 조항으로의 도피였다. 학설이 갈리는 특정한 논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부족하면 결국 학자들은 일반 조항을 들이댄다는 것이었다. 민법의 신의성실의 원칙도 일반조항이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정답이 없는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포괄 개념이란 용어를 들먹이며 도피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랑과 정의 다르고 같은 점에 관해 자신 있게 결론을 낼 수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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