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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8. 2022

대학촌 순례(4편)

                     

역시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이었다. 나와 같이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용준이는 이제 가던 길을 과감하게 접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교단에 서는 교수의 길을 새로이 가기로 했다. 결국 이 친구는 두 번째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용준이는 중앙도서관 3층 법대 전용 열람실을 얼씬거리다 출입문이 잠시 열리는 틈을 타 나를 찾았다. 둘이서만 술자리를 갖자고 갑자기 제안을 했다. 초겨울이었다. 때 아닌 뭉치가 제법 큰 진눈깨비가 대학촌 곳곳에 사선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등용문을 등지고 @@삼거리 왕약국 모서리를 왼쪽으로 돌아 열 발작을 채 떼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얼마 전에 문을 연 주점이 성업 중이었다. 70년대 중후반 이후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란 브랜드가 국내에 상륙한 이래 치킨 요리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거창한 유명 브랜드는 아니었다. 작은 주점에서 자체 개발한 메뉴였다. ‘바비큐 치킨’이 아니라 ‘바비큐 구이라 이름했다.    

   

일번지 생맥주란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 위엔 500cc가 아닌 1,000cc 단위의 생맥주가 연이어 올라왔다. 이 바비큐 구이와 생맥주의 조합은 찰떡궁합이었다. 대단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닭고기의 기름을 덜어낸 바비큐 구이는 담백하고 고소한 독특한 맛을 자랑했다. 먹거리가 널린 산책길에 처음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국가고시 준비를 이어 기가로 했고 친구 용준이는 이제 교수의 길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앞길에 무운장구를 빌었다. 이곳을 나서던 시각에도 진눈깨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낮으나 힘 있는 목소리라고 나는 이 주점 한쪽 벽 귀퉁이에 사인펜으로 기록을 남겼다.

준수 형! 형이 원하는 국가고시에 꼭 합격하여 뜻을 마음껏 펼치세요.”

용준이가 처음 내게 소개한 일번지 생맥주집에 오늘은 내가 고교 후배 3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금연구역이니 빌딩이란 말을 아예 찾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마음껏 내뿜는 담배 연기로 주점 안은 몽롱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당시 대학가 주점엔 사방의 벽마다 아이보리 색 벽지를 둘러붙여 이에 이른바 ‘대자보’ 역할을 맡겼다.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발휘하도록 배려를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시간을 내어 용준이와 이 일번지 생맥주집을 처음 찾던 시절의 분위기를 재현해 보고 싶다.  

    

준수야! 몸이 찌뿌둥한데 우리 탁구 한 판 치러 가자.”

방금 전 우리는 중앙도서관 앞 잔디밭 위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 2층에 자리한 식사실에 수도꼭지가 아래에 달린 식수통의 보리차를 1.8 리터 용량 음료수용 유리병에 가득 채웠다. 동기 서너 명과 둘러앉아 여유 있게 도시락을 비웠다. 

    

후배 인권이는 내가 식사 때마다 들고 다니는 큰 용량의 식수용 유리병을 가리키며 피식거리며 웃곤 했다. 다른 동기들 대비 압도적으로 큰 용량의 몰병을 들고 나타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나 보았다. 가루 커피 병의 내용물을 비워낸 곳에 총각김치를 자주 담아오던 후배였다. 때론 나를 ’ 두목님’이라 부르며 살갑게 잘 따랐다.      


주점 아방래물 근처의 탁구장에 이어 레스토랑 미네르바 빌딩 3층에 새로이 탁구장이 문을 열었다. 기존 우리가 찾던 곳에 비해 등용문으로부터 이동거리가 훨씬 단축이 되었다. 친인척이나 기타 특수 관계인이란 연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손님은 거리가 가깝거나 접근성이 보다 나은 곳을 찾기 마련이었다. 이는 금융기관은 물론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교 정문에서 백 발자국도 되지 않는 곳에 새로이 문을 연 탁구장으로 단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저쪽에 계신 탁구장 사장님이 이곳에 올라오셨습니다.”

자신의 기존 단골손님을 빼앗기는 등 최근 영업상 애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탁구장 요금을 파격적으로 낮추어서 이곳보다 절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이어가지 않는 한 줄어든 매출을 만회하기란 요원해 보였다.   

  

네 시간 반을 치셨는데 3시간 요금만 주세요.”

새로 문을 연 탁구장 주인장은 우리와 연식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20대 후반 정도였다. 우리가 요즘 워낙 이곳을 자주 찾다 보니 제대로 된 단골손님 대접을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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