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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9. 2022

대학촌 순례(5편)

                        

                        

우리는 전기구이 통닭이나 생맥주를 걸고 내기 경기를 자주 이어갔다. 32선 승제로 승부를 결정했다. 첫 번째 게임에서 패배한 선수는 한 게임 더!’를 항상 외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코어가 1:1 동률이 되면 이른바 ‘엎어 쓰기’란 방식으로 최종 승부를 가리자고 나섰는데 이에 양쪽은 항상 쉽게 동의를 했다. 결국 마지막 한 게임의 승부로 3게임에 건 타이틀을 승자가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이러다 보니 점심 식사 후 빈 도시락을 든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나섰던 선수들은 이 엎어 쓰기 게임을 두어 번 정도 마치면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닥쳤다. 첫 번 째 전기구이 통닭 내기에 이어 두 번째 생맥주 내기를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렸던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게임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바야흐로 탁구 경기 시즌이 도래한 것이었다.      


우리 선수 무리엔 드라이브’, ‘스매싱이런 전문 용어도 자신 있게 구사하며 정통 탁구 실력을 뽐내던 친구도 끼어 있었다. 내 실력은 그저 재미있고 내기 경기에 적합한 플레이를 이어가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 탁구 경기 시즌에 초등 시절 선수 생활의 경험이 있는 이가 돌연 나타났다. 복학생 선배의 여동생이었다. 내 동기 운호와 자주 실력을 겨루었다. 운호에게 1세트 21점 중 15점을 접어주어도 매번 승부는 달라지지 않았다. 항상 선배 여동생의 승리로 끝이 났다. (준) 프로 선수의 실력과 아마추어의 그것 간의 간극은 상상 이상이었다. 복학생 선배는 수시로 양자 간의 대결을 부추겼고 탁구 실력이 부족하다며 운호를 자주 놀려대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오늘은 친구들과 해바라기 집에 들러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중앙도서관 3층 법대 전용 열람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늦여름 매미가 있는 힘을 다하여 울어대던 중앙도서관 진입로 오른편 숲 속에 동기들이 진을 치고 쉬어가고 있었다. 나를 불러 세웠다.  

    

준수야,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가지 그래?”
미혜와 탁구로 생맥주 내기 시합 한판 어때?”

그래, 10점은 몰라도 13점을 접어주면 준수가 미혜한테 어려울 텐데...?”

이래서 나는 법학과 홍일점 미혜와 생맥주 타이틀을 걸고 건곤일척의 내기 경기에 돌입했다. 남자 동기들 모두 애초 예상대로 경기는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진우를 비롯한 남자 동기들은 미혜를 어떻게 해서든 꼬드겨 탁구 경기를 성사시킨 다음 결국 생맥주집 행차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너무 일방적인 점수 차로 승부를 내면 미혜는 다음엔 나와 다시 경기에 나서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점수 진도를 관리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미혜를 이른바 ‘장기고객’으로 모실 필요가 절실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미혜는 당시 이런 우리의 엄청난 음모를 아직까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신군부의 등장으로 계속되는 휴교령 때문에 우리는 1학년 1학기엔 만 1개월의 수업 일수도 채우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를 겪었다. 1학기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강 신청을 마친 전과목에 걸쳐 과제물 제출로 시험 평가를 대체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2학기 개강 첫날이었다. 귀가 길에 동기 민채는 커피나 한잔 마시자며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왕양국 인근 빌딩 2층에 자리한 클래식 전문 찻집인 ‘@@다방이었다. 고교시절 음악 시간에 약 1개월간 시간을 집중 할애하여 서양 정통 음악을 감상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곳에선 대중가요를 한곡도 들을 수 없었다. 정통 클래식 음악과 가곡만을 고집했다. 민채는 그간 내게 궁금한 점이 무척이나 많았나 보았다. 호구조사나 신상털이를 하듯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오늘 이곳의 차담이 있은 후 나는 민채와 부쩍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캠퍼스 내 고교 동문회 1차 모임 장소는 ‘동굴 다방’으로 정했다.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얄타미라 동굴을 떠올릴 만도 했다. @@의료원 오늘 편 바로 아래쪽에 자리했다. 실내엔 기다랗게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입구부터 이 실내 구석 끄트머리까지 걷는 것은 동굴 여행지 산책에 다름이 아니었다.    

  

고교 7년 선배 덕성이 형은 오늘도 보기 좋게 빛이 바랜 국방색 군용 야상을 걸치고 이곳에 나타났다. 형은 요즘 한국의 바웬사라 불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당시 동구 유럽 폴란드 민주 노동운동을 이끌던 레흐 바웬사가 전 세계적으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고교  후배 신입생들이 오늘 처음 동문회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더구나 법대 직속 후배가 끼어 있었다. 법대 3년 선배 형은 자신의 맥을 이리 후배들이 꾸준히 이어 주니 기쁘다는 소감을 냈다. 우리는 2차로 중화요릿집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당시 동문회비는 3,000+ 알파가 대세였다. 지금은 새내기라 부르던 신입생은 당연히 회비를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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