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Nov 10. 2022

대학촌 순례(6편)

                       

어이. 거기 신입생인가?”

본관 잔디밭 분수대 광장을 향하던 나를 모교수가 갑자기 불러 세웠다. 신입생이란 딱지를 이마나 뒤통수에 붙이고 다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럼에도 교수를 비롯한 선배들은 모두가 실패율 제로에 도전하는 신입생 감별사반열에 이미 올라 있었다.    

  

외모나 그저 풋풋한 느낌만으로도 신입생은 매년 봄이면 이 캠퍼스 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캠퍼스 안은 그래서 항상 젊음과 패기가 넘쳐났다. 신입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물론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함과 젊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처럼 기분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동굴 다방과 왕다방은 대중가요나 팝송을 배경으로 깔아 주었다. 동굴 다방과 왕다방은 물론 클래식 전문 @@다방 보다 훨씬 세련되고 상류층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새로운 찻집이 등장했다. 왕다방 건너편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란 고급진 업종에 심포니란 이름을 달았다. 심포니를 출입문이나 도로가 내다 보이는 창문 쪽에 영어 스펠링으로 풀어 세련된 글씨체로 디자인해 적재적소에 부착을 했다. ‘Since 1983’이란 처음 보는 스타일로 개업 연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모교 등용문에서 @@삼거리에 이르는 상권을 그동안 장악했던 3개의 다방과 고급화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차 메뉴에 커피는 기본이었다. 하지만 커피도 밀크커피 등으로 메뉴를 세분화했다. 수정과, 대추차, 감잎차에 비스킷을 사이드 먹거리로 깔끔한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렸다. 서빙도 젊은 여대생 알바에 맡겼다. 가장 단가가 낮은 커피 한잔은 무려 600원을 호가했다. 보통 라면 한 그릇이 300원인 것에 비추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대였다. 

    

내 고교 동기 친구 준수야, 인사해...”
 나보다 한 해 늦게 대학 문을 들어선 고교 동기 의대 본과 3학년생 인철이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나를 소개했다. 며칠 전 인철이의 부탁이 있었다. 왕다방이 아닌 분위기가 좋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고급 찻집인 카페에서 내가 인철이와 그 여자 친구에게 차 한 잔을 사기로 미리 날을 잡아 놓았다. 인철이는 한 때 나처럼 법학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우리는 고교나 대학 문을 뒤늦게 들어선 공통점 때문에 동병상련을 느꼈고 평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던 격의 없는 사이였다.    

  

어머. 준수 씨 양미간도 무척 넓은데요...?”

인철이 여자 친구가 내게 접대성 멘트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싫지 않았. 인철이 여자 친구의 균형 잡히고 고급진 마스크에 세련된 메너를 감안하면 그랬다. 오늘 이 고급 찻집인 심포니를 약속 장소로 정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에 우리 세 사람 모두는 동의를 했다.   

   

인철이는 대학 입학 후 가진 첫 미팅에서 만난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의대 강의실로 자신을 직접 찾아와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원하던 대로 이 커플은 인철이가 의대 본과 4학년이던 해 봄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모교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렸다. 나는 수험생 신분이었지만 지방까지 먼 거리를 행차하여 두 사람의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 로터리를 지나 철길을 넘어선 언덕배기 한쪽에 자리했다. 나무의 주된 기둥이 자연스럽게 뒤틀리고 가지가 축 늘어진 서너 그루의 버드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그 이름도 운치 있는 나그네 파전’ 집이었다. 지름을 정교하게 맞춘듯한 둥근 모양의 안주를 이보다 약간 더 공간에 여유가 있는 흰색 사기질의 접시 위에 올렸다.    

  

'해물'이란 수식어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닌 홍합이나 가느다란 오징어 다리 등도 아끼지 않고 골파 사이마다 끼워 넣었다. 여유 있게 도톰한 두께에 기다랗게 늘어진 골파와 해물이 밀가루보다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푸짐한 이 집 대표 브랜드인 파전은 1,800원이면 맛을 볼 수 있었다. 사이드 안주 겸 반찬으로 동반 출격한 시큼한 깍두기 맛도 일품이었다.

     

캠퍼스를 떠난 지 무려 10여 년이 지났다. 옛 추억이 그리워 나는 이곳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대표 메뉴인 이 파전의 변절된 모습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 물가 상승률을 판매가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식용유로 범벅이 된 파전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이곳은 대학생이나 일반인 손님으로 여전히 북적였다.      


유명 브랜드나 맛집으로 소문이 나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좋았던 옛 기억을 반추하기 위한 단골 고객은 어느 날 갑자기 발길을 끊기란 쉽지 않은 듯했다. 이곳도 다른 맛집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브랜드 프리미엄을 받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촌 순례(5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