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Nov 11. 2022

대학가 순례(7편)


                                 

“12만 원이라고요? 예 여기 있습니다.”

왕약국 길 건너 맞은편에는 이브 음악사가 있었다. 검은색의 직육면체 스피커를 문 밖에 내놓고 하루 종일 노래를 송출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2학년 1학기 초여름이었다. 대학 동기 민준이는 반팔 남방셔츠 쪽 윗 주머니에서 10,000원권 지폐 12장을 금세 꺼내어 이 음악사 주인장에게 건넸다. 나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민준이가 현금을 건네고 자신이 받아 든 것은 양희은이 아닌 김민기 버전의 아침 이슬 LP판’이었다. 지금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반백 년에 육박하겠지만 당시엔 이 LP판이 세상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지는 겨우 10년 내외에 불과했다. 민준이가 걸치고 있던 남방셔츠의 왼쪽 윗주머니의 상단엔 '갤럭시' 브랜드가 내 눈에 쉽게 들어왔다.  

   

결코 보물급 소장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12만 원이란 비싼 가격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동기 민준이가 거금을 즉석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밀었음에 나는 다시 한번 더 놀랐다. 당시 나는 모교 후문 인근 주택가에서 하숙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21실 하숙비가 8만 원이었다.


 이러니 이 LP판의 거래가로 나는 한 달 반 동안 숙식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나도 지난주 이곳에 들른 적이 있었다. 친구 진우의 권유로 체크 맨지온의 기타 연주곡 모음이 담긴 카세트 레코더용 테이프를 1,500원에 손에 넣었다. 이러다 보니 이 테이프 가격은 김민기의 LP판의 호가에 비하면 아주 초라했다.  당시 자신의 손에 넣었던 이 LP판을 민준이가 아직도 고이 보관하고 있다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실패하지 않은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준수야!  오늘 이곳 빵값 계산은 네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동굴 다방 바로 근처에 자리한  '그린 제과점'에서 병주는 내게 예기치 않은 부탁을 했다.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오늘은 이번 대학 축제의 하이 리이트로 불리는 쌍쌍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전투경찰로 군에 입대한 또 다른 절친 경찬이의 여동생 윤주가 오늘 저녁 파티의 병주 파트너로 정해졌다. 그래서 우리 셋이서 이곳에 모였다. 윤주를 이곳까지 불러낸 것은 전적으로 나의 공이 컸다. 평소 윤주에 관해 경찬이와 나 시이에 오가던 스토리를 주의 깊게 들어왔던 병주였다. 병주는 이번 축제가 시작되기 2주일 전부터 윤주가 자신의 파트너로 나서게 설득해달라고 내게 졸라댔다.  

    

이 병주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 세명이 만나기로 한 것은 1주일 전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당연히 병주와 윤주였다. 나는 두 사람 만남을 주선해주고 뒤로 빠지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오늘 이 모임에서 빵과 커피 비용을 내게 떠넘기는 병주의 작태를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나로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곰보빵’ ‘크로켓’이라는 그 이름도 생소한 제과점 빵은 단가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본디 토종 한국 사람의 식성을 자랑하고 있던 터였다. 분식의 일종인 빵을 별로 즐기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오늘 이 자리의 모임 비용을 내가 선뜻 부담하는 것은 당연히 내키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병주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오늘 파티의 파트너 소개에다 빵값도 부담했으니 남에게 선행을 베푼 날로 기록해두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준수가 내 동생을 꼬드겨서 병주의 파트너로 나섰다며?”

1달 후 정기휴가를 이용해 동기들을 찾아 나선 경찬이는 지난번 사태의 전말을 확인하고자 했다.    

  

경찬이의 남매와 우리 남매의 나이는 정확히 동갑이었다. 그래서 평소 경찬이는 내게 여동생을 서로 맞바꾸어 좋은 인연을 맺자는 획기적인 제안 주 이어가곤 했다. 명색이 민법학 석사인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당시는 물론 지금 개정된 민법하에서 이 제안의 성사가 가능한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당시 대학 축제의 꽃이라 불리던 이 쌍쌍 파티에 나는 한 번도 참석한 이력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남자 동기들 중엔 파티의 파트너를 직접 구하러 여대 앞으로 출격에 나서거나 길거리 케스팅도 불사하는 아주 열정이 넘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대학촌 순례(6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