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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12. 2022

대학촌 순례(8편)

                          

어이, KGB에 준수도 이름을 올렸나?”
 여기서 말하는 KGB는 옛 소련의 첩보기관이 아니었다. 이름하여 ‘@@갤러그 보이의 영문 약칭이었다. 최근 새로이 등장한 신조어였다.     

KGB 요원인 한 학생은 오늘 콩나물 무침도 식탁에 올려주는 민속촌에서 라면 한 끼를 300원에 해결했다. 그런 다음 최근 새로이 등장한 고급 찻집인 심포니에 들러 커피 한 잔을 600원을 지불하고 후식으로 분위기 잡아가며 마셨다. 이 친구는 이윽고 전자오락실로 발길을 돌렸다. 전자 게임의 가장 초보 단계인 테트리스 벽돌 깨기로 머리를 식히는데 무려 1,200원이나 소진했다. 이런 코스를 모두 마무리한 후 당당히 모교 등용문으로 들어서는 남학생을 우리는 KGB라 일컬었다.   

   

이 세 가지 코스에 투입된 2,100이면 노땅등 레스토랑에 들러 분위기 좋은 자리에서  칼질을 하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격언을 실제로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 본래의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니면 민생고 해결보다는 좀 더 격조 높은 문화생활에 가치를 두는 시대의 조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준수야, 미안한데 나 오늘 소주 한 잔 사주면 안 될까?”

오늘은 2학년 2학기 10월 말이었다. ‘임간교실에서 예정된 황석영 원작 장산곶매마당극 공연이 시국 시위의 우려로 전격 취소되었다. 고향을 떠나 우리 모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직장을 둔 여동생과 나는 이 마당극 관람을 하려던 참이었다. 참 안타까운 형편이 되었다.  

    

모교 재학생이나 졸업생 중 이곳을 모르는 이간첩이라 했다.  고 선배 덕성 형이일찍이 내게 이르던 명물 선술집이었다.어쩌면 모교의 영욕과 역사를 같이 해오던곳이었다. 디귿자로 길게 이어진 테이블이 고정식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의자는 개인별로 편하게 끌어다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은백색의 투박하고 커다란 들통엔 늘 어묵과대파, 무 조각 등을 넣고 육수를 우려내고 있었다. 독특하게도 일반 식수가 아닌 어묵 육수에 라면이나 국수를 끓여주었다. 막걸리와 소주는 기본이었다. 김밥, 곰장어구이, 물오징어 데, 노가리 구이 등을 쉽게 맛볼 수 있었다. 134번 노선버스 시발점이자 종점 한쪽 정류장이 코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포장 마치 시대를 거쳐 이젠 어엿한 선술집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 남매가 이곳을 들어서던 모습을 지켜보던 춘석이의 헤어 스타일에 나는 먼저 눈길이갔다. 춘석이는 넉넉한 머리숱과 머리에 달라붙지 않고 위를 향해 꼿꼿이 서던 머릿결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현역 군인장교 스타일 두발에 딱 맞았다. 고교 시절 스포츠형  머리카락의 길이 1.5배에 달했다. 최근 춘석이의 신상에 혹시 어떤 변화가 있지 않나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보다 결코 더 나을 것이 없던 내 짐작이 오늘은 의외로 적중했다. 최근 춘석이는 고교 시절부터 쫓아다니던 여학생에게 결별 통보를 받았다. 보다 세속적인 용어로실연을 당한 것이었다. 한 때 잘 나가던 여자 텔런트와 아주 외모가 흡사했다고 평소 내게 귀띔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묵을 우려낸 육수 라면과 김밥으로 소주 3병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실연을 당한 동기를 위로하는 데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오빠, 저분 지난번에 그 교차로인가 어디서 만났던 친구 아니야?”

1년 후 월계동 시영아파트를 찾은 춘석이를 여동생은 정확히 알아보았다.   

   

야 너 군대는 어떻게 되었어?”

! 나 지금 귀향 조치받고 오는 중이야...”

1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나는 모교 후문 인근 주택가에서 하숙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향 절친 석구가 이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찬바람이 귓등을 날카롭게 때리는 겨울밤 나는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을 가로질러 등용문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다. 우리 둘이서 평소 무척이나 좋아하던 물오징어 데침을 안주로 노란색 주전자막걸리

를 5개나 순식간에 비워냈다.    

  

대학 체육대회 현장인 대운동장까지 자전거를 이용하여 막걸리 등 배달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던 정든 단골 선술집이었다. 얼마 후 맞은편 길 건너로 자리를 옮겼다. 번듯한 현대식 4층 빌딩 중 1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장족의 발전을 이어갔다.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이즘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이곳의 어묵 육수 라면 맛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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