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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13. 2022

대학촌 순례(9편)

                             

아이 이런, 이번에도 또 물렸네... 어떻게 하지 주머니에 현금이라곤 하나도 없는데.”우리 모교 대학촌 소줏집 대표주자 농촌에서 @@로터리 쪽으로 약 서른 발자국을 뗀 곳 5층 빌딩의 2층에 자리했다. 그 이름도 멋들어진 ‘굴러 공 당구장에서 A매치 당구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오늘도 동기 선발 엔트리 3명이 내기 선수로 당당히 입장을 마쳤다. 한 순간의 시간도 아까웠다. 시간은 금이었다. 그래서 인근 중국집에서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저녁식사를 때우고 오로지 경기에 몰두했다.      

오늘도 단골 멤버인 규호, 호섭, 구상이었다. 나는 이 세기의 대결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깬돌이 노릇을 하기로 했다.   

  

규호와 호섭이는 자신의 본래 실력이 200인데 250, 구상이는 250인데 200을 놓고 내기 시합에 돌입했다. 이랬으니 애초 승부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오늘도 선수들이 내건 타이틀은 한 게임당 거북선 담배 2갑이었다.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다 마지막 쓰리쿠션에 물리는 게임 양상에서 규호와 호섭이는 오늘도 벗어나지 못했다. 구상이는 자신의 당구 실력 대비 워낙 짜게 치는 스타일인데 반해 규호와 호섭이는 구상이의 실력을 얕잡아 보고 자신들의 본래 실력 대비 당구 기준 등급을 올렸던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게임 스코어가 동률이 될 경우 이른바 ‘엎어 쓰기’ 방식으로 경기 시간을 연장했다. 때론 엎치락뒤치락했고 선수는 물론 구경꾼인 나도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다. 박진감이 넘쳐났다. 경기 시간은 계속 늘어났다. 드디어 오늘 모든 게임이 종료되었다. 마지막 최종 엎어 쓰기 경기에서 구상이가 최종 승자로 결론이 났다.  

   

이미 약속한 대로 거북선 담배 10갑들이 3보루씩이나 손에 쥔 구상이는 의기양양했다. 이 전리품을 양손에 나누어 쥔 구상이는 평소 그 특유의 야릇한 웃음을 띤 얼굴로 오늘 경기의 패자인 규호와 호섭이를 그저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구상이는 규호와 호섭이에게 의젓한 승자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전리품인 거북선 담배 10갑 들이 한 보루를 헐어 두세 갑을 친구들에게 나누는 것이  대학 동기 사이의 최소한 예의였다. 하지만 평소 아주 독특한 캐릭터로 소문이 난 구상이에게 이런 배려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 무리였다.

           

, 이 것 나머지는 고향에 있는 우리 아버지에게 드릴 거야...”

구상이의 아버지가 사는 곳은 남쪽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이었다. 구상이가 전리품인 담배 2보루를 소포로 이 먼 거리까지 보내드릴 리는 없었다. 

    

담배 한 보루를 헐어 한 갑만을 자신의 남방셔츠 상의 왼쪽 윗 주머니에 꽂아 넣은 걸로 구상이 전리품 향방은 이제 마무리되었다. 기나긴 시간을 이어가던 당구 경기에 최종 패자로 결정되어 편치 않은 심경인 두 친구 규호와 호섭이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심사에 다름이 아니었다. 승자로선 좀 베풀어야 함에도 너무나 야박한 행동을 오늘도 이어갔다.     


게다가 문제는 무려 27,000원이나 누적된 당구 게임비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패자인 두 친구의 호주머니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담배 구입과 자장면 곱빼기를 배달시키는데 이미 모두 털어 넣었기 때문이다.      

결국 규호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테니스 애호가인 규호가 오늘 이곳에 들고 나선 일본산 고급 테니스 라켓을 볼모로 당구장 주인에게 내밀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에도 구상이는 만면에 웃음을 띤 얼굴로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규호와 호섭이는 이런 구상이에게 패할 때마다 매 번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런데 실력은 키우지 못하고 매번 앙갚음을 하려 급히 재대결에 나서다 보니 경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참 우매한 친구들이었다. 구상이는 전리품인 담배를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운 곳 농촌으로 자리를 옮겨 간단한 술자리를 마련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기대할 수 없었다.  

   

오늘도 A 매치 경기에서 철저하게 깨진 규호와 호섭이는 이 굴러 공 당구장 문밖으로 나와 1층 입구에서 구상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구상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2보루 9갑이면 얼마이지요?"

잠시 전 자신의 전리품인 거북선 담배를 고향 산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드리겠다고 공언했던 구상이었다.  그런데 당구장 카운터에서 자신이  당장 필 용도로 상의 주머니에 넣었던 한 갑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할인하여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당당한 모습이 이 두 패자의 눈에 쉽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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