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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14. 2022

대학촌 순례(10편)

                           

설령 간첩을 직접 잡지 못하더라도 학생들은 그쪽 방향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기만 하면 헬리콥터를 타고 고향으로 휴가를 갈 수 있습니다.”

대학 2학년 시절이었다. 우리는 새로이 등장한 신군부의 대학 교련 교육 매뉴얼에 따라 23일간의 전방 경계 교육에 나섰다. 이미 1학년 2학기엔 910일 일정으로 문무대 군사훈련을 다녀온 후였다. 

    

구상이는 그간 독특한 이력를 자랑했다. 1학년 2학기였다. 문무대로 출발하기 위해 우리는 400미터 트랙을 여유 있게 수용하는 대 운동장에 집결했다. 인원 점검과 주의 사항 전달을 위해 정렬을 마쳤다. 법대 학장까지 이곳에 행차를 했다. 간단한 간식과 준비물을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이런 것을 대학생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집단에선 기대하기가 어렵겠지요...?”

자신에게 할당된 정량을 넘어 간식 등을 챙기는 질서 없는 행동을 대학생들에겐 최소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었다. 학장이 옆의 다른 교수에게 한 마디 건넸다.  

   

910일이란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동기들은 수납공간이 제법 되는 여행용 가방을 적어도 하나 이상 들고 나섰다. 그런데 이에 유일한 예외인 특이한 친구가 나타났다. 바로 구상이었다. 구상이는 자그마한 검은색 비닐봉지에 속옷 가지를 단출하게 들고 나섰다. 그저 속옷 한 벌 정도만 담길 용량이었다. 저 정도 준비물로 910일의 군사훈련을 마치기에는 누가 보아도 부족할 듯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구상이를 좀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원 시절 중앙도서관 식사실에 우리 동기 몇 이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하던 중이었다. 도시락을 지참하지 않은 구상이는 내 도시락 뚜껑을 자신 있게 들고선 다른 친구들로부터 몇 숟가락씩 공출을 하여 밥 덩이를 모았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너무나 당당하게 친구들 도시락 안으로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우리는 비자발적 십시일반 대열에 동참할 것을 강요당했다.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니 그래도 좋은 것 하나 붙어가 가지고 있데?”

군 법무관 시험 1차에 합격한 것을 두고 구상이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오랜 기간 국가고시 수험 생활을 이어가던 내게 구상이는 그걸 덕담이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검게 염색한 군용 야상을 늘 걸치고 장발을 고집하던 나를 구상이는 때론 고학생으로 부르기도 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최전방 백골 부대의 철책선이었다. 현역 분대장의 인솔에 따라 우리 학생들도 철책선을 따라 배치된 참호 안에 실제로 투입되었다. 경계근무 훈련에 돌입했다. 이곳은 후방 부대에 비해 좀 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군사분계선 인근 철책선 안을 수색하는 장병에게 이른바 위험수당을 지급했다. 삼시 세끼 식사 때마다 식판에 오르는 부식도 다른 곳의 13찬에서 14찬으로 메뉴를 늘려주었다. 철책선 북쪽에서 날아드는 선전 전단지를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북쪽의 대남 방송에 우리 쪽에서는 음악을 틀어대는 방해 방송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혹시 저 쪽의 미쓰리가 예쁜 목소리로 꼬신다고 철책선을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실제로 참호 속에 투입되기 전 우리는 안전사고 방지와 정신교육을 모두 마쳤다. 이윽고 우리 동기들은 조를 짜고 순번을 정해 현역병들과 같이 참호에 투입되었다. 철책 울타리엔 곳곳마다 돌멩이를 끼워 넣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혹시라도 이곳으로 침투하려는 북한군의 동태를 잠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저 쪽 공제선 상에 이상한 물체 세 덩어리가 보입니다.”

순간 난리가 났다. 발칵 뒤집어졌다. 철책 곳곳의 탐조등 불을 훤히 밝혔다. 이 경계구역 모든 지역에 비상을 발령했다. 방금 전에 비상 상황 발생 가능성을 제일 먼저 알린 친구는 우리 동기 구상이었다.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갔다. 비상을 건 후 나름 모든 곳을 꼼꼼히 살피고 점검한 결과 이상 없음으로 판명이 났다. 결국 해프닝에 그쳤다. 비상을 발동한 동안 참호 안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우리 동기 모두는 이동금지명령이 떨어진 덕분에 정해진 경계 근무 시간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오전이었다. 일조점호 시간이었다.

최구상 학생은 헬기 타고 고향으로 휴가를 가고 싶었나요?”

어젯밤 해프닝의 주인공인 구상이에게 분대장은 우스겟 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오늘 이 시각에도 구상이는 늘 작전 중이었다. 그 시각 이후로 구상이가 좀 이례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우리 동기들 사이엔 구상이는 항상 작전중이라는 단골 멘트가 따라다녔다.  

   

2학년을 마친 후 구상이는 휴학 후 군입대를 위한 징병 검사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야간 전투 수행 불능이었다. 이미 구상이는 전방 경계 훈련에서 ‘공제 선상 이상한 물체 세 덩어리로 해프닝을 일으킨 전력이 있었다. 시력이 좀 모자라는 것이 우연이 아님이 이번 징병검사에서 밝혀졌다. 야간 전투가 불가한 자에게 최전방 철책 경계 근무를 맡겼으니 저번 같은 해프닝이 일어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구상이는 전공을 바꾸어 지방대 치대에 새로이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이도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모교로 복학을 결정했다. 만일을 위해 치대 입학 시에도 모교 자퇴 절차를 밟지 말라고 부모님이 신신당부했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이런 이중 학적 유지가 가능했는지도 의문으로 남았다. 이러던 차에 구상이는 갑자기 친구들 앞에 새로이 나타난 것이었다.  

   

구상이는 요즘 어디서 무얼 하는지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데...? 혹시 아는 친구들 있어?”

코로나19 정국 이전 연말 대학 동기모임 때마다 구상이 행방이 단골로 화제에 올랐다.     

그 친구, 지금도 작전 중일 거야...”

이번 송년회에 모인 모든 동기생들은 오늘도 모두 활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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