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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2. 2022

곤경에 빠진 현지 출신 관광해설사(3편 완)

                    

                    

우리는 이 당황스러운 사태에 관해 나름 자체 분석 모드에 들어갔다. 어죽 집 주인장이나 아니면 우리의 술자리 모습을 지켜보고 불만을 품었던 다른 테이블 손님 소행 중의 하나로 추정했다. 손님 중 한 사람은 우리가 자리를 파하고 어죽 집 문을 나설 즈음 어쩌면 우리 일행 뒤를 따라 나왔을 것으로 보였다. 우리의 차량번호를 이미 폰에 담아 경찰 신고 때 활용했으리라는 짐작도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가 들렀던 어죽 집 주인장보다는 손님의 소행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였다. 아무리 손님이 아쉽지 않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맛집이라 하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라 손님인 우리를 경찰에 신고하러 선뜻 나섰을 것이라는 분석은 무리였다.     

 

우리 일행이 벌인 소란스러운 술자리 때문에 쾌적한 식사에 방해를 받은 다른 테이블 손님의 소행일 것이라고 보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설령 그렇더라도 우리는 매우 황당했고 서운했다. 되도록 목소리 톤을 낮추어가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절제와 성의를 보였음에도 경찰에 신고하는 선까지 갔다는 것은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신고자는 우리의 시끌벅적한 술자리 행태에 앙심을 품었거나 아니면 평소 신고 정신에 투철한 민주 시민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행동에 옮겼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세상은 이미 무섭게 바뀌었고 매사에 조심할 수밖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른바 ‘호의 관계’의 영역은 좁아지는 반면 ‘법률관계’의 그것은 넓어지는 세상이 온 것이었다. 나는 혹시 그 신고자 인적 사항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런데 이도 만만치 않을 듯했다. ‘개인 정보 보호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모처럼 10명이나 되는 반가운 고교 동기 친구들이 한꺼번에 우리 고향을 찾는 보기 드문 좋은 기회였다. 아무래도 외지인보다 이곳 지형지물에 익숙한 내가 현지 출신 관광해설사로 친구들에게 그럴듯한 역할을 해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전국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에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음주운전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 신고를 당하기까지 했다.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추억을 친구들에게 안기게 되었으니 관광 해설사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이미 틀렸다.

     

그런 일 있었어요? 저희들이 경찰에 신고할 이유가 없지요. 손님들께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러겠습니까?”               

솔직히 예약 과정부터 어제까지 많이 섭섭했습니다. 사실 사장님 5촌 당숙인 @@와 저는 초 중교 동기 절친입니다.”


“여러 가지로 죄송했습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하루가 지났다. 도저히 참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사연이 궁금해서 어제 사태를 이대로 덮어버릴 수가 없었다. 평생 개운치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방금 전 어죽 집 사장과 통화를 마쳤다. ‘잘 나갈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음식점 주인장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곳이 워낙 소문난 맛집이란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가 발길을 끊는다고 사장님은 아쉬울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로선 내 고향을 찾는 고교동기 친구들에게 현지 출신 관광 해설사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앞섰는가 봅니다.”    

 

주말엔 매운탕 주문이 안됩니다.”

모임 당일 이곳을 찾기 전 주인장이 한마디 더 보탰다. 매운탕을 올린 테이블의 술자리는 다른 메뉴를 주문한 에 비해 이른바 회전율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주말엔 매운탕 주문을 사절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였다. 전국적으로 소문난 맛집이 고객 응대 평가 부분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본다면 음식 맛과 달리 반드시 상위에 랭크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 차량의 번호판을 폰으로 찍어 경찰에 우리를 음주운전 용의자로 신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손님이 만약 우리처럼 음식점 주인장에게 푸 대접을 받았으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냥 넘어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었다.     


식당 주인장의 불친절을 이유로 소비자단체에 신고를 하거나 인터넷이나 SNS망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이 음식점 불매 운동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10명의 신규 손님을 창출하는데 100일이 필요하다면 100명의 기존 단골손님을 잃는 데는 10일로 충분할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번에 나는 현지 출신 관광해설사 평가에서 고득점을 얻는데 실패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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