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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01. 2022

곤경에 빠진 현지 출신 관광 해설사(2편)

                      

우리가 예정 시각보다 1시간 여나 일찍 도착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음식재료 준비 관계로 출발 전 30분 정도에 한 번 더 연락을 달라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금세 드러났다. 도리뱅뱅이를 담아낸 프라이팬 3개를 우리 테이블 위에 올리는데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곳 음식점에서 1인분으로 책정한 어죽의 양이 좀 넉넉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죽 주문을 11인분이 아닌 8인분 정도로 줄일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금세 이를 포기했다. 이 주인장에게 또 어떤 비우호적인 지청구를 듣을까, 몹시 두렵기까지 했다.

     

음식은 내점 하신 인원 수만큼 주문하셔야 합니다.”

라는 경고 문구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한 번 더 물러서서 어죽 11인분을 달라고 했다.      

기본 반찬과 어죽 그리고 소주와 동동주가 모두 세팅되었다. 축구 경기 한 팀의 스타팅 멤버 수와 똑같은 인원인 11명 모두 자신의 술잔에 소주와 동동주를 각각 취향대로 나누어 채운 후 회장의 제안으로 건배를 외쳤다.

     

! 이곳엔 다른 손님도 계시니 볼륨을 좀 낮추자고...”

이어 이 트래킹 모임에 오늘 처음 합류한 친구들의 소감을 돌아가며 차례대로 한마디 듣기로 했다. 우리 친구 모두는 다른 테이블의 손님에게 불편을 주지말자는 뜻에 열외 한 명이 없이 동의했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등 나름 무던 노력을 했다. 그래서 서로 간 대화도 톤을 낮추어 이어갔다. 

    

그럼에도 모처럼 반가운 얼굴을 본 친구들을 자신의 자리를 떠나 서로의 자리를 직접 찾아 나서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4인 내외의 가족 단위 테이블 손님에 비해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무척이나 몸조심을 했음에도 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지난번에 잘 먹더니 이번에 진도가 좀 부진하네?”

오늘은 어죽이 매우 짜서...”

나는 어죽 한 수저를 떠 목구멍으로 넘겨 보있다. 친구의 말이 정확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늘 둘레길 코스 선정이나 음식점과 메뉴도 모두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그만 헤어지기엔 너무 아깝지. 내가 친구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이 근처 근사한 찻집도 추천을 부탁하네.”

이래서 우리는 이곳 자리를 파했다. 흐르는 비단 강물을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전망은 물론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아주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 7시까진 아직도 20여분이나 여유가 있는 시각이었다. 요즘 워낙 이른 시각에 마감을 하는 음식점이나 찻집이 흔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그런 염려는 없었다. 우리는 카페의 실내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 강변 쪽으로 여유 있게 너른 면적을 자랑하는 테라스에 진을 치기로 했다. 직사각형 테라스 바깥쪽 긴 변에 테이블과 의자 세팅을 완료했다.  

    

이곳에선 방금 전의 어죽 집에서 처럼 다른 손님의 눈치를 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 이외 다른 손님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곳을 통으로 전세를 낸 격이었다. 이러니 목소리 톤을 낮추어 소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이유는 더욱 없었다. 이례적이었다. 이리 늦은 시각에도 강 건너 맞은편 산 중턱보다 약간 높은 곳부터 흘러내리는 인공 폭포도 계속 가동 중이었다. 불빛을 받은 물줄기는 한층 더 분위기를 돋웠다.  

    

본래 벌써 이 인공 폭포는 가동을 중지하고 휴식에 들어갔어야 하는 시각이지. 그런데 우리 고교동기 11명이나 되는 멤버가 모이기로 했으니 내가 특별히 관리 당국에 부탁을 했어. 그래서 어렵게 가동시간을 늘린 거야.”

나는 친구들에게 대본에 없던 너스레를 떨었다.  

    

선생님들, 방금 전 저쪽의 어죽 집에 들른 적이 있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쪽으로 이동하셨나요?”

우리 승용차 2대로 움직였는데요. 왜 그러시지요?”     

그럼 운전은 어느 분이 하셨나요? 주민의 신고가 들어와서 우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술을 드셨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음주 감지기입니다.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정복 차림의 남녀 21조의 경찰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어죽 집 예약부터 푸대접을 받았던 우리에게 오늘 또 이 무슨 아닌 밤 홍두깨인가. 경찰은 신분증 제시 요구는 하지 않았다. 기록을 남겨야 하니 운전병의 성명과 나이를 알려달라고 했다. 승용차 2대 운전병 친구 모두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비주류로 분류된 지 오래였다.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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