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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20. 2022

왜 거기서 나와(2편)

                          

벌써 오후 7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 참석 예정인 친구들은 연회장에 이미 입장을 모두 마쳤다. 무려 4년 만에 전체 12일 정기 모임을 갖다 보니 그동안 모아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동창회 회장단의 임기는 2년이었다. 우리 이번 임기는 올해 연말로 종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새로이 이 모임을 이끌 차기 회장단을 확정 지어야 했다. 이미 우리는 몇 주전부터 사전 물밑 접촉을 통해 차기 회장을 이른바 꽃가마에 태워 모든 친구들이 축하 박수를 보내며 추대하기로 한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심스럽게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했다.   

   

현 회장단이 긴급히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 그런데 뜻밖의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이미 회장으로 추대받기로 한 친구가 나름 회장 선임에 관한 기존 관행을 이유로 완곡하게 고사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우리는 국민 총무란 별칭을 자랑하는 찬혁이의 자문도 구했다. 우리 회장단의 임무는 차기 회장단 구성을 마무리하는 것까지임은 물론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잔뜩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추대받기로 한 후보자에게 다시 한번 더 권유를 하고 최종 의사를 묻기로 했다. 차기 회장단을 구성하지 못하고 우리가 임기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아주 개운치 않은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묻는 내게 드디어 회장은 차기 회장 추대가 성사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왔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의 실타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오늘 정기 모임에서 우리가 맡은 가장 큰 임무가 이것으로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그간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앓던 이가 마저 빠진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몇 명이나 온 거야?”

“@@는 이번에도 오지 않은 거야?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지난번보다 많은 거야 아니면 몇 명이 적은 거야?”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이 총무인 네 개 쏟아낸 질문들이었다. 최종 참석 인원이 얼마가 되느냐가 회장단에 대한 일종의 평가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 친구들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총무인 나로선 생각보다 성황을 이루지 못한데 대한 자책감도 들었다.


각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곳에 오지 못한 친구들이 좀 있는데... 그것보다 오늘 모인 친구들과 오랜만에 쌓인 회포도 풀며 재미있게 노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야?”

나는 보다 많은 친구들이 참석하지 못한데 대한 서운함을 에둘러 대답으로 대신했다.


본래 다른 지역 친구들이 먼저 차기 회장을 맡아야 하는데, 고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어길 수 없어 저는 차기 회장 추대를 수락합니다.”

이런 멋진 수락 소감을 준비하느라 친구는 뜸을 들인듯했다. 이 원칙이 계속 잘 지켜진다면 우리 동창회는 앞으로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친구들의 추대에 흔쾌히 수락을 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는데 별 걸림돌이 없기를 바랐다.     

 

오늘 행사의 2막이 올랐다. 음주에서 가무 버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간 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노래와 율동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었다. 오늘 일기 예보가 딱 들어맞았다. 드디어 연회장 밖에선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우리 모임에 운치를 더욱 돋웠다.

     

민지는 평소 자신의 18번이라 자신 있게 내세우는는 채은옥의 빗물을 비롯하여 비 관련 노래 메들리를 반 시간 이상이나 이어갔다. 70년대 중후반 유행하던 대형 스타 가수들 리사이틀을 방불케 했다. 장르에 불구하고 모든 음악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소리통호식이는 ‘Green grass of home’을 원어로 열창했다. 이번 가무 타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운호는 윤항기의 ‘장밋빛 스카프를 자신의 스타일로 멋지게 편곡하여 원가수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성훈이는 최신 가요로 꼽히는 박상철의 노래방을 멋지게 뽑았다. 아직도 자신의 노래 실력이 건재함을 내외에 과시했다.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배운다며?”

그건 아니지, 음치클리닉이 아니고 노래 교실이란 이름을 단 곳에 다니고 있어.”

준수야, 나를 너와 똑같은 수준으로 알고 있는 거야?’란 소연이의 질책이 내 귓전을 맴도는듯했다.

노래 교실을 부지런히 드나드는 소연이에게 덕담을 건넨다는 것이 순간 스텝이 꼬였다. 내가 워낙 소리를 제 멋대로 다스림에도 소연이를 감히 나와 같은 부류로 착각하고 실언을 한 것이었다.   

   

노래 교실에서 춤도 가르치나 보네?”

내가 예전부터 이 정도의 율동은 보여주었는데... 4년 만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것 아니야?”     

우리 고향 친구 동참 모임이 활성화된지도 한 세대라 일컫는 30여 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다른 고향 선후배 기수 동기 모임 대비 지독하게 유난을 떤다고 이미 소문이 난지 오래였다. 지금도 30여 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그 열정과 끼 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끈끈한 우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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