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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21. 2022

왜 거기서 나와(3편)

                   

나는 아무것도 가르쳐 준 적이 없어. 그냥 내가 하고 쓸이하라고 해서 우연히 내 말대로 된 것뿐이지. 절대 코치한 것이 아니거든?”     

오늘도 나는 사면초가 고스톱판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자 동기 3명과 내가 한판을 벌이고 있었다. 광을 팔거나 자진해서 경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선수는 다른 선수의 플레이에 훈수를 두는 등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고스톱의 기본 매너였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이런 당연한 기본 예의를 수차례에 걸쳐 여러 선수들에게 일깨웠음에도 매번 교육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 가만히 있어, 준수 저 놈한테 또 혼난다.”

여자 동기들끼리 매번 다짐을 해보지만 실행에 옮기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준수야! 큰일 났어. 병호가 갑자기 사라졌어. 우리 모두 같이 찾아보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아니면 실종신고를 하든가...”


 30분 전 우리가 고스톱판을 벌이고 있는 곳에 들렀던 준하가 나를 다시 찾았다. 테이블에 겉옷과 휴대폰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갑자기 자취를 감춘 병호를 다른 여러 친구들이 사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병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병호가 없어졌다며? 내가 보기엔 별일 없을 거야?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다른 급한 용무 때문에 저녁 식사 후 귀경길에 오른 회장 정우와 나는 방금 전 통화를 마쳤다. 평소 병호와 정우는 각별한 사이였다. 정우는 병호의 성격이나 행동방식 등에 관해 나름 꿰뚫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 친구들 사이에 조금 전까지 의견이 엇갈렸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병호의 행방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쪽과 그대로 두자는 쪽이 그것이었다. 우리는 연회장에 다시 총집결했다.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결국은 경찰(112)과 소방서(119) 두 곳에 동시 신고를 하기로 최종 결론을 냈다. 이미 귀가한 수련원장도 다시 불러냈다.

     

경광등을 번쩍이며 사이렌 장비를 장착한 경찰차가 출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경찰관은 의외로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내과 전문의가 환자의 목구멍을 들여다볼 때 들고 나서는 성인 엄지 손가락 굵기에 일자형 랜턴 전원을 켰다.   

   

바로 여기 계십니다.”
 의외로 경찰관의 수색은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허탈하기까지 했다. 30여 명에 육박하는 많은 우리 친구들이 1 시간여를 샅샅이 뒤졌음에도 그 성과는 빈 손에 그쳤던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관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병호를 찾아냈으니 우리 모두는 어이가 없었다. 이에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방금 까지도 우리는 수련원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며 별의별 상상도 다 했다.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는 지금 병호가 혹시 헛발을 디뎌 쓰러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러면 회복하기 어려운 불상사라도 생길까 전전긍긍했다.

     

병호는 자신의 차량이 아닌 민지의 승용차 뒷 좌석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민지의 승용차는 우리가 오늘 묵기로 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첨단 디지털 세상이라 일컫는 지금도 등잔 밑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먼 곳이 아닌 바로 코 앞에 친구를 두고선 번지수가 전혀 다른 곳만 찾아 헤맸으니 허망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병호가 무사히 우리 곁에 돌아왔으니 친구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간인인 우리와 견줄 때 그래도 경찰관은 전문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친구는 왜 일찍 갔어? 몇 시에 갔어? 무엇 타고 갔어?”

오늘은 저번보다 많이 모인 거야? 전부 몇 명이나 되지?”

야 명주야 저 출입문 아예 잠가버리자.”


내가 아래층 왼쪽 방에서 여자 동기들과 고스톱판을 벌이던 중이었다. 연회장에서 음주나 가무에 골몰하던 친구들은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친구들은 너무나도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곳의 미닫이 문은 부드러운 작동이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열리고 닫히지를 않았다. 친구들은 남자 총무인 나를 찾아 수시로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도저히 이런 분위기에선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어, 너무 산만해서, 몰입이 되지 않네...”
 나도 큰 소리로 하소연을 이어갔다. 사람을 바꾸어가며 질문 내용이나 방식을 조금씩 달리하여 내게 퍼붓는 질문 공세는 깊은 새벽까지 그 랠리를 이어갔다.  

   

아니지, 나는 알맹이를 내 앞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언제나 든든하거든... 나는 광을 좋아하고 여기서는 고돌이를 먼저 깨야 하는 것 아니야?”

그간 여러 번의 고스톱판을 벌였지만 같은 경기장에서 선수로 얼굴을 맞대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여자 총무 소연이었다. 소연이가 고스톱판에서 이어 가는 독특한 경기 방식이었다.

     

국무총리가 주저하지 않고 학교를 가겠다고 즉시 외치면 그다음 순번 선수는 아주 좋은 패를 쥐지 않았다면 그저 당해 경기에 나서지 않는 것이 정석이지?”

아니 서비스 쌍피를 한 장 들었는데 선수로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신랑이 이번 모임 고스톱 판돈으로 그래도 18,000원이나 내게 찬조를 했는데...” 

    

오늘 소연이 판돈이 바닥을 드러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릇 고스톱 경기장에선 자제견제를 잘 활용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은 치명상을 피해 가고 이웃에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도 유효한 격언임이 다시 한번 입증이 되었다. 자신의 무리한 욕구를 자제하고 상대의 플레이를 각각 적절하게 견제하는 자세는 꼭 고스톱 경기장에서만 요구되는 덕목은 결코 아니었다. 이른바 견제와 균형필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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