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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Dec 15. 2022

제대로 한턱 쏘기

                             

범위는 어떻게 할 건데?”

책임자로 하겠습니다. 지점장님 이번 주 금요일에 다른 선약은 없지요?”
 “신 부장, 채권 많이 팔았지? 인센티브도 받았을 텐데, 그냥 넘어갈 거야?”

“신 부장, 소매채권 영업도 여전히 잘하고 있더구먼?”


 100억 이상 단위로 주로 발행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채권 도매라 했다. 이와 달리 금융기관 창구를 찾는 개인 고객이나 새마을금고 신협 등 영세한 금융기관에 작은 규모로 유통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을 우리는 채권 소매영업이라 일컬었다.

     

개인고객의 유지 관리 개척에 못지않게 법인고객 영업에 일찍이 발을 늘여 놓은 덕분이었다. 최근 나는 다른 직원과 견줄 때 이 소매채권 영업에서도 눈에 뜨일 정도로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이 채권 영업의 주관부서에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채권 매각에 따른 수익의 일정한 비율로 책정한 인센티브를 판매 직원에게 지급하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일정한 세목의 세금을 납기일 전에 자진 납부하는 이에게 10%의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가 떠올랐다.

     

어차피 내가 소매 채권의 매각으로 인센티브를 받은 것에 대한 자축의 의미로 동료 직원에게 한턱을 낼 바에야 나는 자진하여 나서기로 했다.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찌르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먼저 한턱을 쏘겠다고 나서는 것이 좀 더 생색이 나고 그 효과도 극대화될 것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최근 채권영업 부문의 개인별 실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지점장뿐이 아니었다. 본부 인사부장까지 내 영업력을 알아주니 나는 좀 어깨가 으쓱했다. 이래서 나는 우리 지점 책임자 모두를 한턱 쏘기회식에 초대를 하기로 했다.   

  

신길역 맞은편 대신 시장 인근 언덕배기에 자리한 맛집인 ‘@@회집으로 회식 장소를 제안하니 모든 책임자는 이에 선뜻 동의를 했다. 이곳은 번듯한 건물이 아닌 허름한 선술집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유명세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뮤추얼펀드 돌풍을 일으켰던 M증권 모 회장이 십여 명의 중역들을 대동하고 찾던 곳이기도 했다.

     

이 집 주인장은 매일 자신의 처가인 속초에서 조달해 오는 싱싱한 생선회를 대령한다고 늘 자랑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1인분에 3 내지 4만 원을 호가했다. 결코 부담 없는 가격대는 아니었다. 킬로그램당 얼마로 메뉴판에 기록하지 않았다. 또한 메인 메뉴를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다. 이른바 코스요리 시스템을 고집했다. 일종의 스토리가 있는 상차림이었다. 

    

고급 전문 일식집과 달리 메인 메뉴 코스별 생선의 양은 넉넉했다. 생선회를 담아내는 접시의 바닥엔 야채나 다른 장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외형보다는 실질을 더 지향했다. 좀 더 확장하자면 실사구시를 모토로 내세우는 주점이었다.

 

이곳은 미리 사전 예약을 하지 않은 고객을 위한 테이블은 전혀 준비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굴러갔다. 얼마 전 나는 지인과의 약속 장소롤 분명히 이곳으로 예약을 마쳤다. 그런데 안주인의 예약 기록 누락으로 3번이나 자리를 옮겨 다니며 우 술자리를 마무리한 푸대접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금융 기관에 재직 중인 고교나 대학 동기가 다른 테이블에 손님으로 자리한 풍경을 가끔 구경할 수 있었다.    

  

당일 등장하는 어종에 따라 1인분의 단가가 수시로 달라졌다. 이에 더하여 가장 독특한 점은 따로 있었다.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어종에 대한 선택권이 손님에게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주인장이 전권을 쥐고 있었다. 매일 속초 앞바다에서 공수해온다는 생선을 자신이 그때마다 정한 일정한 룰에 따라 차례를 정해 올려줄 뿐이었다.

      

이른바 수요자 위주가 아닌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메뉴는 털

이거나 생새우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안의 점막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맛을 보아야 하는 것이 털게였다. 마무리는 매운탕이나 맑은탕이 아닌 생선 육수에 라면을 끓여 올렸다. 독특한 점이 여럿이었다. 

    

지점장님, 오늘 지점 회식 날인가 보네요?”

우리 회사 자회사인 운용사 채권본부장이 우리 지점 일행을 먼저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 왔다. 운용사 본부장은 거래처 직원들과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채권 발행시장에서 우리 모자 회사가 메이저 축에 아직도 이름을 올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점장을 비롯한 우리 지점 책임자 모두는 오늘 이곳을 찾은 것에 관해 매우 만족했다.    

 

추가로 들어간 소주 2 병값만 계산하시면 됩니다. 방금 전 자리를 뜬 건너편 테이블 손님이 이미 이곳 몫까지 모두 계산을 마쳤습니다.”     

이 것 웬 떡인가’라는 말이 금세 떠 올랐다. 순식간에 전혀 예기치 않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운용사 고객인 중견기업 임원이 실제 이 식사비의 최종 부담자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내가 계산하기로 작정을 하고 나선 나로선 본의 아니게 돈이 굳은 결과가 되었다. 나로선 표정관리를 하기가 애매했다.

     

지점장님, 어제 횟집에서 만났던 운용사 본부장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 맞아, 깜박할 뻔했네. 직통번호가 어떻게 되더라?”

나는 회식일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일찍이 지점장실에 들렀다. 내가 제대로 된 한 턱을 쏘기로 한 곳에서 내 임무를 대신한 본부장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함을 지점장에게 상기시켰다.   

   

오늘도 신 부장 탁월한 선택이었어. 곰장어와 주꾸미 구이 모두 맛이 훌륭하구먼...”

지점장님, 이래서 이제 제가 제대로 된 한턱을 쏜 것이 확실하지요?”

약 열흘 전 뜻하지 않는 제삼자가 내가 주최한 회식의 스폰서로 나선 덕분에 소주 2 병값만 치렀던 내게 지점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에게 지난번 회식은 한턱 쏘기실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난번 한턱 쏘기는 무효이고 따라서 실제로 내 주머니에서 나온 비용으로 명실상부한 회식을 치러야 진정한 실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 압도적인 국민의 뜻이었다.     

그래 맞아, 이제 신 부장이 한턱을 쏜 것으로 인정해 주자고...”


 이래서 나는 우리 지점 식구들을 위한 한턱 쏘기 완성에 두 번에 걸친 회식에 멍석을 깔아야 했다. 이른바 이중과세란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점 식구들과의 친목을 더욱 다지고 화합의 기회를 나는 두 번이나 마련했. 소매채권 고객 저변 확대와 활성화는 덤으로 따라왔다. 조만간 나는 가까운 절친들과 이곳 @@회집에  한번 들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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