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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Dec 22. 2022

밀실공포증과 발톱무좀


"조차님 말씀에 의하면 최 아저씨 이야기와 다르던데요... 아저씨 때문에 오히려  차장님이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하던데요?"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나는 수도권의 지방점근무 중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미혼 남사원3명이 한 곳에 모여 살았다. 회사 측에서 마련해준 임대아파트 독신자 숙소에 기거했다. 그러런  중 지난달 말 인사발령이 있었다. 모점에서 근무 중이던 책임자 조 차장이 승진을우리 점포에 부임했다. 당연히 예상된 수순이었다. 조 차장은 나와 같이 안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작지 않은 문제가 터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초저녁 잠이 많았고 아침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조차장과 3명의 남사원은 특별한 개익적인 일정이한 근무를 마치고 숙소로 같이 복귀하는이 일상이었다.


우리의 식사 세탁 청소는  회사 측에서 고용한 숙소 아주머니가 해결해 주었다. 오늘도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저녁식사를 맛있게 마쳤다. 이 이후 시간대에 룸메인 나와 조차장간 생활 패턴에 무시 못할 억 박자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작은 방 2개를 각각 하나씩 차지한 남사원 2명은식사  자신의 방에 들어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보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시각에 아무런 제없이 자유롭게 잠자리에 들곤 했다. 하숙생활을 하던 대학생시절 두 사람이 같은 방을 쓰는 시스템인  합숙방 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하는 독방프리미엄을 이 두 직원은 마음껏 누렸다. 이에 반해 나는 조 차장과 같이 방을 야 하는 합숙생  신제로 전락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조 차장은 거실 탁자 위에 일간지와 경제신문을 잇달아 올린 다음 모든 쪽  구석구석 이를 잡듯이 정독을 하는 것이었다. 거실  TV시청이나 이 꼼꼼하게 신문을 읽는 작업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초저녁 잠이 많은 나로서도 이 늦은 시각까지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래서  나는 일단 안방 한편에 요를 펴고 눕곤했다.


그런데 조 차장이 잠을 자러 안방에 입장하가까지 내가 깊은 잠에 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윘다. 이른바 가면상태를 유지하며 언제나 조 차장이 들어설  것인가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조 차장은 자정을 30분이나 지나서야 안방으로 들어섰다. 이런 조 차장의 인기척에 는 순간 퍼득 일어섰다. 이젠 거실  밖의 베란다에 국방색군용 담요를 미리 세로로 길게 놓은 최종 잠자리로 코스이동을 마쳤다. 사법시험 수험생시절 형법 교과서에 가끔 등장 범죄 성립 이론 중 2단계 3 원론 수면패턴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안방에서 1차 가면상태에 들 때 조차장이 어느 시각에 이곳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올지는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래서 나는 안방 출입을 항상 조금씩 열어 두는 것이 이제 어느덧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 이후 문이 모두닫힌 방에선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밀실공포증'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처음  신입사원으로 근무했던 이 점포를 떠다른 부서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나는 서울 소재 누나 집에 얹혀 사는 신세가 되었다. 이곳에선 독방을 차지하는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출입문을 일정 부분 개방해두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른바 '밀실 공포증'이란 이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최대리, 아이가 있는 방은 항상 출입문을 조금이라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같은 점포에 근무 중인 선임 책임자는 육아 선배로서 내게 하나의 팁을 건넸다. 나는 그 이유를직도 전혀 모르고 있지만 선배의 권유를 따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밀실공포증이 연장된 탓인지도 몰랐다. 이래서 나는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그 문제의 밀실공포증을 깔끔하게 어낼 수 없었다.


"최  준수 씨, 오늘 별 약속 없지? 오늘 내가 숙직인데.. 대신 좀 해줄 수 있어?"

금융기관의 초임책임자인 하늘 같은 내 담당 이대리는 오늘도 내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말이 부탁이지 내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직장 직속 상사의 지시에 가까웠다.


당시 우리 점포는 무인기계 경비시스템을 아직 도입하기 전이었다. 그래서 지점장을 제외한 남자사원과 책임자는 미리 순번을 정해 숙직을 이어가야 했다. 담당 대리뿐이 아니었다. 수시로 이어지는 다른 책임자의 대직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나는 이제 겨우 새내기 신입 남사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엔 형부부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회사 측이 독신자 숙소를 마련해주기 전이었다. 예기치 않게 이어지는 책임자들의 대직 부탁에 대비해 여분의 속옷과 양말을 미리 준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본디 내 발 생김새는 무척이나 특이하다. 다른보통사람 대비 월등하게 두툼하고 이에 더하발가락 사이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넓힐 수었다. 5개의 발가락 모두를 동시에 최대한 펼치면 작은 부채 모양을 충분히 연출할 수 있었다.  


이러니 발가락 사이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발가락 양옆 부분 살이 무르거나 무좀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을 평생 이어갈 수 있으는 기대감이 순간 무너졌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잦은 책임자들의 숙직을 대행한  데 있었다.


숙직실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새로이 갈아 신을 양말을 매번 챙기지 못하다 보니 불청객인 무좀갑자기 찾아왔다. 대략  30여 년이나 '무좀 무풍지대'라 떠벌이고 다니던 내 양쪽 발 모두에 무좀이란 병력이 선전포고도 없이 무혈입성을 해버렸다. 그 이후 이 무좀이란 녀석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와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무좀이란 먹는 약으로 치료해선 아니 된다고 합니다. 간이나 콩팥 등에 치명적인 부담을 안겨주고 치료효과는 미미하다고 합니다. 영등포 인근에 자리 잡은 아주 유명한 @피부과 대표의사와 내가 연고가 있는 사이라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같은 부서 상사 황대리의 전언이었다.


"간 기능 검사결과 이상이 없어 무좀약을 드셔도 됩니다."

이래서 나는 암환자가 주기를 정해 항암치료를 이어가듯 무좀약을 복용하기로 했다.


사이클방식 치료 결과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 이 녀석은 자신의 존재를 내게 너무나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알렸다. 허물처럼 생겨나는 부스러기는 이제 그 자취를 감추었으나 어느덧 발톱무좀으로 한 단계 버전 업되었다.


"그래도 무좀이란 바르는 약으론 완치가 어렵고 먹는 약이 효과가 좋습니다."


나는 우리 사무실이 자리한 병원 빌딩 비뇨기과전문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자 발톱의  형상이 어느덧 정상으로 복구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두고 성공적인 무좀 치료 사례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새 또 이 발톱 무좀은 제 모습을 여전히드러냈다. 아마 어쩌면 무좀이란 불치병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같이 사는 가족에게 옮기지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오랜 기간  이어간 조직생활 끝에 밀실공포증과 발무좀이란 증상이나 병을 얻는 대가를 치렀다. 밀실공포증은 나와 결별한 지 오래지만 발무좀은 발톱무좀으로 버전 업되어 현재 진행형이다. 차랴리 이 둘의 처지가 맞바뀌는것이 내가 간절히 바라는 작은 소망이 된 지 오래이다.


밀실공포증은 그렇다 치자. 이 발톱무좀은 혹시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산재처리 혜택을 받을 수 없는지, 기대하는 내 바람이 과연 무모한 것인지 공정한 판단을 받아볼 수 없는지 나는 괜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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