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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Dec 25. 2022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기(1편)


                          

“송 부장님, 스키 타러 가신다고요? 스키는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이번 겨울 가족 여행은 강원도 대관령 스키장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런 계획을 입 밖에 내자 회사 동료 강 차장은 내게 이렇게 일렀다. 나는 강 차장의 이런 조언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각종 놀이나 운동을 배우고 익혀 왔지만 실패하는 법부터 배우라는 것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사모님, 어디에 등록하고 스키 개인 강습을 받는 건가요? 저희 @@협회 이외의 강사로부터 받는 교육은 모두 불법입니다.”


스키를 가르치는 정식 등록 단체 소속 강사를 통한 레슨비는 너무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가였다. 그래서 집사람은 이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강사와 이미 예약을 마쳤다.   

  

스키 레슨을 할 수 있는 강사는 합법적인 자신들 단체 소속 강사들 뿐이고 다른 강사의 레슨은 모두 불법이라 이르며 우리와 이미 계맥을 맺은 강사에게 직접 다가가 소속과 신분을 확인코자 했다. 심지어 불법행위이니 어서 그만두라고 질책까지 했다.   

   

하지만 이즘 나는 단속규정이란 것이 떠올랐다. 경제통제법규나 교통단속규정과 같이 어떤 행위를 함에는 일정한 조건을 요구하거나 행정 단속상 입장에서 일정한 제한, 금지를 가하는 규정을 말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일정한 처벌을 받거니 제한을 받지만 사법상의 효력이 부정되지 않는 점에서 효력규정과 엄연히 구별된다.

    

우리가 국가나 지자체 또는 공인된 협회가 인정하지 않은 강사와 스키 레슨 교육 계약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결국 정규 단체의 강사라 내세우며 우리에게 스키 레슨을 해주기로 한 강사에게 다그치던 사람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일단, 오늘 이 시각 이후는 큰 아드님 위주로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나는 방금 전 아주 커다란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스키를 타고 내리막 길을 주행하던 중 오른쪽 다리가 바깥쪽으로 많은 폭 접질렸다. 하마터면 이 사고로 장애인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삼계탕 요리 공정 중 두 개의 닭다리를 바깥쪽으로 힘을 주어 부러뜨리는 동작에 딱 맞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발목이 덜렁거리게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같은 점포 직장 동료 강 차장의 지적이 떠올랐다.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것.”이란 말이 그것이었다. 나는 그리 좋은 운동 신경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 중장년을 넘어서는 길목에 들어섰으니 그나마 몸의 유연성은 본격적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러다 명색이 가장인 내가 일자리를 잃기라도 하면 집사람과 두 어린 두 아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섰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번 스키 레슨은 이 정도에서 과감히 접기로 했다. 부상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 것이 가장 큰 급선무였다. 인대란 것이 끊어지면 영원히 이을 수 없다는 의사의 특강을 들은 적도 있으니 더욱 겁이 났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 큰 아들은 운동신경도 제법 갖춘 데다 어린이이기 때문에 몸이 유연했다.  

    

다행히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애마를 몰아 휴가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제발 인대가 끊겼다는 진단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각에 사무실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최악의 사태는 일단 모면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대가 끊어지지는 않았고 약간 늘어났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이래서 물리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군 본부 인근에 침을 용하게 놓는다는 한의원에 한번 가보게.”

같은 점포 선배 책임자가 내게 일렀다. 나는 정형외과에 더하여 한방 치료도 같이 받아보기로 했다. 한시라도 빨리 회복되어 정상적인 외부 영엽활동에 복귀하고 싶었다.  

   

내가 찾은 이곳 한의사의 침술법은 아주 독특했다. 그 유명세 탓에 모든 진료는 철저히 사전 예약제로 굴러가고 있었다. 비록 예약 시각에 도착하더라도 실제 진료와 침 시술을 받는 차례가 오기까지는 한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원장은 꼼꼼하고 치밀하게 진단을 하고 정성을 당해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 침술을 자랑했다. 딱딱한 둥근 플라스틱 원통에 돌려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줄자에 쓰이는 헝겊 소재를 잘라내어 활용하듯 했다. 폭이 좁은 이 헝겊 줄의 길이를 차등한 여러 개를 한데 묶어냈다. 매번 침 시술엔 이 한 뭉치의 줄자세트가 동원되었다. 초등 시절 청소 시간에 자주 등장하던 먼저털이 기능을 가진 총채의 축소판이었다.  

   

이에 더하여 검정 파랑 빨강 3색 상의 볼펜도 묶어냈다. 이 볼펜 묶음도 보조기구로 항상 대동했다. 이 줄자를 동원하여 상처나 통증의 진원지로부터 떨어진 일정한 곳을 찾아내어 침을 꽂을 자리를 저격했다. 정밀 공학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시계 제작 수리 장인의 공정을 방불케 했다. 은색 빛깔의 치료용 침의 길이와 굵기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표준형을 동원했다. 어쩌면 건축학도가 설계 도면을 그릴 때 정신을 집중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선의 방향과 각도를 따지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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