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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Dec 26. 2022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기(2편 완)

                    

내 주위 친구나 선후배 한의사가 결코 드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스타일의 한의사를 나는 처음 만났다. 이래서 나는 이곳 한의원을 오가고 기다리는 시간에 더하여 실제로 치료에 들이는 시간이 매우 길었지만 그리 큰 불만은 없었다.


스키 개인 강습을 받던 중 제대로 넘어지는 연착륙이 아니라 경착륙을 하는 바람에 나는 오른쪽 다리 발목 언저리의 인대가 늘어나는 참사를 당했다. 그래서 한 때 절름거리기까지 했던 내가 어느덧 이제 정상을 회복했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복귀했다. 내가 이른 시간 내에 이렇게 복귀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를 혼자서 곰곰이 따져 보았다. 물리치료와 약물 복용을 병행했던 양방 정형외과 덕분인가 아니면 침술 위주 치료를 했던 한방치료 덕분인가 나는 아직도 명확한 구분을 할 자신이 없다.  

    

일찍이 양의학과 한의학 간에 갈등과 다툼이 있어왔다. 자신의 의료법이 각각 정통의학이라든가 근본적인 치료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주요 논쟁거리였다. 나는 이번에 내가 겪은 사례만을 놓고 볼 때 섬세한 침술법을 자랑했던 한방 쪽의 힘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의학 분야는 어느 한쪽이 절대 우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비전문가인 내 생각이었다. 질병이나 증상에 따라 더 적합한 진단과 치료법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듯했다. 양자는 서로 상호 배척하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사모님, 이곳 근처에 이발 잘하는 곳, 한 군데만 추천해 주세요.”

나는 오늘 외부 영업활동을 이어가던 중 가끔 들르던 가정식 백반집 안주인에게 미장원 한 곳을 추천받았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역할 분담을 하여 꾸려가는 곳이었다. 이미 이 미용업계도 공급과잉이 된 지 오래였다. 크지 않은 상권 골목 좌우측 길가만 따지 더리도 미장원이 수시로 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부부가 역할 분담을 한다고 하지만 이곳의 메인은 남자 주인장이었다. 내가 그 많은 이발소와 미장원을 들른 이력이 있었지만 이곳 원장이 머리를 커팅하는 패턴은 아주 독보적이었다.

     

10여 년 전에 내가 스키 타는 법을 배우던 중 제대로 넘어지지 못해 인대가 늘어나 찾아 나섰던 한의사의 섬세한 침술법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곳 주인장은 먼저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겼다. 그런 다음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씩 자로 재듯하며 가위질을 이어갔다. 맞춤형 양복 장인이 원단을 섬세하게 잘라내듯 했다. 엄청난 정성을 쏟아붓고 있었다.


다른 이발사나 미용사에 비해 이발이란 공정을 완성해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시간에 손님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독특한 침술을 자랑하는 한의사에 이어 이 주인장은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한 이 업계의 전문 장인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인 이 두 사람은 지금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한의사는 침을 꽂아야 할 정확한 부위를 찾기 위해 많은 세월을 보냈을 것이었다. 먼지떨이개 모양의 장치를 고안해내는데 일사천리 방식이 작동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때론 최적 부위가 아닌 곳에 찌른 침을 다시 고쳐 꽂느라 환자는 뜻하지 않은 출혈을 감수해야 했고 자신의 손가락도 상처를 입는 등 제대로 넘어지는 법을 익히기 위해 절치부심했을 것이었다.    

  

미장원 원장도 역시 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고객의 머리를 제대로 다듬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에 출혈은 기본이고 상처를 입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다듬어 놓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손님으로부터 수많은 항의를 감내했을 거라 짐작했다.     


무릇 스키 타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이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았다. 어느 분야든 자신이 진입한 곳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제대로 넘어지는 방법을 먼저 익히는 이들은 결국 성공하는 것이었다. 

    

초등 시절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시절이 떠올랐다. 한쪽으로 기운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을 하고자 자전거와 몸의 방향을 반대로 틀어버려선 늘 낭패를 당했다. 그런 동작에는 적지 않은 대가가 항상 따랐다. 자세가 정상으로 회복되기는커녕 반드시 넘어지기 일쑤였다. 때론 자전거가 고장이 나거나 몸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때 제대로 넘어지려면 균형이 기운 쪽으로 자연스럽게 핸들이나 몸도 따라가야 함은 물론이었다. 그러면 아예 넘어지는 위기를 운 좋게 넘기거나 설령 넘어지더라도 자전거나 몸을 다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훨씬 적었다. 순리대로 몸의 균형을 이미 기운 쪽으로 향하면 오히려 넘어지지 않거나 제대로 넘어져 다치는 일이 훨씬 드물었다.    

  

세상사 모든 일을 처음 배우고 익히는 데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올바르게 배울 일이었다. 넘어지는 법을 제대로 배운 자는 장차 잘못 넘어질 확률이 훨씬 낮아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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