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Jan 04. 2023

금융기관 시재제도(1편)

                           

지금 이쪽 책상 서랍이나 어디엔가 분명히 40만 원권 수표가 있어.”

아니, 신 대리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나는 첫 발령지인 수도권 @@지점에서 출납으로 업무분장을 받았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현금이나 자기앞 수표 등을 집계하여 거래 은행에 입금을 한 후 본부로 자금이체를 했다. 또는 본부로부터 받은 영업자금을 은행에서 인출하여 영업자금을 창구 텔러들에게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내 주요 업무였다.   

   

영업 개시 직후 또는 영업시간 중간중간 추가로 영업자금을 현금이나 자기 앞 수표로 은행으로부터 공급했다. 우리 지점 계좌에서 발행한 수표는 물론 고객에게 받은 수납수표는 그 내역을 철저히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수표의 권종, 일련번호, 총액 등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수표 촬영기로 수표를 찍었다. 고객에게 받은 자기앞 수표 등은 반드시 이 촬영기를 작동시켜 기록으로 남겼다.  

    

전일 지점에서 보유 중인 현금 잔고를 영업 개시 전에 시재장과 일치하는지 실물을 확인해야 했다. 이어 영업이 마감되면 당일 총 입금액과 출금액을 가감 후 장부상 금액과 현금다발, 수표 실물이 일치하는지 대사를 했다. 그 이후 거래 은행에 남기고자하는 예금 잔고를 차감하고 본부 부서로 이체하는 패턴을 매일 반복했다.    

  

그런데 오늘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장부상 금액 대비 수표 실물 시재가 무려 40만 원이나 부족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시재가 맞지 않았다고 하거나 아직 시재가 나오지 않았다고 불렀다.      


영업점 철제 셔터가 내려지는 오후 430분이 지나 보통 5시나 늦어도 530분경에 시재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러면 영업점의 시재가 맞았다고 하고 이래서 일단 금전 사고가 없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오늘은 평일보다 3시간여나 더 지났음에도 아직 시재가 맞지 않았고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전 직원은 비상 대기 모드에 돌입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1년 동안 주산반 이력 이외에 주로 숫자를 다루는 분야에 몸을 담은 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숫자를 다루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다.  최근 장부를 책임자에게 결재를 올릴 때 심지어 1억을 1천만 원으로 잘못 적는 웃지 못할 시행착오를 자주 범했다. 렇게 숫자를 다루는 일에 경험이 미천한 나였다. 그런 내가 출납으로 업무분장을 받자 우리 지점 주거래 은행 측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후문을 내 사수로부터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수표 현물 집계를 이른 시간 내에 마치고 당일 남길 은행 잔고와 본부로 이체할 자금의 규모를 정확히 집계해야 영업점 일일 자금이 마감되는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허구한 날 헤매는 나 때문에 전 직원이 밤늦은 시각까지 제대로 퇴근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고문관 신입 사원에 등극을 했다.  

    

종국적으로 현물 시재가 부족한 경우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그 부족분은 담당자가 자신의 계산으로 메꾸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금융기관은 업무만을 따지자면 따뜻한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가 먼저였다.      


상준아 내가 오늘 업무상 실수로 시재를 40만 원 채워 넣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어. 지금 당장 40만 원 좀 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다른 고향 친구들 대비 이른 시기에 업 전선에 뛰어든 동기에게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나는 정규 급여를 받기 전이었다. 그래서 주머니 속의 현금은 거의 없었다.  

    

내가 오늘 밥값을 치를 테니 음식점에 주문 좀 해주세요.”

나는 밥을 먹을 생각이 없어요.”    

 나는 내 업무 미숙 때문에 시재가 나오지 않았고 늦은 시각까지 기다리는 직원들에게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선임 여직원은 이를 눈치채고 얼른 완곡하게 거절하고 나섰다. 우리 점포 전 직원은 25명이었다. 그래서 이 식사비 총액도 내가 부담하기엔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죄책감 때문에 내가 저녁식사를 책임지겠다고 불쑥 말을 꺼내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자신감과 자만심(2편 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