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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an 05. 2023

금융기관 시재제도(2편완)

                         

이즘 출납 담당 지점 최고참 4급 책임자인 신 대리는 내게 긴급 지시를 내렸다. 오늘 촬영한 수표의 필름을 현상해서 고객으로부터 수납한 수표를 꼼꼼히 판독해 볼 것을 제안했다.


“신 대리님, 이것이 좀 이상합니다. ”

“다행이다. 이것이 문제였네. 답이 나왔어. 자 직원들 이제 모두들 퇴근들 하자고.”

역시 관록과 내공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문제의 수표를 해독해낸 신 대리는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10만, 50만, 100만, 1,000만 등 단위로 발행되는 것을 정액수표라 일렀다. 이에 반해 4,@@@,@@@처럼 끝 단위까지 이어지는 것은 일반수표라 불렀다. 문제는 오늘 고객이 입금한 수표 중 이 일반 수표가 한 장 발견되었다.


그런데 제일 높은 자리 수 ‘4’의 바로 앞쪽 W 왼편에 찍혀야 할 은행 수표발행권자인 지점장 대리의 결재인이 ‘4’ 위에 찍혀 있었다. 통상 가장 높은 단위 숫자 앞에 자리한 원표시인 W앞에 그 금액을 확인했다는 의미로 결재인을 날인하여야 했으나 이 수표는 웬일인지 앞자리 단위 숫자 위에 잘못 날인이 된 것이었다. 결재인 때문에 ‘4’란 숫자는 가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수표를 ‘4’를 제외하고 10만 원권 이하의 일반수표로 오인하고 집계를 마친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부랴부랴 주거래 은행에게 유선으로 통보 후 확인을 마쳤다. 결국 은행 입금액과 잔고를 40만 원 늘려 바로 잡음으로써 이번 해프닝은 오후 9시를 넘겨서야 가까스로 해결이 되었다. 진상이 드디어 밝혀진 것이었다.


‘시재’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를 일컫는 말이다. 즉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기업 등의 금전 출납부에서 현재 보유 중인 현금을 말한다. 보통 들어오고 나간 돈의 액수와 현재 보유 중인 현금을 비교하여 확인하는 업을 ‘시재를 맞춘다’고 표현한다.


무릇 모든 금융기관은 매 영업일마다 영업 개시 전 시재를 확인하고 마감 후 또 한 번 확인을 한다. 이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시재가 나왔다고 하거나 시재가 맞았다는 것은 당일 최소한 금전 사고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에게 예탁금을 과대 또는 과소 지급하거나 현금을 분실 또는 도난, 아니면 직원의 단말기 오조작 등이 시재가 맞지 않는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시재가 외형상 맞았더라도 교묘하게 이를 피해 가며 직원이 고객의 예탁금을 횡령하는 등 사고를 치는 경우 모두를 막아내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매일 ‘시재 맞추기’가 금전 사고 방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장치임은 물론이다. 금융기관에 몸을 담은 새내기인 내 서툰 업무 처리 때문에 25명이나 되는 우리 지점 식구들 모두는 오늘 저녁 식사도 걸렀다. 게다가 평소보다 3시간여나 늦은 시각에 퇴근길에 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진 하루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이른바 커다란 민폐를 끼쳤다.


금융기관의 시재제도는 직원들의 업무 오류와

금전 사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시재는 외견상 아무 이상

이 없음에도 업무지식이나 영업노하우를 갖춘 직원은 교묘하게 이를 피해가며 고객 예탁금

을 황령 하는 경우가 가끔 발견되는 점을 보아도 이는 분명했다.


당시 우리 지점은 근무 경력이 1~2년 내외로 비교적 초보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일천한 근무 경력 때문에 업무상 실수에 따른 해프닝을 상대적으로 자주 구경할 수 있었다.


불시에 예고 없이 회사 내, 아니면 외부 감독기관의 감사 시즌 첫날 번호표, 통장 잔고, 현금 시재를 가장 먼저 점검하는 이유는 최소한의 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였다. 우선 점검 직후 항목별 그 이상 여부를 상부에 보고했다. 현금 시재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엔 감사일정은 일단 커다란 문제를 안고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가슴을 한번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내 한 달치 급여가 한방에 날아갈 뻔했다. 금융기관 시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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