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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an 09. 2023

교수의 시험 문제 출제 권한(2편 완)

                      

"아니, 시험 문제가 무어 이 따위야?"

상법  교수의 출제  경향은 독특했다. 우선 주어진 시험시간이 아주 달랐다. 보통 다른 과목은 50분이었다. 강의시간과 똑같았다. 이해 반해 상법교수는 무려 시험시간에 120분을 배분했다.     

대부분의 교수는 "~을 논하라, ~을 논함."으로 적었고 두 문제 중 택일하거나 한 문제만으로 승부를 거는 방식이었다. 이에 반해 상법 당당  방교수는 주로 케이스 문제를 출제했다. 기존 리딩 케이스를 뒤틀거나 변형시켜 출제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그런데 이번 재시험에선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평소 출제 경향을 확 바꾸어 버렸다. 4지선다형, 괄호 넣기, 진위형, 약술형 등 여러 유형을 총동원했다. 학내 문제로 촉발된 시위를 이유로 시험을 거부했던 동기와 복학생 선배들은 시험 문제지를 펼치자마자 기겁을 했다. 평소 묵직한 스타일의 시험문제 출제 경향을 완전히 뒤집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법학과 3학년 유가증권법 시험 문제를 이 따위로 출제해도 되는 겁니까?"

교수의 전속적인 고유 권한인 출제의 자유에 관한 정면 도전이었다. 평소 옳고 그름을 잘 따지고 의협심도 강하며 명분을  중시했던 절친 동기인 호섭이의 강한 어필이 이어졌다. 호섭이는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며 시험지 뒷면에 자신의 주장을 소신 있게 교수에게 내보였다.

호연지기를 보여주었다.

     

"자네는 앞으로  더 이상 내 강의를 들을 생각은 하지 말게나."

이래서 입시 장학생이었던 호섭이는 군 입대를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상법 한 과목에서 자랑스럽게 권총 한 자루를 찼으니 전 과목 평점이 낮아졌고 입시 장학생이 유지해야 했던 정해진 최소 평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등록금 부담 때문에 호섭이는 일단 캠퍼스 생활을 접고 카투사에 지원 입대했다.  교수의 출제권한에 대한 도전이 가져온 작지 않은 참사였다.     


공대와 산업대의 지방 캠퍼스 이전 계획의 반대에서 비롯된 시위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동기와 복학생 평점 하락과 원지 않은 조기 군입대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험 문제의 출제에 관한 결정권은 담당 교수의 전속적 고유 권한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중간 기말 시험은 만일의 경우도 대비하여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답안지 잘 썼어?"

"나야 물론이지, 우리가 이미 여러 번 적어보았던 문제였잖아? 거의 완벽하게 채웠지."

"무엇이라고? 그 문제가 아니라고, 아 망했다."

"주주총회 결의하자의 소"는 각종 국가고시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였다. 논점이 제법 있었고 약술형 문제로 답안지 작성을 하기에도 알맞은 분량이었다. 문제지를 받아 든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오늘도 바로 이문제가 출제된 것으로 한 점의 의심도 없이 확신했다. 그래서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일사천리로 답안지를 메꾸어나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상법 교수는 함정을 판 것이었다. '주주총회''이사회'로 감쪽같이 바꾸어놓았던 것이었다. 강의실 바닥에는 상법교수가 정교하게 투척한 여러 발의 수류탄이 나뒹굴고 있었다. 누구나 예상문제로 꼽고 모두 쉽게 적을 수 있는 것을 거저 수험생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상법 교과서 어는 곳을 펼쳐보아도 '이사회 결의 하자의 소"를 따로 지면을 할애하여 언급한 곳은 없었다. 상법은 일반 사법인 민법에 대한 특별법이다. 그러므로 이사회결의 하자의 소에 관해  상법에  별도 규정이 없는 이런 경우엔 일반법인 민법으로 돌아가 이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상법 교수만의 독특한 출제 방식에 수험생들은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시험문제의 출제 권한이 교수의 전속권임을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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