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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an 22. 2023

진정한 술꾼은 누구인가(1편)

                     

나오기 싫다는데...., 참 이 근처에 내 고향 절친 한 명이 살고 있는데...”

고향 친구면 더 부담 없는 사이이지, 당연히 불러보아야지.”

내가 대학원 석사과정 211월 중순이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포장도로 위에 뒹구는 낙엽도 이제 끝물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날 후 늦은 시각이었다.      

고교 동기 절친 강섭이와 나는 신촌로터리 인근에서 술친구 한 명을 더 긴급히 수배 중이었다. 


대학 후배가 예전에 주선해 준 소개팅에서 만난 적이 있는 가정대 여학생 거주지가 이 근처라는 사실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우리 둘은 인근 주점에서 생맥주를 거나하게 들이켠 후였다.      

여학생은 내가 모처럼 던진 호출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른 내 대학 동기들은 이런 일을 성사도 잘 시키더구먼, 나는 역량이 다소 모자란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낸 것이 고향 절친

이었다.

     

그래 그쪽 비탈진 언덕 인근에 있는 @@정육식당에서 보자고...”

고교 동기 강섭이의 예상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내 고향 절친 상종이는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다행히 빈둥거리고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죽이던 상종이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술이 당기는 날이었는데 내 호출이 정시 도착한 것이었다.

     

지금처럼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식탁에 올리기는 했지만 1인분 150 내지 200그램처럼 작은 단위로 거래되지는 않았다. 최소 단위가 300그램이었다. 현재 정육식당과 조금 다른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정육 파트에서 일단 고기 값부터 계산을 마친 후 불판에 올려 술자리가 파할 때 나머지 상차림 비용, 추가 야채, 술값 등을 마저 정산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인장이 고기를 잘라내어 식탁에 올린 후 모든 계산은 주점을 나설 때 한 방에 비용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일반 주점 대비 가성비가 매우 높았음은 물론이었다. 식탁에 올려주는 고기의 양은  넉넉했다.      


여름엔 돼지갈비, 겨울엔 삼겹살이 단골 메뉴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민 술이라 불리던 소주는 알코올 농도가 30%가 대세였다. 생맥주로 이미 을 축인 바 있는 강섭이와 나는 2차 자리임에도 학생 신분엔 과분하고 푸짐한 안주 덕분에 부지런히 술잔을 주고받았다. 

    

학생들, 이제 저희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그만 드시고 여기서 마무리하면 좋겠어요.      

준수는 벌써 취했어, 그러니 더 이상 준수에게 술잔을 돌리지 맙시다.”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엔 한마디로 웃기고 자빠지는 시튜에이션이었다.

'나는 멀쩡하고 내 주량을 마저 채우기 까진 갈 길이 먼데... 저희들이 무어 내 술 실력을 안다고, 감히...'     

이 친구들아, 정말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내가 취했나 테스트 좀 한 번 해보시지. 내 전공에 관해 물어보라고, 얼마든지 자신 있게 대답해 줄 테니...” 

    

당시 신군부 정권이 새로이 정식으로 출범한 후 야간 통행금지제도를 아예 없애버렸다. 이에 이어 음식점의 야간 영업시간제한도 모두 풀어버렸다. 이 영업시간 규제철폐에 관해 찬반양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반대론과 사생활의 자유를 확장하는 시민 기본권의 신장이라며 이를 반기는 견해가 바로 그것이었다.

      

혈기가 왕성한 20대 초반에 불과한 우리 술꾼 입장에서야 영업시간제한 철폐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주점과 술자리 시각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선택권도 늘어났고 밤새 인생, 어쩌고 “를 논하며 통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니 오히려 반길 일이었다.   

   

나는 이제껏 고향, 고교, 대학친구를 불문하고 술자리에 스타팅 멤버로 참여할 때마다 술자리가 파할 즈음엔 언제나 뒤치다꺼리 역을 자처하고 나서는 편이었다. 일찍이 애주가 반열에 오른 나로선 술을 마시는 속도와 총량을 나름 적절히 컨트롤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술기운이 더하거나 인사불성이 되어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멤버들을 챙기는 신세가 되었다.   

  

오늘 이 정육식당 술자리에서도 결국 나는 이러한 패턴이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들어섰다. 나보다 더 취기가 오른 강섭이와 상종이는 자신들이 술 실력이 나보다 훨씬 낫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주점 주인장에게 더 이상 내 가 외치는 술 추가 주문을 들어주지 말 것을 간곡하게 부탁까지 하고 나섰다.  손님인 우리 세 사람 사이, 그리고 주인장과 우리 사이에서 이 술을 더 마실 것인지에 관해 옥신각신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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